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의학전문가가 본 이태원 시민 CPR… 초기대응·통제 미숙 방증

초기 출동인력 CPR 아닌 현장통제와 피해·지원 규모 파악이 우선
"재난대응 매뉴얼 세계적 수준인데… 현장에선 지켜지지 않아"

조후현 기자 (joecho@medipana.com)2022-10-30 18:00

[메디파나뉴스 = 조후현 기자] 이태원 참사 재난대응에 아쉬움이 남는다는 전문가 지적이 나왔다.

초기 출동대원은 물론 시민까지 나서 심폐소생술(CPR)을 돕는 등 최선을 다했지만, 이 같은 풍경이 체계적 재난대응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체계적 재난대응을 위해서는 현장통제와 피해·지원 규모를 파악해 원활한 대응이 이뤄질 수 있는 환경 조성이 우선이었다는 것.

세계 최고수준인 국내 재난대응 매뉴얼이 존재하지만, 걸맞은 훈련과 준비가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는 지적이다.
이형민<사진> 대한응급의학과의사회장은 30일 이태원 참사 대응에 대해 이 같은 의견을 밝혔다.

이 회장은 먼저 현장통제가 가장 아쉬웠다고 지적했다.

이 회장은 "재난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실 현장 통제"라며 "일반인은 배제시키면서 환자가 빠질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해 주고 중환자를 우선 구조하는 초기 현장 대응이 아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시민까지 나서며 화제가 된 CPR에 대해서는 체계적 재난대응이 부족했다는 방증이라고 지적했다.

재난 현장에서 인력을 투입해 CPR을 하고 있는 풍경 자체가 체계적 대응으로 볼 수 없으며, 도리어 미숙한 초기대응과 현장통제를 보여준 모습이라는 것.

이 회장에 따르면 재난 현장에서 심정지 환자는 2순위가 돼야 하며, 살릴 수 있는 중증환자를 분류해 처치하고 가까운 병원으로 이송하는 것이 1순위가 돼야 한다.

이를 위한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현장을 비우는 통제가 우선돼야 하며, 이후 구조 인력을 원활히 투입해 살아날 가능성이 높은 환자부터 가까운 병원으로 이송해야 한다.

다시 말해 초기에 교통상황으로 차량 진입이 어려워 인력이 부족했다면 현장을 통제하면서 사상자 발생과 의료계 지원 필요 규모 등을 파악해 컨트롤타워에 전달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지휘체계가 불분명해 혼선을 겪었다는 현장 목소리도 전했다.

이 회장은 "재난 현장은 누구에게 허락받고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현장에서 명확한 컨트롤이 이뤄져야 하는데, CPR 하던 초기출동대원이나 자발적으로 먼저 출동한 의료진이 누구 허락을 받고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불명확했다"며 "초기에 손이 모자라고 초기 출동대원 역할 자체가 명확히 정의되지 않아서 생긴 일"이라고 지적했다.

병원 이송체계도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재난 상황에서는 사망자든 중환자든 한 병원에 몰리면 마비되기 때문에, 가까운 병원은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중환자를 위해 비워둬야 한다. 이태원 참사의 경우 한남동에 있는 순천향대학교병원이 해당된다.

이에 따라 이날 순천향대병원에는 병원 여력을 확인하면서 환자와 사망자를 이송해야 했으나, 병원 확인을 거치지 않고 이송한 사례가 많았다는 지적이다.

이 회장은 "현장 지휘소에서는 주변 병원을 판에 띄우고 어느 병원 몇 명 가는지 체크하는데, 이 같은 통제 절차를 거치지 않고 병원에 이송한 119가 많았다"고 말했다.

시민의식과 언론보도 방향도 홍보와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재난대응이 체계적인 해외에서는 전문가가 환자에게 CPR을 할 때 근처 시민들은 뒤돌아서 벽을 만들어 일반인들이 볼 수 없도록 한다. 현장에서 원활한 대응이 이뤄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성숙한 시민의식이라는 설명이다.

일례로 손흥민 선수가 소속된 영국 프리미어리그 토트넘에서 함께 뛰던 에릭센 선수가 경기장에서 쓰러졌을 때, 동료 선수들은 벽을 만들어 CPR 받는 에릭센 선수를 보호했고 관중들은 차분히 자리를 지켰다.

반면 이번 이태원 참사 현장 주변은 자극적 영상을 담기 위한 인파와 구경꾼으로 북적였다.

직장을 인증하고 이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이태원 현장에서 가장 끔찍했던 것은 구경꾼"이라는 의사의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국립암센터에서 근무한다고 밝힌 이 의사는 "환자가 실려 떠나고 잠시 물을 마시는데 지나가는 20대가 '아 씨, 홍대 가서 마저 마실까?'라고 말하는 걸 듣고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몸서리 쳐진다"면서 "CPR해도 환자 맥박이 돌아오지 않아 무능한 의사가 된 듯한 기분도 끔찍했지만, 타인의 죽음 앞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다음 술자리를 찾던 그들을 평생 못 잊을 것 같다"고 전했다.

언론이 재난 현장을 적나라하게 중계한 행태도 부적절했다는 지적이다.

이 회장은 "방송의 역할은 '현장 주변을 비우고 가지 마세요' '현장 사람들은 건물에 들어가 있거나 집에 가거나 현장을 비워주세요'라는 메시지가 됐어야 한다"면서 "최소한 어제 방송은 유튜브와 차이가 없는 정도의 수준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이번 참사에서 체계적으로 대응했더라도 사망자가 눈에 띄게 줄지는 않았을 수 있지만, 살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 기회를 한 번이라도 더 받았을 거라고 생각한다"면서 "세계 최고 수준의 재난대응 매뉴얼을 만들어 놓고 현장에서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아쉽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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