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교과서에도 한 줄 실리는 병…전원이 중요하죠"

[인터뷰] 이대목동병원 알레르기내과 조영주 교수
"희귀질환인 유전성 혈관부종, 자칫 의료진도 오진하기 쉬워"   
"약 처방에도 혈관부종 증상 나타난다면 이송 의뢰해야"

최성훈 기자 (csh@medipana.com)2023-02-23 06:05

이대목동병원 알레르기내과 조영주 교수

[메디파나뉴스 = 최성훈 기자] 매년 2월 마지막 날은 '세계 희귀질환의 날'이다. 4년에 한 번씩 29일로 끝나는 2월의 희귀성에 착안한 것이다.

희귀질환으로 알려진 질병만 해도 약 7,000 가지. 그 중 하나가 '유전성 혈관부종(HAE, Hereditary AngioEdema)'이다. 

유전성 혈관부종은 체내에서 염증을 조절하는 'C1 에스테라제 억제인자'의 결핍 또는 기능 저하로 발생하는 질환이다. 해외 연구에 따르면 유전성 혈관부종의 유병률은 인구 5만 명 당 1명이다.

이에 유전성 혈관부종은 의과대학 전공 교과서에서도 단 한 줄만 언급돼 있다는 게 의료계의 설명.

마찬가지로 국내 환자 수 역시 매우 적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국내 유전성 혈관부종질환으로 치료받은 환자 수는 2021년 기준 125명이다.

유전성 혈관부종은 급성증상 발현 시 치료가 가능하고 적절한 관리와 지원이 있다면 환자들이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질환이지만, 보건의료 전문가에게도 잘 알려져 있지 않고 종종 진단 과정에서 다른 질환으로 오인되기도 한다.

이에 대해 이대목동병원 알레르기내과 조영주 교수는 "입술, 얼굴, 손, 발, 소화기관, 상부호흡기, 생식기 등 다양한 신체 특정 부위에 발생하는 부종"이라며 "그럼에도 복부 부종으로 인한 오심, 구토, 복통 등의 위장관계 증상은 맹장염, 담도 폐쇄 등 다른 질환으로 오인하기 쉽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 교수는 "보편적으로 알레르기성 혈관부종이라 판단해 진료를 하는 경우가 대다수"라며 "만약 처방한 약이 효과를 보이지 않거나 두드러기 없이 혈관부종 증상만 관찰된다면, 반드시 대학병원에 의뢰를 해 조기 진단을 받을 수 있도록 안내해 주는 것이 제일 좋다"고 일선 의료기관에 당부했다. 

조 교수는 이대 의과대학 정교수로 재직하며, 현재 'AARD(대한천식알레르기학회 및 소아알레르기학회 공동 국내잡지)' 편집위원장과 한국천식알레르기협회 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또 한국천식협회 운영 천식 학교 교장이기도 하다.

다음은 조영주 교수와의 일문일답이다.  

Q. 유전성 혈관부종에 있어 조기진단이 더욱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 조기진단이 이뤄지지 않으면 환자가 치료 자체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부종 증상만 보면 유전성 혈관부종과 구분하기 어려운 질환으로는 알레르기성 혈관부종이 대표적이다. 

환자가 복통을 호소하면 복부 질환, 맹장염이나 장염 등으로 오인할 수도 있다. 

이처럼 진단 단계에서 오진이 많이 일어나다 보니 그에 필요한 치료가 이뤄지지 못하고 환자는 증상이 더 악화돼 심각한 단계에 이른다. 

예를 들어 알레르기성 혈관부종은 스테로이드 치료제에 반응하지만 유전성 혈관부종은 스테로이드에 반응하지 않는다. 일부 심각한 증상으로 응급실에 와도 유전성 혈관부종이라는 진단이 이뤄지지 못한 경우, 일반 치료로는 효과가 없으니 결국 환자가 사망에 다다를 수 있다. 

Q. 유전성 혈관부종은 부종이 몸의 어디에 생겼을 때 가장 위험한가?

= 생명에 제일 위협이 될 수 있는 부위는 기도다. 기도가 붓게 돼 환자가 숨을 못 쉬는 상황이 가장 위험하다. 기도 외에 환자가 가장 큰 고통을 호소하는 부위는 복부 부종이다

Q. 유전성 혈관부종은 전공 교과서에서 한 줄 정도의 언급만 되는 질환이라 들었다. 이 때문에 1차 의료기관에서 유전성 혈관부종 의심 환자를 만나도 바로 진단하기 힘들 것 같다.

= 그렇다. 1차 의료기관에서 진단받기 힘든 실정이다. 개인적으로 전임의 시절에도 이 질환을 실제로 접해본 적이 없다. 유전성 혈관부종이 국내에서 진단되기 시작한 지 5~6년 정도 밖에 안 된다.
 
