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의 외침‥"소아암 치료할 전문의도 병원도 없다"

대한소아혈액종양학회, "사명감만으로 버티는 것은 한계" 호소
소아암을 국가 필수의료체계로 관리, 관련 법 제정과 수가 개선은 필수

박으뜸 기자 (acepark@medipana.com)2022-11-22 06:05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중증 필수진료가 중요하다고 말은 하지만, 정작 사각지대에 놓인 국내 '소아암' 치료는 관심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국내 소아암 완치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소아암은 '암 정책'에도, '소아청소년과질환'에도, '희귀질환'에도 포함되지 못하는 신세다.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과 김혜리 교수는 "소아암을 진료하는 의료진은 출산 장려 정책만 나오면 한숨이 나온다. 아픈 아이에 관심도 없으면서 아이만 낳으라고 하니 말이다"고 말했다.

소아암을 치료하는 의사들은 하나같이 '전문의'가 없다고 입을 모았다.
 
2022년 현재 전국 소아혈액종양 전문의 분포

대한소아혈액종양학회에 따르면, 전국에 소아암 진료 의사는 약 67명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진료 중인 소아혈액종양 전문의들의 평균 연령은 50세. 이 중에서 25%가 5년 내에 정년이며, 50% 가량은 10년 내 은퇴 예정이다.

지역별로 살펴보면 2022년 현재 강원, 경북, 울산 지역은 전문의가 부재하거나, 최근에 교수들이 은퇴 후 후임이 없어 입원 진료가 불가능한 상태다. 울산 지역은 은퇴한 교수 1명이 외래 진료만 시행 중이다.

또한 의사 4-5명이 있는 지역도 각 병원별 1-2명에 불과한 인원이다. 적은 인원으로는 항암 치료 중에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응급상황에 대처하기 힘들다.

전공의 지원율을 보면 인력이 충원될 것이란 기대도 갖기 힘들다. 최근 5년간 신규 소아혈액종양 전문의는 평균 2.4명 수준으로 10년 후에는 진료의 공백이 우려되는 실정이다.

그렇다고 약 50명 남은 소아암 진료 의사가 정년퇴직할 때까지 36시간 연속 근무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이들 중 상당수는 이미 전공의 대신 당직을 서며 간신히 버티고 있다.

소아혈액종양 전문의가 없다 보니 소아청소년암 환자가 입원할 수 있는 병원도 줄어들고 있다. 소아응급실도 문을 닫았다.

이는 곧 소아청소년 암환자들은 거주지의 대형병원에서 치료를 못받는 것으로도 이어진다.
 

대한소아혈액종양학회에서 시행한 건강보험공단분석 자료에 의하면 서울 외 지역 거주자 중 70%가 대부분 서울 및 경기에서 치료을 받았다. 치료 기간은 2-3년이며, 그동안 가족은 치료비와 주거비 등 경제적 부담에 시달린다고 보고된다.

소아청소년암 환자는 대부분이 입원 치료가 필요하다. 따라서 환자가 적어도 365일 24시간 응급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전문의가 병원별로 최소 2-3인 이상 있어야 한다. 

이러니 소아청소년과 전공의가 없는 지방 병원에서는 1-2명의 소아혈액종양 전문의가 주말도 없이 매일 입원환자와 외래환자를 관리해야 하는 여건이다.

대한소아혈액종양학회는 "중증 진료를 할수록 적자인 우리나라 의료보험수가 구조와 소아청소년암 진료에 대한 국가의 지원이 전무하다. 이 현실 속에서 어느 병원도 소아혈액종양 전문의를 더 고용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어느 의사도 주말도 없이 혼자서 중증 환자 진료를 책임질 수는 없다"고 말했다.

결국 우리나라는 안전한 소아청소년암 치료를 포기할 수밖에 없고, 국내 소아청소년암 완치율 및 생존율은 점차 낮아질 위기에 놓여 있다.

몇 명 남지 않은 소아혈액종양 전문의들은 더이상 사명감만으로 버티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호소했다.
 

