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찾으려 2시간 동안 전전‥'응급의료 시스템' 붕괴의 비극

대구 10대 청소년, 응급 환자 과밀, 치료 의료진 부재로 치료 지연‥결국 사망
지역사회 내 필수의료 담당할 의료기관 수, 절대적으로 부족
중소병원도 필수의료 담당하도록 저변 확대 필요‥근본적인 수가 인상 필수적

박으뜸 기자 (acepark@medipana.com)2023-03-30 10:45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최근 대구광역시에서 10대 청소년이 치료를 받기 위해 2시간여 동안 전전하다가 결국 사망했다. 이 당시 대구 소재의 종합병원 및 대학병원은 모두 응급 환자가 과밀한 상태였고, 치료 의료진이 부재했다.

의료계에서는 이 사건을 '응급의료 시스템' 붕괴가 낳은 '비극'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현재 정부가 발표한 '필수의료 지원 대책'으로는 이 무너진 시스템을 바로 잡을 수 없다고 경고했다.

지난 19일, 대구 10대 청소년이 건물 4층 높이에서 추락하면서 발목과 머리를 다쳐 119에 신고됐다. 그러나 방문하려던 대구 시내 종합병원 및 대학병원들은 이미 응급 환자가 넘쳐났고, 이에 따라 의료진이 10대 청소년을 수용할 여유가 없었다. 병원을 수소문하던 중 2시간 만에 한 종합병원으로 옮기려 했으나 끝내 10대 청소년은 구급차 내에서 심정지가 일어나 사망했다.

의료계는 이 일이 지난해 뇌출혈 간호사 사망 사건과 같은 원인에 의해 발생한 것이라 바라봤다.

대한병원의사협의회 관계자는 "부검을 해보면 더 정확하게 알 수 있겠지만, 추락 사고를 당한 지 2시간여 만에 환자가 사망했다면 원인은 외상성 뇌출혈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따라서 환자를 의뢰받았던 대학병원 및 종합병원들은 응급 뇌 수술이 가능한지 여부와 병상 수용 가능 여부를 파악해 보고, 사정상 수용이 어렵다는 답변을 했을 것이다"고 추측했다.

다만 이 사건으로 인해 환자 수용을 거부한 병원들에 대한 비난이 이어지고 있다. 의료계는 조심스럽지만, 병원들에게만 화살을 돌리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병의협 관계자는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병원에서 수술 인력과 병상에 여유가 있었다면 환자를 받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사기관들은 해당 병원들의 업무상 과실 여부를 수사해 처벌하려고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의료계는 환자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 응급의료 시스템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호소했다. 해당 지역에 응급 외상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충분한 인프라가 갖춰져 있었다면 이러한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의료계는 결국 이 비극적인 사건은 무너져가는 필수의료와 응급의료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꾸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했다고 꼬집었다.

병의협 관계자는 "그동안의 정부 정책들이 대학병원에만 몰아주기 식으로 이뤄지는 지원이 대부분이었고, 지원금 뿌리기 정책 같은 미봉책으로만 일관해 왔기 때문에 지역사회 내 필수의료를 담당할 의료기관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해졌다"고 말했다.

대표적으로 지난 1월 31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필수의료 지원 대책이 있다. 정부는 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한 노력을 적극적으로 할 것이라 홍보했다.

하지만 의료계는 해당 대책의 내용이 공개되자 기대보다는 실망스럽다는 반응이 컸다.

병의협 관계자는 "필수의료 지원 대책은 대학병원 및 대형병원을 중심으로 이뤄져 있었다. 이는 기존에 답습해 오던 대학병원 및 대형병원 중심의 지원금 정책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얼마 전 발표된 '제4차 응급의료 기본계획'도 마찬가지다. 복지부는 '전국 어디서나 최종치료까지 책임지는 응급의료'를 목표로, '지역 완결적 필수·공공의료 구축'을 국정 과제로 삼았다.

여기엔 중증-중등증-경증 등 단계별 응급의료기관 진료기능을 명확히 정립하고, 응급의료 전달체계를 정비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 중에서도 중증응급의료센터는 전국 어디서든 1시간 안에 중증응급환자가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늘려나갈 계획이다.

복지부는 "치료의 골든타임을 놓치면 생명이 위급한 만큼 응급의료분야는 정책적 시급성과 중요성이 높은 분야"라며 "전국 어디서든 응급환자가 발생했을 때 골든타임 내 대응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현 방침대로 흘러갈 경우 전반적으로 중증응급환자는 상급종합병원 위주로 배치될 가능성이 높다.

의료계는 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해서는 대형병원이 아닌 중소병원과 의원들도 함께 움직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도권 외의 지방 지역에는 1~2개의 대형병원이 있는데, 이 소수의 병원만으로 권역 전체의 필수의료를 담당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골든타임이 중요하다면 실력을 갖춘 지역 중소병원을 파악해, 역할 수행에 동참하게 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한 예로 복지부가 인증하는 전문병원은 특정 질환 또는 특정 진료 과목에 대학병원과 견줄 만한 실력을 갖고 있다고 평가된다. 의료전달체계를 질환의 경중에 따라 1차, 2차, 3차로 그 역할을 구분하는 것처럼 전문병원은 피라미드 구조에서 중소병원과 대학병원을 잇는 허리 역할을 하고 있다.

반면 정부가 집중하고 있는 '필수의료 지원 대책'에는 전문병원이 충분히 활약할 수 있는 영역이 있음에도 제외돼 있다.

한 전문병원 관계자는 "높은 수준의 치료가 가능한 응급기관이 있음에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 지역에 어떤 병원이 당장 치료할 수 있는지 네트워크만 잘 형성돼 있다면 골든타임을 놓치는 일이 크게 감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계는 규모에 상관없이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치료가 가능한 의료기관을 수배하고, 환자가 이송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제도가 개편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병의협 관계자는 "효과적인 필수의료 지원 대책은 중소병원에서도 필수의료를 담당할 인력을 채용해 운영할 수 있도록 저변을 확대하는 방향이다"며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수가 인상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환자가 사망하면 어떻게든 책임질 희생양을 찾아 처벌하려는 잘못된 관행을 없애기 위해 불가항력 의료사고에 대한 면책 규정을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필수의료 및 응급의료 시스템이 무너진 상황에서 수많은 희생과 비극을 겪었다. 의료계는 한 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통탄했다.

병의협 관계자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정상적인 의료 시스템을 기대하는 것은 과욕일 뿐이다. 정부와 국회는 지금이라도 국민들의 소중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그 해답을 의료계와 함께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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