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한 발자국 움직인 '실손보험 간소화'‥의료계, '심평원' 배제 요구

의협, 중계기관으로 심평원 제외한다면 찬성‥그러나 심평원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의견도

박으뜸 기자 (acepark@medipana.com)2022-11-15 10:35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이제 겨우 한 발자국 움직였다. 해묵은 '실손보험금 청구 간소화'는 그 필요성에 공감대가 형성된 상태다.

지난 14일 개최된 '실손보험금 청구간소화-실손비서 도입 토론회'에는 의료계를 대표하는 대한의사협회가 반대에서 찬성으로 의견을 내비치면서 기대감을 높였다.

그런데 조건부 찬성이었다. 의료계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실손보험 간소화의 중계기관이 되는 것을 강력하게 반대했다.

약 4천만 명의 국민이 가입돼 있는 '실손 의료보험'은 아주 오래도록 '구식'의 방법으로 청구를 해야 했다.

가입자가 보험금을 청구하려면 직접 병원이나 약국에서 종이 진단서와 세부 내역이 담긴 영수증을 발급받아야 했다. 그리고 이를 우편이나 팩스로 보험사에 제출해야 했다.

이와 같은 까다로운 절차 때문에, 소액의 경우 청구를 하지 않는 사례도 늘어났다.

이에 2009년 국민권익위원회는 실손보험 청구 절차 간소화를 권고하기도 했으나 결실을 맺지 못했다.

이후 국회에서도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와 관련한 법안이 6개나 발의돼 계류 중이다. 요양기관이 요청에 따라 진료비 영수증·계산서, 진료비 세부 산정내역 등 보험금 청구에 필요한 증빙 서류를 전자적 형태로 보험회사에 전송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윤석열 정부의 대표 공약에도 실손보험 청구의 전산화가 포함돼 있다. 지난 8월, 국무조정실 주재로 열린 규제혁신 전략 회의에서도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내용이 언급됐다.

또한 이 흐름에 맞춰 실손보험의 번거로운 청구 방법을 탈피할 수 있는 플랫폼이 생겨나고 있다.

그렇지만 실손보험 간소화 방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되기엔 의료계의 반대가 너무 컸다.

의협은 ▲민간보험사와 피보험자간 사적 계약을 위해 요양기관에 보험금 청구 관련 서류 등을 전자문서로 전송하도록 강제하고 있는 부당한 규제 및 추가되는 행정부담 문제 ▲가장 민감한 개인정보인 환자진료정보의 유출 개연성이 높은 점 ▲보험회사가 환자에 대한 데이터를 축적해 추후 해당 환자에게 보험 상품을 판매할 때 골라 가입시키는 역선택 소지 ▲민간보험사를 위해 공적기관인 심평원의 설립 취지와 맞지 않는 업무 위탁 및 관련 정보 집적의 부당성 등 다수의 문제를 지적했다.

하지만 14일 토론회에서 의협이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서비스 도입에 대해 찬성한다"고 밝혔고, "의료계가 원하는 간소화 서비스는 심평원 등 공공기관을 중계기관으로 지정하지 않는 민간 주도의 형태"임을 분명히 했다.

결과적으로 의료계는 심평원이 이 청구 간소화 서비스에서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선다면 동참하겠다는 입장이다. 의협은 심평원이 제공받은 의료데이터로 비급여를 통제하거나, 정보 유출의 가능성을 우려했다.

그러나 심평원 만한 중계기관을 찾기도 힘들다. 심평원은 전국 9만 개의 병원과 약국의 전산망을 보유하고 있다. 청구를 전산화하려면 가장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중계기관이 필요한데, 심평원이 제격이라는 입장도 상당하다.

일부에서는 의료계가 우려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법률 개정 등으로 일정 부분을 조율하자고 제안했다.

여러 의견이 조율되지 못한 채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는 10년이 넘는 동안 제자리걸음 중이다. 만약 중재안이 마련되지 않으면 겨우 걸린 시동이 꺼지게 되므로, 이번 토론회 이후의 상황이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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