"인프라가 빅5에만 구축이 돼 있고, 사람들이 그 쪽으로 가버리니까요. 그러니까 지방병원에서는 전문의 혼자 덩그러니 남겨져 있게 되는 거예요. 번아웃이 되는 거죠. 지원 인력은 없고요. 전문의와 전공의만 있는데, 그 전공의도 조만간 없어질 것 같아요." (의료진)

"제가 보기에는 전문의 선생님들의 수준은 거의 비슷해요. 차이가 나는 부분은 지원 인력이에요. 빅5 같은 큰 병원은 지원 인력이 많아요. 응급실에도 전문의가 있고, 병동에도 전공의가 상주하고 있고, 도와주는 간호 인력이 있어요. 그래서 환자가 가면 빨리 빨리 진행이 되겠죠. 그런데 지방 같은 경우는 전문의가 있으면 밑에 사람이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해야 되는 거예요. 한계가 있는 거죠." (의료진)

"이것도 일종의 악순환인데요. 서울로 오는 분위기가 되니까 지방은 환자가 줄고, 그러니까 인력이 줄고, 환경이 안 좋으니까 다시 서울로 오게 되고, 오히려 서울에 있는 병원들은 치료를 하고 싶어도 자리나 재원의 부족으로 더 어려움을 겪게 되고." (의료진)

 
대한소아혈액종양학회 정책위원회, 의료진, 보호자, 전문가 대상 심층인터뷰 중

소아암 치료 의사들은 저출산 시기에 출산율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미 태어난 소중한 아이들을 한 명이라도 더 살릴 수 있도록 국가적인 지원이 매우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소아청소년암 환자 치료에 필요한 시설과 인력 유지를 유도하기에는 현재 수가 및 각종 지원체계가 비현실적이라는 주장이다.

학회는 "현재 우리나라 의료계는 수도권-비수도권을 막론하고 소아암 진료와 관련된 시설과 인력에 대한 투자가 부족하다. 이로 인해 소아암 전문의 인력난이 초래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소아암 환자들은 집중치료와 이에 따르는 각종 부작용 치료를 위해 다른 질환보다 의사와 간호인력 등 의료인력 서비스가 더 많이 필요하다.

소아암 환자들은 채혈, 정맥주사, 골수검사 등 각종 시술을 할 때 동시에 여러 명의 의료진들이 있어야 한다. 아울러 진료 각 과정마다 환자와 보호자 두 명 이상을 대상으로 설명과 동의를 구해야 하는 등 타 분과보다 노동집약적 진료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노동집약적 의료 서비스들은 급여 목록에 명시된 수술/시술, 검사가 아니기 때문에 전혀 보상을 받지 못한다.
 

소아의 이러한 의료형태를 고려해 가산제도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소아암 환자들의 급여진료비는 입원비가 가산이 되더라도 성인에 비해 낮다.

실제로 동일한 항암치료를 위해 단기 입원을 하는 소아암 환자의 경우, 진료비 총액은 성인의 반값에 불과하다.

반면 성인암 환자들도 단기 항암시 급여 진료비의 대부분이 약제비용이지만, 상급병실사용, 항암 후 각종 영양제, 항구토제 신약 투여 등 비급여 진료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소아보다 총 진료비가 높다.

정부에서도 필수의료에 대한 관심을 갖고, 이에 대한 다각적인 방안을 모색하고 있지만 의사들은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못박았다.

의사들은 소아암을 포함한 중증질환을 국가기반시설에 준하는 필수체계로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아암을 비롯한 생명을 위협하는 중증질환에 대한 최선의 치료를 전국 어디서나, 최소한 권역별로는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일본의 경우 필수의료를 담당하는 각 현의 현립 어린이병원과 거점소아암병원에 1년에 200~300억여 원의 운영비를 정부와 각 현에서 제공한다. 이를 통해 각 현립병원에서는 환자 수에 억매이지 않고, 독자적으로 최선의 인력, 시설, 장비를 갖춰 최선의 환자 진료를 실시한다.

더불어 우리나라에는 소아암관리법 자체가 없다. 소아암 등 중증질환체계를 국가 필수의료체계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관련 법 제정이 요구된다.

학회는 "소아암 분야가 필수중증의료임을 인식하고, 행위별 수가에 따라 진료비를 지급하는 현 의료보험체계와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환자에게 시술 수로 임금과 수당이 결정되는 체제로는 존립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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