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이혼' 부르는 희귀질환 사각지대… 지정 기준 개선돼야

수년 드는 환아 치료비에 "한부모 가정 혜택이라도" 위장이혼
"이차성·후천성 질환도 질환 특성·환자 삶의 질 반영한 기준 개선 필요"

조후현 기자 (joecho@medipana.com)2023-03-07 06:03

서울대병원 소아외과 김현영 교수

[메디파나뉴스 = 조후현 기자] 희귀질환 산정특례 사각지대에 있는 환자 보호자 가운데는 위장이혼을 하는 사례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년간 입원한 환자를 돌보던 부모들은 결국 직장을 잃고, 한부모 가정 혜택을 받기 위해 위장이혼을 하기도 한다는 것.

희귀질환 지정 사각지대에서 고통받는 환자와 보호자를 고려한 정책 개선이 필요하다는 현장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대병원 소아외과 김현영 교수는 6일 '삶을 위협하는 희귀질환 국가 관리 강화방안' 토론회에서 희귀질환 사각지대에 있는 환자와 보호자 사례를 소개하며 기준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희귀질환은 선천성·유전성 질환이나 생애초기 손상으로 인해 발생되는 경우가 많고, 소아 질환이 다수를 차지하며, 치료는 5~10%만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희귀질환관리법에 따라 희귀질환으로 지정된 질환은 대부분 산정특례로도 지정돼 국가가 지원, 환자 본인부담률은 10%로 낮아진다.

희귀질환으로 지정되기 위해서는 먼저 유병인구가 2만 명 이하거나 진단이 어려워 유병인구를 알 수 없는 질환이어야 한다. 이와 함께 치료 가능성과 사회경제적 비용 수준, 질환 특성 등을 고려해 질병관리청에서 지정하게 된다.

그러나 진단이나 진단기준이 불명확하다면 지정되기 어렵고, 이차성 질환 역시 희귀질환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한계를 갖고 있다. 동일한 질환이더라도 선천성과 후천성에 따라 지정과 미지정이 갈리며, 수술 등으로 생긴 이차성 질환인 경우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단장 증후군이다. 단장 증후군은 선천성 장 형성 이상이나 광범위한 장 절제로 인해 발생할 수 있다. 영양소와 물을 흡수하는 소장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함에 따라 정맥영양공급이 필요하며, 이로 인한 합병증으로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그러나 선천성 단장 증후군은 희귀질환으로 지정돼 산정특례가 적용되는 반면, 일반 단장 증후군은 희귀질환으로 지정되지 않아 산정특례를 받지 못한다.

김 교수는 "소아외과 전임의를 시작한 2002년 당시 은사님이 왜 이차성 단장 증후군은 희귀질환에 들어가지 않냐고 하던 것이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졌다"며 "진단 기준과 선정 방향이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차성 단장 증후군에 해당되는 소아 환자 사례를 소개했다. 환아는 생후 18일 괴사성 장염 소견으로 소장 절제술을 받아 소장은 20cm 정도만 남게돼 단장 증후군 상태가 됐다. 이후 환아는 영양분 공급을 위해 정맥 수액을 맞아야 했고, 3세 반까지 병원에서 자랐다.

서울대어린이병원에 김 교수가 담당하는 입원환자 12명 가운데 4명이 이 같은 환자다.

김 교수에 따르면 희귀질환 사각지대에 있는 보호자들은 환자 치료를 위해 삶을 잃어간다. 실제 담당했던 한 환아 보호자는 엔지니어와 초등학교 교사 부부였지만, 둘 다 직장을 잃은 상태다. 3~5세까지 병원에 있어야 하는 환자를 돌보며 부모는 직장을 잃게 되고, 조부모 지원도 어려워지면 결국 방치되기도 한다.

김 교수는 "희귀·난치질환에 온 가족이 무너지는 사례를 현장에서 많이 본다"며 "한부모 가정 지원이라도 받기 위해 위장이혼을 하는 경우도 많고, 아이를 케어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증폭돼 실제 이혼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희귀질환 사각지대에 있는 환자를 위한 지정 기준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대상환자가 적은 극희귀질환, 경증과 섞인 진단명을 사용하는 질환 등은 정의가 어려울 수 있다. 따라서 전문가 자문을 확대해 질환 특성과 환자 삶의 질 등을 반영할 것을 제안했다.

이차성 질환 역시 질환 특성과 환자 고통을 고려한 지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동일 질환 내 선천성과 후천성에 따른 지정·미지정은 형평성 문제가 발생하는 만큼 동일한 혜택을 적용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질병관리청은 희귀질환 지정 재심의 기간 단축, 전문위원회 전문가 풀 확대 등을 담은 제도개편을 추진 중이라고 설명했다.

질병청 이지원 희귀질환관리과장은 "3년 이상 대기 기간이 소요되던 재심의 소요 기간을 1년으로 단축하고, 전문위원회 구성을 분과별 10명 이내에서 20명 이내로 확대하도록 시행령을 개정해 추진 중"이라며 "토론회에서 나온 내용을 바탕으로 보다 많은 환자와 가족을 지원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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