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응급의료 전달체계 개편 방안의 문제점, 그리고 제안

명지성모병원 허준 의무원장

박으뜸 기자 (acepark@medipana.com)2023-02-09 12:38

우리나라는 선진화된 의료서비스와 24시간 이용 가능한 의료기관들이 다른 나라에 뒤처지지 않는 수준임에도 여전히 국민들은 높은 의료서비스를 제공 받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에 정부는 모든 국민이 보다 편리하고 안전하게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 다양한 정책들을 시행해 오고 있다. 이는 의료서비스 향상을 위한 중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지난해 자신이 근무하는 대형병원에서 뇌출혈로 쓰러진 간호사의 안타까운 사망 사건을 비롯해 지속적으로 대한민국 의료 시스템의 왜곡과 부작용들이 하나둘씩 표면화되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골든타임 내에 생명을 긴급하게 살려야 하는 위중증·응급 분야가 사회적인 이슈로 조명받고 있다. 

이러한 의료 시스템의 문제로 국민들의 불만과 불안이 지속되고, 필수의료 정상화와 관련한 정부 대책을 요구하는 여론이 커지자 지난 1월 31일 보건복지부는 필수의료 지원대책을 발표했다.

필수의료 지원대책은 크게 세 분야로 나눠진다 첫째는 '지역 완결적 필수의료 제공 대책', 둘째는 '필수의료 지원 공공정책수가 도입 대책', 셋째는 '충분한 의료인력 확보 대책'이다.

이 중 지역완결적 필수의료 제공 기반을 조성하기 위한 대책으로 '응급의료 전달체계 개편방안'을 새롭게 선보였다.

그런데 전국 239개에 달하는 기존 지역응급의료기관을 24시간 진료센터로 전환해, 입원이 필요하지 않은 경증·비응급 환자의 최종 치료를 맡긴다는 내용이 주목된다.

이 대책은 중소병원이며 지역응급의료기관으로 지정된 병원을 운영하는 필자로서 큰 실망과 자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어려운 의료환경 속에서도 각 지역사회에서 국민 건강 증진에 애쓰고 있는 중소병원의 입장에서 바라본 응급의료 전달체계 개편방안에 대해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발표 내용대로라면, 현재 지역응급의료기관으로 지정돼 있는 대부분의 중소병원들은 응급실 내원 환자를 입원으로 연결시키지 못하고 경증 환자만 봐야 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환자들로 하여금 입원이 불필요한 경증 환자만을 진료하는 병원으로 오해를 줄 수 있다.

결국 지역응급의료기관의 진료 제한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으며 중소병원 경영의 어려움은 더욱 가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응급의료, 특히 위중증 환자에 대한 응급치료를 위해서는 효율적인 의료자원 관리가 필요하다. 해당 질환의 최종적인 치료가 가능한 의료기관을 최대한 빨리 찾고 이송해 치료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대안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신속한 응급환자 이송을 위한 전달체계 개선이 우선시 돼야 한다고 본다. 

각 지역사회에는 지역응급의료기관이라도 하더라도 우수한 치료 역량과 시설을 갖춘 의료기관들이 많이 있다. 그리고 각 의료기관들은 응급센터 재지정 및 정기 평가를 통해 지속적인 관리와 노력을 수행하고 있다.

이런 의료기관들에게 경증·비응급 환자만 보라고 하는 것은 한정된 의료자원 내에서 국가적인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중증도 분류에 따른 전달체계 개편은 중증과 비중증의 경계가 모호하고 초기 경증에서 중증으로 전환되는 경우 등 의료현장의 혼란이 예견된다.

따라서 규모에 상관없이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치료가 가능한 의료기관을 수배하고 환자가 이송될 수 있는 이송체계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개편되는 것이 올바를 것이다.
  
둘째, 효율적 이송체계 구축을 위해 특정 질환별 지역센터를 지정·운영해 적극 활용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만하다.

중소병원 중에는 비록 지역응급의료기관급(또는 센터급) 이지만 특정 질환에 대형병원에 준하는 우수한 치료 역량을 갖춘 곳이 다수 존재한다.

실례로, 뇌혈관질환만 보더라도 필자가 근무하는 병원이 자리 잡은 서울·경기 서부권에만 약 30개의 의료기관에서 수술 및 시술을 진행하고 있다. 즉, 의료현장을 보면 뇌혈관질환과 같은 중증환자를 치료하기 위한 의료 인력과 시설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각 지역에서 충분히 활용 가능한 자원을 효율적으로 운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특정 질환에 경쟁력 있는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철저한 심사 후 질환별 지역센터를 지정하고 세분화된 협력 네트워크를 형성해야 한다. 해당 의료기관이 지역 내 응급환자의 효율적 이송체계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소방서 및 권역응급의료센터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대형병원과 중소병원 간 의료 양극화를 기존보다 더욱 고착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어느 정도 해결될 것으로 보여진다. 
 
셋째, 보건복지부에서 지정하는 전문병원의 적극적 활용이다.

앞서 제언한 지역센터와 유사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특정 질환에 대해 일정 요건을 충족한 의료기관을 정기적으로 심사해 보건복지부에서 지정하는 전문병원 제도가 있다.

현재 전국에 112개로 구성된 전문병원은 질환별, 진료 과목별 환자의 구성 비율과 진료량, 의료 인력, 병상, 의료질, 의료기관평가인증 여부 등 총 7가지 기준을 충족한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이다.
   
필자가 근무하는 병원도 지역응급의료기관이면서 뇌혈관질환 전문병원으로 지정돼 있다. 지난해 기준 통계를 보면 수술 127건, 시술 389건 시행 등 뇌혈관질환 관련 환자 수가 약 4,700명에 이른다. 

그러나 뇌혈관질환 전문병원으로 지정돼 있음에도 지역응급의료기관이라는 이유로 중증도 높고 골든타임이 필요한 뇌혈관질환 환자를 제대로 수용 받지 못하고 있다. 이번 개편 방안으로 그 어려움은 더욱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응급의료 전달체계 개편방안에 전국에 지정된 전문병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면, 중증도가 높은 질환의 경우 보다 효과적인 치료가 가능할 것이다.

아울러 앞서 제언한 지역센터와 전문병원을 결부해 효율적인 전달체계 방안으로 활용한다면, 이번 개편방안에 포함된 중증응급의료센터를 추가로 확충하려는 예산을 일정 부분은 절감하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중소병원들은 각 지역사회에서 주민들의 건강과 생명을 위해 투철한 사명감으로 고군분투 중이다. 부디 이번 개편방안으로 중소병원의 역할이 위축되고 경영에 어려움이 가중되는 상황이 발생되지 않기를 바란다. 

기존의 다양한 의료정책 및 제도와 이번 필수의료 지원대책을 복합적으로 고려해, 보다 나은 방향으로 보건의료체계 기능을 강화하고 국민들이 만족하는 질 높은 의료정책이 마련되길 바란다.
 

|기고| 명지성모병원 허준 의무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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