그 이전에는 알레르기내과 전공의라 하더라도 이 질환에 대한 학문적인 지식은 있지만 실제로 진단받는 환자가 없으니 진료 경험이 전무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제는 진단이 점차 이뤄지면서 환자가 발견되니 해당 질환에 대한 사례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1차 의료기관에서는 바로 진단받기가 힘들고 일반 대학병원 내 응급실에서도 진단을 거의 못 받는 상황이다.

Q. 진단이 시작된 지 5~6년 전이라면 본격적인 치료도 그때부터 시작된 것인가?

= 유전성 혈관부종 치료는 일반적인 질환처럼 완치의 개념이 적용되지 않는다. 대신 입술, 얼굴, 손, 발, 소화기관, 상부호흡기, 생식기 등 다양한 신체 특정 부위에 발생하는 급성부종발작(attack)을 완화할 수 있는 '즉시치료요법(on-demand)' 처방이 가능하다.

이 치료제가 2018년에 국내 출시됐으니 유전성 혈관부종에 대한 치료 환경이 본격적으로 이뤄진 것은 4~5년에 불과하다.

Q. 우리나라에서 유전성 혈관부종을 바로 진단/진료할 수 있는 기관, 전문 병원 등은 어디가 있는가?

= 대학병원 중에서 알레르기내과 전문의가 있는 곳은 모두 진단이 가능하다. 현재 42개 대학병원에서 유전성 혈관부종 진단과 약제 처방이 가능하다.

Q. 유전성 혈관부종의 진단은 어떻게 이뤄지는가? 

= 혈액 검사와 임상적 평가, 환자 문진 등을 통해 진단이 가능하다. 혈액 검사의 경우 C1-INH(C1 에스테라제 억제제) 농도 및 기능을 검사하고 C4 농도를 검사하게 된다. 이 C1-INH, C4는 체내의 보체 시스템, 즉 선천성 체내 면역 체계의 일부로 우리 몸 안의 바이러스와 박테리아 같은 이물질을 파괴하는 역할을 한다. 

이와 같은 보체 수치와 기능을 확인함으로써 보체 시스템의 단백 이상이나 결핍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세 가지 검사 중 우리나라는 C1-INH 농도 검사와 C4 검사에 대한 보험급여가 인정된다. 

C1-INH 기능 검사는 현재 보험급여 적용이 안 되고 우리나라에서 잘 이루어지지도 않아 외국으로 의뢰하는 상황이다. 
Q. 현재 국내에서 통용되는 유전성 혈관부종의 일반적인 치료 과정이 궁금하다.

= 일단 확진 후 해당 환자의 가족력을 조사한다. 유전성 질환이기 때문에 가족력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일단 가족력, 가족 중에 유전성 혈관부종 증상이 있는 구성원이 있는지를 확인하고 가족 검사를 시행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권고된다.

그 다음은 증상이 나타났을 때 환자가 자가 투여할 수 있는 응급 치료제인 '피라지르 프리필드시린지(이카티반트 아세테이트)'에 대한 환자 교육을 진행하고 처방을 한다.

Q. 말씀한 자가 주사제의 투여 주기가 궁금하다. 또, 해당 치료제 외에 다른 약제는 없는가?

= 환자에 따라 부종이 발생하는 횟수, 기간이 다르기 때문에 투여 주기가 따로 있지는 않고 증상이 있을 때마다 투여하면 된다. 

유전성 혈관부종의 치료는 크게 예방요법(prophylaxis)과 즉시치료요법으로 나뉜다. 

외국에서는 예방 치료 옵션으로 개발된 급성발작 억제제 '탁자이로(라나델루맙)'를 사용할 수 있다. 국내에도 허가는 되어 있지만 아직 출시가 안 된 상태다.

환자 중에 응급 치료제를 일주일에 2번씩 사용하는 분이 있다. 한 달에 8번을 맞는 것이므로 치료비에 대한 경제적 부담도 상당할 것이고 내원하는 데에 드는 시간, 교통비, 환자의 삶의 질 등을 감안하면 여러 측면에서 환자에게 부담이 된다. 

만약 예방 약제가 출시된 상태라면 한 달에 두 번 혹은 한 번 정도 투여하는 것만으로도 일상적인 예방이 됐을 것이다. 환자들의 삶의 질 개선을 위해서라도 예방 약제가 빠르게 출시되길 바라고 있다.

Q. 상대적으로 증상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환자의 경우 응급 치료제보다 예방 치료제를 고려하는 것이 더 경제적이라는 뜻으로 이해하면 되는가?

= 증상이 자주 나타나는 환자는 그렇다. 

