[돋보기] "누구 탓도 아니다"… 간호사 '태움', 그 아이러니

간호사 출신 기자가 본 독립영화 '인플루엔자', 간호사 '태움' 문화 현실감있게 그려내
열악한 근무 환경 속 간호사의 고충과 서열문화 관계성 '부각'…간호 관련 법안 필요성 반영

메디파나뉴스 2021-05-04 06:09 이메일 기사목록 인쇄
페이스북 트위터 밴드 카카오스토리

VD3I5JT729F2GAX31WIH.jpg

 

[메디파나뉴스 = 박선혜 기자] 불과 몇 년전, 기자는 이제 막 대형병원에 내던져진 '신규 간호사'였다.

 

나름 사회생활이라고 여럿 알바를 해오면서 적응 하나는 잘할 수 있다는 일념으로 부딪혔던 기자는, 고작 6개월만에 이직을 결정했다. 

 

"차에 치여서 차라리 출근 안했으면 좋겠다." 출근길, 병원 신호등 앞에서 그 생각을 떠올린 순간 더 버티면 안되겠다고 판단했다.

 

기존 출근시간에서 1시간~1시간 반 전에 와서 준비하기(듀티별 물건 카운트, 선배들 약물까지 준비, 환자 파악 등), 퇴근 후 2~3시간의 초과근무는 아무것도 아니었고, "그 머리로 국가고시는 어떻게 봤니", "사람 맞아? 말귀를 도대체 못 알아들어" 등의 폭설, 대놓고 동기 욕을 하라는 식으로 부추겨도 묵묵히 고개만 숙여야했던 날들이었다.

 

눈 뜨면 울고, 눈을 감으면 그 긴장감이 몸을 싸고 돌아 잠도 못잤다. 차트로 머리를 맞거나, 밀쳐지거나 꼬집혀도 차라리 그게 낫다고 생각했다. 하루종일 유령취급하며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으려는 프리셉터가 더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이후 옮겨간 종합병원에서 기자는 놀랍게도 빠르게 적응했다. 단 한번도 잘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던 이전과 달리 선임간호사에게 인정 받고 환자들에게 칭찬 받았다. 그렇게 1년 반 만에 액팅, 나이트 프리셉터까지 맡게 되자 그제서야 왜 그때 선임들이 답답해했을까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임상을 떠나 기자로서 최근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부문에 선정된 황준하 감독의 '인플루엔자'라는 독립영화를 접했는데 간호사 태움 문화를 다룬 이 영화는 이전 간호사 때 경험했던 기억들 하나하나를 담아놓은 일기 같았다. 

 

줄거리는 이렇다. 주인공(다솔)은 작은 시골마을 병동에서 일하는 3개월차 간호사로 태움을 당하고 있다. 간호사 수가 한참 부족한 이 마을에 신종 바이러스가 전파되면서 생각보다 일찍 신규 간호사(은비)가 입사하게 되고 어쩔 수 없이 다솔이 그녀의 교육을 맡게 된다. 

 

555555.jpg

▲ 간호사 태움 문화를 다룬 독립영화 '인플루엔자' 한 장면(출처 : 네이버)

 

주인공은 이런 서열 문화를 강하게 거부한 채, 자신은 다를 것이라 신규 간호사에게 친밀하게 다가간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급박한 근무 상황에서 답답하기만한 신규 간호사의 행동에 주인공은 결국 선임 간호사들과 다를 바 없이 그녀를 사지로 내몰게 된다.

 

극 중 마을에 퍼지기 시작한 판토마 바이러스라는 팬데믹 상황은 현재 코로나19 바이러스와 매우 흡사하다. 또한 선임 간호사들의 폭행, 언어폭력을 비롯해 "너가 잘했어야지"라는 말로 모든 책임을 전가하려는 장면 마저 병원 속 간호계의 현실을 그대로 가져다놓은 듯하다.

