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2021년 국정감사를 지켜본 희귀질환 환자들은 '실망스러웠다'고 답했다.
작년에 이어 올해 국정감사도 환자의 치료 접근성 확대가 주요 골자로 다뤄졌다.
그 중에서도 CAR-T 치료제 '킴리아', 척수성근위축증(SMA) 치료제 '졸겐스마' 등 '초고가 신약'에 대한 신속한 급여 등재 필요성이 제기됐다. 국정감사에는 급여를 기다리는 환자 및 보호자들이 직접 출석해 안타까운 사연을 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 타 '희귀질환' 환자들은 외면받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소위 문케어로 대변되는 현 정부의 마지막 국감은 '25억원', '초고가' 등 자극적인 단어와 특정 제품이 차지했기 때문이다. 다른 희귀질환에는 그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그나마 킴리아와 졸겐스마를 제외하고, 이번 국정감사에서 제시된 희귀질환으로는 '가성장폐색', '신경섬유종증', '트랜스티레틴 아밀로이드성 심근병증(ATTR-CM)'이 있다.
그런데 이조차도 정부의 '미온적 태도'가 환자들의 마음을 졸이게 만들었다. 질의에 대한 답변도 '원론적'인 수준이었다.
'가성장폐색'은 지난 10월 6일 열린 보건복지부 국정감사에서 국민의힘 이종성 의원이 대면 질의했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은 희귀질환을 앓고 있는 어린이들을 만나 병원비 걱정없는 나라를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이 의원은 그 당시 직접 만났던 5살 가성장폐색 환아가 9살이 된 지금까지도 희귀질환 보장을 못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은 "확인해 보겠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김미애 의원은 '코셀루고(셀루메티닙)'의 보험 급여 필요성을 질의했다.
아스트라제네카의 코셀루고는 지난 5월 국내에서 '수술이 불가능한 총상신경섬유종을 동반한 신경섬유종증 1형'에 허가됐다.
복지부는 "임상적으로 유용하고 가격 대비 효과성이 입증된 약제를 선별적으로 급여하는 건강보험 기본 원칙을 유지하며 적용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답변했다.

더불어민주당 강선우 의원은 킴리아, 졸겐스마와 더불어 화이자제약의 '빈다맥스(타파미디스)'의 신속 등재 필요성을 질의했다.
'트랜스티레틴 아밀로이드성 심근병증(ATTR-CM)'은 체내 단백질의 비정상적인 축적으로 인해 신장, 심장, 말초신경 등 신체 여러 장기에 치명적인 영향을 받는다. 만약 치료하지 않는다면 사망에 이르게 되는 심각한 진행성 질환이다.
그동안 아밀로이드증은 의료진들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지 않았고, 이렇다 할 치료제조차 없었다. 따라서 빈다맥스가 국내에 도입됐다는 소식은 아밀로이드증 환자들에게 '희망'의 끈과도 같았다.
빈다맥스는 비정상적이고 불안정한 트랜스티레틴 단백질을 안정화시키고 분열을 방지해, 환자 체내 아밀로이드 축적을 지연시키는 등의 효과를 보인다. ATTR-ACT 장기 연장 연구에서는 빈다맥스를 투약한 환자의 사망 위험 감소가 뚜렷히 확인됐다.
그러나 지난해 8월 식약처 허가를 받은 빈다맥스는 1년이 넘도록 비급여인 상태로 남아있다. ATTR-CM 환자들은 눈 앞에 치료제를 두고도 질환이 진행되는 것을 지켜보며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아밀로이드증 환우회 김동현 회장은 "빈다맥스는 ATTR-CM 환자들이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치료제이다. 하지만 정부는 우리나라 ATTR-CM 환자 규모를 정확히 알 수 없고, 약값이 비싸다는 이유로 여전히 보험 급여 적용 여부에 대한 판단을 미루고 있다"고 말했다.
예상은 했지만, 강선우 의원의 질의에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의 답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복지부는 "위험분담제 적용 방안 등 약가 설정에 대한 면밀한 검토와 합리적인 재정분담 방안을 도출하겠다"고 말했다.
앞선 초고가 신약에서와 태도부터가 다른 정부의 답변들은 희귀질환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아쉬움을 남겼다.
희귀질환 환자들의 치료 접근성 보장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전체 희귀질환 중 치료제가 개발된 비중은 극히 일부이다. 희귀질환은 수익성 문제로 제약사들이 쉽게 개발하지 않는 분야이며, 원인도 모르는 질환은 접근부터가 어렵다.
아울러 질병청 조사에 따르면, 희귀질환 환자들은 질환 특성상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진단부터 어려움을 겪는다. 약 45%의 환자가 증상부터 진단까지만해도 1,000만 원 이상의 의료비를 지출한다.
또한 암, 심뇌혈관질환과 달리 사보험이 전무해 환자들은 그 치료를 국가건강보험에만 의지할 수밖에 없다.
이에 우리나라는 건강 보험 급여 등재 절차를 개선하기 위해 다양한 제도를 마련해 왔다. 진료상 필수 트랙, 위험분담제, 경제성 평가 특례 제도
등이다.
그렇지만 이런 제도는 대체 치료 옵션 유무, 질환의 심각성, 소수의 환자, 기준 국가 중 3개국 이상 급여라는 조건 등을
충족해야 한다. 개발된 희귀질환 치료제가 있더라도, 조건을 만족시켜 급여가 완료될 때까지 기다리기에는 환자들에게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
희귀질환 치료제는 다른 의약품과 비교해 적용 대상 환자 수가 적어 비용효과성을 입증하기
어렵다. 일반 약제와 똑같은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은 불가하다. 경제성 평가를 면제하는 경우도 유병 인구 200명 미만의 희귀질환만
해당한다.
결과적으로 현행 제도의 요건이 지나치게 제한적이라 사각지대에 놓여진 희귀질환 환자들은 늘어나고 있다.
의료계 관계자는 "약의 개발과 급여는 환자의 생존율, 삶의 질 등 변화에 기여하기 때문에, 치료의 중요한 척도로 여겨지고
있다. 희귀질환에 혁신적인 약제가 개발돼 사용 허가를 받더라도 건강 보험 급여가 적용돼야 환자들이 실질적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희귀질환 환자들은 소수라는 점, 긴 투병 등 혹독한 현실에 매여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힘들다.
그래서 희귀질환 환자들은 이번 국정감사에서 자신의 질환이 언급된다면, 어느 정도 갈증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결국 희귀질환 환자들은 '실망감'을 가진 채 2021년 국정감사에서 물러나야 했다.
아밀로이드증 환우회 김동현 회장은 "희귀질환 치료제들의 보장성 강화에 대한 많은 질의와 지적이 이어졌음에도 정부의 답변이 여전히 원론적인 수준에 그친 것에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토로했다.
한 가지 희망적인 점은 있다. 국회가 계속해서 희귀질환 환자들의 치료 접근성 향상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더불어민주당 강선우 의원은 "이번 국정감사에서 주요하게 다뤄진 킴리아, 졸겐스마와 함께 빈다맥스와 같이 신속 급여화가 필요한 여러 희귀질환 치료제들도 주목해야 한다"면서 "희귀질환 제도 개선에 대한 정부의 보다 즉각적인 결단과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환자들을 대표해 김동현 회장도 "이번 국감에서 지적된 것처럼 희귀질환이 희귀하다는 이유로 차별을 받아서는 안된다. 정부는 희귀질환 환자들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을 먼저 직시하고, 치료제의 신속한 보험 급여 적용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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