Q. 현재 국내에서 응급 치료제의 보험급여 기준은 어떻게 되는가?

= 2021년 3월부터 보험급여 인정 기준이 확대돼 현재는 1회 처방 당 최대 2회분의 자가주사에 대한 보험급여 처방이 가능하다.

다른 질환에 처방되는 약제는 간혹 처방 횟수, 혹은 기간에 제한이 있는데 피라지르는 즉시치료요법에 해당하기 때문에 환자가 필요 시 처방받을 수 있다.

Q. 앞서 설명한 것처럼 유전성 혈관부종은 '유전 질환'이다. 환자의 가족 구성원 모두 진단 검사를 받아야 하는가?

= 증상에 대한 임상적 평가 역시 진단 기준이 되기 때문에 증상의 유무부터 확인을 한다. 조금이라도 의심이 되는 증상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검사를 권한다. 

물론 증상이 발현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가족 구성원 전체를 대상으로 검사를 하면 좋겠지만, 유전 질환이라고 해서 전체 가족을 다 검사하지는 않는다. 

일단 의심되는 증상이 한 번이라도 있었다고 확인되는 경우에 한해 진단 검사를 시행하고, 만약 여건이 가능하면 가족 모두가 내원해 검사를 받는 경우도 있다. 

Q. 증상이 발현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는데, 뒤늦게 발병하는 경우도 있나.

= 확실하게 밝혀진 바가 없지만 대체로 10대에 첫 증상이 발현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진단 자체가 늦어질 수 있어 증상 발현과 별개로 첫 진단 시기가 늦어질 수 있다. 지금 담당 중인 환자는 거의 20대가 제일 많고, 50~60대까지도 분포돼 있다. 

20대 환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증상 발현은 10대부터 시작된 것 같다고 얘기한다. 진단을 못 받아서 20대가 될 때가지 장장 10년 동안 ‘진단 방황’을 겪은 것이다.
 
해외 조사 연구 등에 따르면 보통 10~20대 사이에 증상이 발현한다고 기록돼 있는데 환자마다 증상 수준이 모두 다르다 보니 통계를 내기가 쉽지 않다. 

어떤 환자는 첫 증상부터 굉장히 심각한 사례일 수도 있고 어떤 환자는 아예 증상이 나타나지 않거나 매우 미약하게 나타나 진단을 받을 생각조차 못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래서 50~60대처럼 나이가 어느 정도 든 다음에 진단을 받는 환자도 있다. 
Q. 조기진단 활성화를 위해 유전성 혈관부종에 대한 홍보가 중요할 것 같다. 한국천식알레르기협회 사무총장도 맡고 있는데, 질환 인식 제고를 위해 협회 차원에서 진행하고 있는 활동이 있는지 궁금하다. 

= 한국천식알레르기협회에서 유전성 혈관부종에 대한 교육용 브로셔를 제작하는 등, 대국민 홍보 캠페인을 진행한 바 있다. 

서울시에서는 ‘아토피천식교육정보센터’를 운영하는데 해당 센터와 협업해 환자 및 의료진 교육을 운영하고 관련 네트워크를 활용해 질환 제고 프로그램을 홍보하기도 한다.

Q. 유전성 혈관부종 의심 환자를 진료할 수도 있는 1차 의료기관 의료진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 일반적으로 보는 혈관부종이 아니다 보니 보편적으로 알레르기성 혈관부종이라 판단해 진료를 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처방한 약이 효과를 보이지 않거나 두드러기 없이 혈관부종 증상만 관찰된다면 반드시 대학병원에 의뢰를 해 유전성 혈관부종을 의심해 보고 빠르게 조기 진단을 받을 수 있도록 안내해 주는 것이 제일 좋다. 

특히 복통으로 내원하는 환자들을 눈여겨보길 당부하고 싶다. 

원인이 불분명한 복통 증상이 계속해서 나타나거나 혹은 호흡기 증상과 위장관계 증상이 함께 나타나는 환자가 있다면, 일반적인 장염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유전성 혈관부종일 수도 있다는 의심을 해보고 3차 의료기관에 내원할 수 있도록 환자에게 안내해 주면 좋을 것 같다. 

Q.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말은.

= 적극적으로 진단하는 것부터 질환 관리 환경이 나아질 수 있을 것이다. 환자 수가 많지는 않지만 일단 진단만 받으면 증상을 완화시킬 수 있는 치료 옵션이 존재하니 조기에 진단을 받아 적절한 치료로 이어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또 해외와 달리 국내는 예방 치료제 사용이 어려운 환경이란 점이 아쉽다. 해당 치료제에 대한 접근성이 빠르게 개선돼 국내 환자들 역시 해외 못지 않은 치료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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