 

기자가 바라본 이 영화의 쟁점은 '간호인력 부족'과 그 속에서 과한 근무로 극에 달한 예민함을 '서열 문화'로 표출하는 간호사들의 고충이다. 

 

현실에서도 故박선욱, 故서지윤 간호사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안타까운 목숨을 스스로 끊으면서 세상에 드러난 간호계의 이같은 문제는 그 이면에 '열악한 근무환경'이 자리잡고 있다.  

 

대한간호사협회, 행동하는 간호사회, 의료 연대 등 병원 간호사를 대변하는 사람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간호사 배출만 늘릴 것이 아닌 병원별 인력기준 구축과 같은 구조적 문제부터 바꿔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여기서 코로나19 팬데믹은 이런 간호계의 개선 필요성을 더욱 부각하는 계기가 됐고, 정부는 최근에서야 심각성을 느끼고 간호법‧간호정책과 설립‧교육전담간호사제도 등 해당 관련 법안들을 조금씩 도입해가고 있다. 

  

간호사가 아닌 일반 사람이 봐도 영화 속 주인공의 모습은 나쁘다고만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는 '태움문화'를 죽어도 싫어하던 주인공을 그렇게 만든 주위 환경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나쁜 사람은 없다. 영화 속 주인공도, 간호사 시절 기자도 느꼈듯 '태움'은 누구 한 명의 잘못이라고 말할 수 없다. 

 

영화를 통해 제 3자의 시선에서 바라본 간호사의 현실은 왜 그토록 그들이 현장에서 '간호 관련 법안 개정'을 요구해왔는지 한번 쯤 돌아보게 만드는 계기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 2021메디파나뉴스, 무단 전재 및 배포 금지>
'대한민국 의약뉴스의 중심' 메디파나뉴스
메디파나뉴스
기사작성시간 : 2021-05-04 06:09
페이스북 트위터 밴드 카카오스토리 이메일 기사목록 인쇄

실시간 빠른뉴스
당신이 읽은분야 주요기사

독자의견
  • 간호사 2021-08-09 13:43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 김현서 2021-10-26 13:45

    옛날부터 간호사 태움은 엄청 유명했죠.
    이런 태움, 이젠 근절할 때가 왔다고 생각해요.
    관련 법 조항이 모두 통과되길 빕니다.
    이젠 같은 간호사들끼리 더 의지할 수 있었음 좋겠어요.

메디파나 클릭 기사
  1. 1 "부작용 우려돼 미접종"‥ '방역패스' 확대 조치 반발 여전
  2. 2 휴젤·파마리서치 보툴리눔 허가 취소…소송전 돌입
  3. 3 흐름 따른 외국인 투자자…제약업종 투자 7.8% ↓
  4. 4 휴젤·파마리서치바이오 보툴리눔 제제 품목허가 취소
  5. 5 '간호법' 직역 갈등 있지만…여야 공감 "그래도 빨리"
  6. 6 명문제약, 입장문 게재…엘엠바이오사이언스 피인수 논란 일축
  7. 7 하반기 내내 약세 제약업종, 11월 시총 5.6% 위축
  8. 8 간호법 제정에 간호계 입장 '주목'…간무협 '요구' 반영될까
  9. 9 'JAK억제제' 기전 자체 문제?‥'안전성' 정면 돌파
  10. 10 서울시醫 원격의료연구회 세미나 급진적 논의에…"개인 의견일 뿐"
독자들이 남긴 뉴스댓글
포토
블로그
등록번호 : 서울아 00156 등록일자 : 2006.01.04 제호 : 메디파나뉴스 발행인 : 조현철 발행일자 : 2006.03.02 편집인:김재열 청소년보호책임자:최봉선
(07207)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양평로21가길 19, B동 513호(양평동 5가 우림라이온스벨리) TEL:02)2068-4068 FAX:02)2068-4069
Copyright⒞ 2005 Medipana.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