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4분의 1을 질환에… 40대 전신농포건선 환자의 삶

질환 발현에 대기업도 퇴사… 수익 없어도 월 약값 100만원까지
"월 100만원, 사회생활 어려운 환자에겐 어려워… 약값이라도 지원됐으면"

조후현 기자 (joecho@medipana.com)2023-03-07 06:00

[메디파나뉴스 = 조후현 기자] "인생의 4분의 1을 질환과 싸우며 남들보다 10년 이상 일을 덜 하고, 대기업도 퇴사했습니다. 잃어버린 세월을 되돌릴 수도, 보상받을 수도 없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다만 작은 바람은 매번 만만치 않은 약값 정도라도 국가가 지원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사회생활을 안정적으로 할 수 없는 전신농포건선 환자들에게 월 100만 원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40대 전신농포건선 환자 김재진(가명)씨는 6일 '삶을 위협하는 희귀질환 사례와 환자 중심 희귀질환 지정체계 필요성' 국회 토론회에 참석해 이 같은 어려움을 토로했다.

전신농포건선은 광범위한 무균성 농포와 통증이 전신에 걸쳐 나타나는 질환이다.

김재진 씨는 "일반인은 피부에 발진이 나서 열이 나면 빨갛게 부어오른다. 그러나 농포성 건선이 있는 사람들은 기포가 올라오고 수포가 올라와서 염증이 생긴다"며 "심한 사람들은 그것들끼리 엉겨 덩어리지고 살점 떨어지듯 떨어져 나오기도 한다. 그런 수포가 온 몸에 나타나는 질환"이라고 설명했다.

김 씨는 다섯살 때부터 전신농포건선을 앓았다. 1년가량 입원했지만 당시 마땅한 치료 기술도 없었다. 이후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이대병원에 다니며 치료 받았지만, 20대에 질환이 재발하면서 다시 치료를 받게 됐다.

전신농포건선은 치료와 관리에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든다. 상태가 악화되면 우선 병원에서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고, 약국에서 스프레이 약을 받아와서 뿌린다. 이후 연고를 몇 차례 바르면 증상이 호전된다.

질환이 주는 고통은 육체적인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갑작스럽게 재발하는 증상으로 안정적인 사회생활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김 씨는 대기업을 두 차례 다니고 중소기업도 몇 년간 다녔지만, 질환 재발로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증상 발현으로 일을 쉬고 주사와 약을 통해 진정되자 다시 출근을 통보했지만, 또다시 재발해 일을 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대기업에서 알바부터 시작해 정직원이 된 경험도 있었지만, 결국 그만두게 됐다. 질환 재발로 승진 대상자에서 누락되기도 했고, 병가를 낸 뒤 돌아왔더니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좌천 성격의 부서이동도 겪었다.

김 씨는 "꾹 참고 다녀서 다시 승진 대상자 선정 시기가 와서 물어봤더니, 승진 시키지 않으려고 좌천시켰다는 대답을 듣기도 했다"며 "모두가 입사하고 싶어하는 대기업에서 정말 성실하게 일해온 것이 한 방에 다 무너진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40대 중반인 그는 전신농포건선 때문에 고생한 기간만 10년이 넘는다고 말한다. 인생 4분의 1을 질환과 싸우는 데 쓴 것이다. 질환이 없는 일반인과 단순히 비교할 때 10년 이상 일을 덜한 셈이다. 그는 우울증을 우려하는 담당교수 권유로 정신과 진료를 받기도 했다.

김 씨가 앓고 있는 전신농포건선은 희귀질환으로 지정되면 산정특례가 적용돼 본인부담률이 10%로 낮아지지만, 지난 2018년 신청 이후 여전히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2020년 심의결과 미지정 처리됐고, 지난해에는 대한건선학회가 직접 재신청에 나서 올해 재심의가 예정돼 있다.

김 씨는 "작은 바람이 있다면 매번 만만치 않은 약값 정도라도 국가가 조금 더 지원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라며 "많이 갈 때는 한 달에 네 번까지 병원에 다니는데, 갈 때마다 15만~20만 원을 지출한다"고 언급했다.

이어 "월 100만 원을 쓰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라며 "특히 사회생활을 안정적으로 할 수 없는 전신농포건선 환자들은 더욱 그렇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사각지대에서 병마와 싸우고 병원 생활을 해야 하는 전신농포건선 환자에 대해 국가가 조금 더 관심을 갖고 신경 써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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