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론병 치료 흐름 역행‥"경장식 지원 축소, 현실과도 괴리"

[인터뷰] 세브란스병원 소아소화기영양과 이은주 교수
8주 집중 치료 후, 최대 1년까지만 지원…재발해도 대상 제외
크론병 환아에게 '경장식'은 관해 유도와 유지에 효과적 
PEN 중단되면 재발 위험·약물 의존↑…"현장 흐름과 완전히 어긋나"
치료 흐름 역행하는 정책…"예산 아닌 효율 중심 평가해야"

박으뜸 기자 (acepark@medipana.com)2025-08-06 05:57

세브란스병원 소아소화기영양과 이은주 교수. 사진=박으뜸 기자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크론병 환자에게 '특수조제분유(경장영양식이)'는 단순한 영양 보충제를 넘어, 관해 유도와 유지에 모두 기여하는 치료 보조수단이다. 단백질, 열량, 미량영양소를 균형 있게 공급해 체중 증가와 성장 회복을 돕고, 염증성 사이토카인을 줄여 질병 활성도를 낮춘다. 장내 병원성 미생물군 조절 및 장 점막 강화 효과도 보고돼 있다.

최근 글로벌 가이드라인은 경장식을 크론병 치료의 효과적인 전략으로 제시하고 있으며, 관해 유도뿐 아니라 관해 유지까지 확장된 치료 효과에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오히려 지원 축소라는 상반된 방향이 시행됐다.

보건복지부는 1991년부터 희귀난치성 소화기 질환을 앓는 19세 미만 아동에게 특수조제분유를 지원해왔다. 기존에는 최초 신청 시 8주간 집중 치료 기간 동안 필요량 100%를 지원하고, 이후 6개월마다 진료확인서를 제출하면 매달 30포(또는 액상형 60팩)를 추가로 지원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올해 4월부터는 집중 치료 이후 추가 지원을 최대 1년까지만 허용하고 있다. 재발 환자도 대상에서 제외된 셈이다.

크론병은 자가면역성 만성 염증질환으로 환자마다 중증도와 재발 양상이 다르고 치료 반응 역시 다양하다. 집중 치료 이후에도 영양적 보완이 필요한 환아가 적지 않은 만큼, 1년이라는 획일적인 제한은 현실과 괴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경장식은 영양제가 아닌 치료 보조수단

세브란스병원 소아소화기영양과 이은주 교수는 "크론병은 완치보다는 관해와 재발을 반복하는 특성이 있어 장기적 치료와 정기적인 모니터링이 핵심"이라며 "특히 소아기 발병은 성인보다 예후가 불량한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이들에게 경장식은 상당히 효과적인 치료 보조제"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완전경장영양(Exclusive Enteral Nutrition, EEN)을 대표적인 관해 유도 전략으로 꼽았다. 총 열량을 모두 경장식으로 공급하는 EEN은 크론병 소아 환자에서 6~8주 내 75~87%의 임상 관해율을 보이며, 내시경적 점막 치유도 유도한다. 스테로이드와 유사한 효과를 보이면서도 부작용은 적은 것이 장점이다.

최근에는 크론 제한식이(Crohn's Disease Exclusion Diet, CDED)와 부분경장영양(Partial Enteral Nutrition, PEN)을 병행하는 방식이 주목받고 있으며, 2025년 미국소화기학회 임상진료지침에도 포함됐다. PEN은 관해 유지에 효과적인 전략으로, 약물과 병용할 경우 관해 기간을 연장하고 재발률을 낮추는 데 도움을 준다. 실제로 이 교수는 진료 현장에서 PEN을 장기적으로 활용해 재발 없이 경과를 유지하는 환아들을 다수 경험했다고 전했다.

◆ 치료 흐름에 맞지 않는 제도…현장은 혼란

문제는 지원 제한 이후 PEN을 유지하기 어려운 환자들이 급증했다는 점이다.

이 교수는 "지원이 1년으로 제한되면서 환자 부담금이 수십만원으로 늘었고, 일부 보호자들은 경제적 사정으로 PEN을 중단하거나 섭취 비율을 줄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PEN이 중단될 경우 환아의 예후가 악화되고 재발 위험이 커지며, 염증 조절을 위해 생물학제제나 스테로이드 사용이 증가할 수 있다. 이는 치료 위험 부담과 의료비 상승으로 이어진다.

또한 크론병 경장식은 치료 초기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환자의 상태에 따라 장기적 접근이 필요한 경우도 많다. 1년 단위로 치료 효과나 필요성을 제한하는 방식은 질병 특성을 반영하지 못한 결정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정책 결정 방식도 논란이다. 실제로 복지부는 3월 중순 지역 보건소에 공문을 전달했고, 단 2주 만에 제도가 시행됐다. 현장의 의료진과 환자 가족 모두 별도의 설명이나 사전 고지 없이 정책이 시행된 것에 대해 혼란과 실망감을 표하고 있다.

복지부는 전문가 자문을 토대로 결정한 것이라 밝혔지만, 이 교수는 "실제 진료 현장의 소아소화기 전문의나 임상영양사와의 공식적 협의는 매우 제한적이었다"고 지적했다.

최근 일부 커뮤니티나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 특수조제분유가 되팔리는 사례가 확인되면서, 일각에서는 경장식의 과잉 처방이나 부정 수급 가능성을 문제 삼기도 했다. 이를 근거로 지원 축소가 불가피했다는 주장이 일각에서 제기됐지만, 의료계는 이를 전체 제도의 정당성 문제로 일반화해선 안 된다고 선을 긋는다.

이 교수는 "문제의 본질은 제도의 필요성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일부 허점을 막지 못한 관리 구조에 있다"며 "처방 기반 지급, 전산화된 수급 관리, 수령 내역 추적, 보호자 교육 등을 통해 낭비나 부정 유통은 충분히 차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금 필요한 것은 지원 축소가 아니라 제도의 정교화와 신뢰성 확보"라며 "의료적 필요가 분명한 환자들이 치료를 안정적으로 이어갈 수 있도록, 지속 가능한 지원 구조가 마련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의료계는 복지부가 단기적 예산 부담이 아닌 중장기적 의료비 관점에서 PEN의 비용 대비 효과를 평가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 교수는 "PEN 유지를 통해 생물학제제 추가 투약, 용량 증량, 입원이나 수술 같은 고비용 치료를 줄일 수 있어 오히려 전체 보건 재정 효율성을 높이는 전략"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현실적인 대안으로, 최초 신청 시 8주간 집중치료 기간 동안 전량을 지원하고 이후 6개월마다 진료확인서를 제출하면 추가 지원을 지속하는 기존 방식을 복원할 것을 제안했다.

이 교수는 "특수조제분유는 단순한 보조식품이 아니라, 아이들의 삶의 질을 지키고 성장 가능성을 지탱해 주는 '치료의 일부'임을 알아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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