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중환자진료체계 10년 넘게 답보 상태‥"결단 필요"

독립 병상 등 시설적인 개선, 중환자실 인력 증가, 전담전문의 양성 전제 조건
10년 동안 단편적으로 개선‥정부 내 담당 조직 만들어 중장기적 접근 필요

박으뜸 기자 (acepark@medipana.com)2022-11-30 06:07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10년 넘게 반복되는 이야기에 의사들도 피로감을 느꼈다. 그러나 좌시할 수는 없었다. 한국의 중환자진료체계는 반드시 개선이 이뤄져야 했다.

지난 29일 Korea Healthcare Congress 2022(KHC 2022)에는 '팬데믹을 넘어 중환자진료체계의 뉴 업노멀을 향하여'라는 주제로 포럼이 마련됐다.

좌장을 맡은 대한중환자의학회 서지영 회장(삼성서울병원 중환자의학과)은 "전담전문의 제도, 간호등급 별도 적용, 수가 상향 등 일부 조치는 이뤄졌지만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않고 있다"라며 현 중환자진료체계의 현실을 털어놓았다.

이날 대한중환자의학회 김영삼 연구이사(연세의대 내과학교실)는 코로나19 시기에 발생한 초과사망 데이터로 중환자진료체계의 심각함을 지적했다.

초과사망(예측 사망자 수-실제 사망자수)이 발생했다는 것은 보건의료체계의 대응력이 부족함을 의미한다.

2020년 1월부터 2022년 5월까지 월별 초과사망을 분석한 결과, 델타 및 오미크론 변이가 유행한 2021년 10월부터 월 2,000명 이상의 초과사망이 관찰됐다.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2020년 1월부터 2022년 5월 사이에 예측된 초과사망자 47,516명 중 49.2%(22,356명)가 코로나19로 진단받지 않은 비코로나 환자였다.

비코로나 환자의 초과사망의 증가는 주로 심뇌혈관 등의 급성기 치료가 필요한 환자에서 의료 이용이 원활하지 못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됐다.

코로나19 대유행은 2020년과 2021년 2년 동안 월별 중환자실 이용 건수에 영향을 줬다. 

코로나19 중환자 진료를 위한 병상 동원 직후 및 코로나 대유행 시기 전후에 평균 중환자실 이용은 전체적으로 최대 9.1%, 상급종합병원에서는 3.5%, 종합병원에서는 12.6%까지 감소했다.

김 이사는 "중환자실 이용 감소 시기와 초과사망 발생 기간이 상관성을 보였다. 중환자실 이용에 대한 접근성 감소로 인해 초과사망이 발생했다고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 기간 중환자실 병상이나 장비의 부족은 관찰되지 않았다. 반면 중환자를 진료하는 의사, 간호사 등 전문인력이 충분히 준비되지 않았고, 이로 인한 업무의 과부하가 초과사망의 증가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보여진다.

2021년 12월 21개 종합병원 및 상급종합병원 279병상에 배치된 의료 인력를 조사했더니, 필요 인원은 의사 279명, 간호사 1,765명이었으나 실제 근무 의사는 212명, 간호사는 1,167명에 불과했다.

대한중환자의학회 홍석경 기획이사(서울아산병원 중환자외상외과)는 중환자전문인력은 중환자 의료의 질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중환자 전담의는 재난 시 가장 핵심 요소이지만, 인력이 매우 부족한 상태이므로 대우를 충분히 해줘야 한다고 바라봤다.

홍 이사는 "중환자실에는 스스로 거동하기 힘든 환자가 대부분이다. 고위험 약물도 달려있고 각종 모니터링 장비와 인공호흡기, 에크모, 혈액투석기 등이 존재한다. 전담의료인력이 24시간 내내 달려들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근거 중심의 표준화 치료는 중환자실 사망률을 감소시킬 수 있다. 이를 위해 전담 의사와 전담 간호사가 필요하다. 중환자전담전문의 유무에 따른 병원 내 사망률은 큰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중환자의학세부전문의는 매년 50~70명이 일관되게 배출되고 있다. 2022년 기준으로는 77명이 전문의 자격을 땄다.

하지만 상급종병 중환자실은 의사 1명당 환자 17.3명을 봐야할 만큼 인력이 부족하다. 따라서 중환자전담전문의를 수료해도 과한 업무로 인해 이탈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중환자전담간호사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해외에서는 전담간호사 1명이 환자 1명~2명을 보지만, 한국은 그 이상이다. 이러다 보니 중환자실 간호사 또한 사직자 혹은 휴직자가 증가하고 있다.

홍 이사는 "코로나 대유행 시기에 상급종병은 코로나 병상을 확장해야 했다. 이미 과부하인 업무 상태에서 옮겨갈 수 있는 중환자 전문 의사가 몇이나 되겠나. 결국 코로나 뿐만 아니라 비코로나 환자에게서 초과사망이 나타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중환자의료체계 개선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인력, 시설, 장비 등 중환자 의료인프라는 제도적, 수가적 다양한 접근을 통해 역량 강화가 요구된다. 중환자의료의 질을 향상하고 지역간 편차를 최소화함으로써 국민의 건강권을 수호하고 재난 시 대처 역량을 키우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부천성모병원 마취통증의학과 홍성진 교수는 중환자에 대한 전체적인 시스템을 들여다보지 않고 단편적으로 접근한 것을 비판했다. 특히 국내 중환자시설은 감염 전파에 취약하며 적은 인력으로 많은 환자를 보는 후진적 병상 구조다. 또한 현재의 최소한의 규정과 행위별 수가체계 하에서는 중환자의료 발전은 기대할 수 없다.

반대로 선진국형 중환자실 시설은 감염 전파와 섬망 발생 위험도가 낮고, 환자 인권이 보호되며 감염병 재난 시 감염 환자 수용이 가능하다. 다만 의료 인력이 많이 필요하고 추가 공간 확보가 전제 조건이다.

홍 교수는 "중환자실이 이슈가 되면 단편적으로만 개선해 왔다. 중환자실 입원료나 중환자전담전문의 수가 향상 등 그때그때 수가만 보니 본질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우리나라 중환자실을 선진화하려면 ▲독립 병상 등 시설적인 개선 ▲중환자실 인력을 늘려 충분한 환자 케어 ▲전담전문의 양성으로 24시간 중환자실 관리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 교수는 "이슈가 생겼을 때마다 단편적으로 개선해 오던 사슬을 끊으려면 과감한 시설 투자, 수가 개선, 중환자실 진료 표준화, 연수교육, 인력양성 등 중장기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서지영 회장은 10년 전에 나왔던 이야기가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을 통탄했다. 이에 그는 정부 내 중환자진료체계를 담당하는 조직을 제안했다.

서 회장은 "정부가 중환자 분야가 필수의료라는 인식 하에 장기적인 계획을 갖고 단계적으로 추진할 담당 조직을 갖춰야 한다. 의료인력은 어디, 수가는 어느 부서로 분산돼 있어 통합적인 대책이 나오기 힘들다. 이것이 현 단계에서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라 생각한다. 이전처럼 일부 지원 방식만 선택해서는 해결이 되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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