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파나뉴스 = 조해진 기자] 김재범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가 최근 몇 년간 과학 정책이 기초과학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방향으로 흘러간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전했다.
21일 대구시 북구 엑스코(EXCO) 서관 3층에서 개최된 '2025 대한약학회 춘계국제학술대회'에서 기조강연을 맡은 김재범 교수는 강연 이후 전문지 기자단과 간담회를 가졌다.
김재범 교수는 한국의 기초 및 생명과학 분야의 경쟁력과 투자 방향에 대한 질문을 받고 "최근 4-5년간 과학 정책은 기초 기반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방향으로 흘렀다. 학부생들과 면담을 할 때도 굉장히 가슴이 아팠다"고 토로했다.
이어 "매번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기초과학, 특히 생명과학은 밑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 같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그러나 과거 코로나19 상황에서 K-방역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기초과학이 국가 전반을 아우르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밝혔다.
김 교수는 최근 기초과학과 관련된 정부의 정책에 대해서도 일침을 놨다. 기초과학을 전면 부정하거나, 기초과학 강화에 따른 것이 아닌 이미 발달된 기술을 수입하면 된다는 잘못된 논리 구조를 갖는 정책이 만들어졌고, 이 정책들이 실행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로 인해 순수하게 기초과학을 하는 사람들은 굉장히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
김 교수는 "정부 연구비를 계약 형태로 지원받는데, 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아졌다"면서 "정부의 R&D 예산 삭감으로 연구자들의 개인적 연구비가 삭감 혹은 줄어든 것을 넘어서, 이러한 환경은 현재 연구자들뿐만 아니라 후속 연구 세대에게도 희망을 주기 어렵다는 점에서 기초학문 연구에 매우 나쁜 영향을 준다. 해외에서 박사후연구원을 한 친구들이 국내에 오지 않겠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연구 환경 자체를 열악하게 만들어놓은 이 상황에 대해 한 명의 과학자이자 어른으로서 매우 창피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추격형 모델을 바탕으로 성장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자기주도적인 방향성을 가져야 한다. 우리나라 경제 규모 등 여러 가지를 생각했을 때 지향하는 바를 잘 생각해서 연구 정책의 방향성을 잘 유지해야 한다"며 "너무 목표지향적이다 보면 그 목표가 잘못 설정됐을 경우 굉장히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 그런 우려를 막기 위해 어렵더라도 좀 더 큰 틀에서 방향성을 잡고 백년대계를 준비해야 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이어 김 교수는 연구개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동력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는 '지적 호기심'을 꼽았다.
그는 "연구개발의 동력은 궁극적으로 산업계를 발달시키는 것도 있겠지만, 지적 기반을 갖추기 위한 '지적 호기심'이 가장 중요한 동력이다. 학생들에게도 늘 지적 호기심을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적 호기심을 바탕으로 연구 토양과 생태계가 건강해야 그로부터 응용학문들을 통한 생활에 도움을 주는, 소위 말하는 이익 창출이 가능한 기술들이 나와 토대를 세울 수 있다"며 "지금은 근간이 매우 미약하지만, 국민들을 잘 설득하고, 정부에서는 지속적인 보장을 약속해 철두철미한 신뢰관계가 원천적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지금으로서는 나라의 흥망성쇠를 좌우할 만큼 큰 연구를 하기는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한편, 김재범 교수는 이번 대한약학회 춘계국제학술대회 기조강연에서 '지방 조직의 가소성과 대사(Adipose Tissue Plasticity and Metabolism)'에 대해 발표했다.
김 교수는 "지방 조직이 새로운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 30-40년간 전 세계에서 연구된 결과들을 살펴보면, 지방 조직이 잉여 에너지원을 저장하는 에너지 저장고 역할에 국한되지 않는다"며 "지방 조직이 전체적인 우리 몸의 신호 전달 과정, 에너지 상태를 결정해주고, 이에 따른 반응을 관장하는 굉장히 중요한 에너지 대사의 중추라는 것이 점점 알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방 조직은 내장지방 조직과 피하지방 조직으로 나눌 수 있는데, 내장지방 조직이 부적절하게 증가하는 경우 비만, 당뇨, 동맥경화 등과 같은 대사성 질환 전반에 직간접적으로 연관이 있다고 한다.
김 교수는 대사성 질환의 전반이 직간접적으로 특정 지방 조직의 증감과 연관이 있다는 것이 알려진 만큼, 향후 연구는 지방 조직을 선택적으로 조절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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