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폐동맥고혈압 환자입니다"‥'상추' 작가가 전한 희망

[연중기획 희망뉴스] 9년 전 폐동맥고혈압 진단‥일상생활에서 편견과 잘못된 인식 매일 마주
폐동맥고혈압 환자 그림일기 연재, 홍보 영상 제작 등 인식 개선 노력 앞장

박으뜸 기자 (acepark@medipana.com)2021-11-01 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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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저는 폐동맥고혈압 환자입니다."

'상추' 작가는 자신의 질환을 감추지 않고 드러냈다. '폐동맥 고혈압(Pulmonary arterial hypertension, PAH)'을 제대로 알려야 겠다는 의지가 컸기 때문이다. 

9년 전 폐동맥고혈압을 진단 받은 상추 작가는 일상생활에서 매일같이 '편견'과 '잘못된 인식'을 마주했다. 

질환 자체에 인지도가 낮다 보니 폐동맥고혈압을 단순히 '고혈압'의 일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또 증상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다보니 '꾀병'이 아니냐는 무례한 농담도 들었다. 

하지만 '폐동맥고혈압'은 엄연히 고혈압과는 다르다. 장에서 폐로 혈액을 공급하는 '폐동맥' 혈압이 상승하는 희귀 난치성 질환이다. 

주요 증상은 호흡곤란, 숨참, 가슴 통증 등 빈혈이나 심장질환 등과 유사하다. 그러나 폐동맥고혈압의 진단과 치료가 적극적으로 이뤄지지 않을 시, 평균 생존기간은 2-3년 정도다. 

'상추' 작가는 2020년 8월부터 현재까지 인스타그램(@sangchu0015)에 약 55개의 그림일기 에피소드를 게시했다. 이를 통해 폐동맥고혈압 뿐만 아니라 여러 질환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에게 많은 공감과 지지를 얻고 있다. 

◆ 9년 전 첫 진단, '폐동맥고혈압'은 나의 한 부분

폐동맥고혈압은 폐동맥의 압력이 상승해 발생하는 희귀질환이다. 폐동맥은 심장에서 폐로 혈액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는데, 폐동맥고혈압은 이 기관이 수축하거나 막히면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 

폐동맥고혈압의 증상은 비특이적이다. 대표적인 증상은 호흡곤란, 만성피로, 어지럼증, 실신, 가슴 통증, 부종 등이 있다. 

이처럼 폐동맥 고혈압은 특별한 자각증상이 없어 치료를 받기까지 진단까지 평균 1.5년이 소요되며, 심각한 상태에 이르러서야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폐동맥고혈압으로 국내에서 치료 중인 환자는 약 1,500명이지만, 진단 및 치료를 받지 못한 숨겨진 폐동맥 고혈압 환자는 약 4,500~6,000명으로 추정된다. 

폐동맥고혈압은 빠른 진단과 치료가 시행된다면 충분히 오래 살 수 있다. 반대로 폐동맥고혈압은 적절한 치료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평균 생존 기간이 2~3년으로 짧다. 

특히 국내 폐동맥고혈압 환자의 예후는 더욱 좋지 않다. 국내 환자의 3년 생존율은 54.3%로 확인되는데, 이는 일본의 82.9%, 미국의 73% 대비 매우 낮은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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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추 작가의 '시간의 굴레' 에피소드 중 일부>

  

상추 작가는 비교적 빨리 폐동맥고혈압을 진단받은 케이스이다. 중학교 졸업 후인 2013년 특발성 폐동맥고혈압을 진단받고, 올해 9년째 치료를 지속하고 있다. 

상추 작가는 고등학교 입학 후 약한 체력으로 인해 실신하는 일이 잦았다. 하루에도 여러 번 정신을 잃을 정도였다. 

표면적으로는 큰 어려움이 없어 보였지만, 몸 상태가 악화돼 일주일에 두 번만 등교할 때도 있을 만큼 학업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결국 입학 후 3개월 만에 자퇴서를 내야 했다. 

이는 폐동맥고혈압을 진단받은 환자들의 공통된 사례였다. 많은 폐동맥고혈압 환자들이 학업이나 직업 등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호소했다. 

"폐동맥고혈압을 진단받은 이후 저의 삶은 '사라지는 삶'이었어요. 몸이 아프면 주변인들이 사라져요. 제가 아프니까 선뜻 연락하지 못하거나 연락이 와도 답장하기 망설여졌죠. 혼자가 된 시간 동안 무능력한 자신과 외로움을 견뎌내야 했습니다."

폐동맥고혈압과 함께 하는 삶은 번거로운 일 투성이다. 상추 작가는 검사를 받는 날은 유독 고역이라고 설명했다. 하루 종일 주사를 맞고, 채혈을 여러 번 진행하는 등 고통을 겪는다. 최근 작가는 폐동맥고혈압 증상이 심해져 중환자실에 입원까지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 했나.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해 마스크까지 착용하니 생활이 더욱 힘들어졌다. 폐동맥환자가 마스크를 쓰는 것은 불편을 넘어 호흡을 가로막는 치명적인 고통이다. 

환자들은 마스크 없이도 평지를 걷다가 숨이 차면 한 번씩 쉬어야 한다. 그런데 마스크까지 착용하면 숨을 쉴 수가 없어 이동 범위가 더욱 줄어들었다. 심지어 집 앞 슈퍼에 가기 위해서도 오랜 고민을 해야 했다.

◆ '폐동맥고혈압'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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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추 작가의 '흔한 오해' 에피소드 중 일부>

폐동맥고혈압을 앓고 있는 상추 작가가 힘든 것은 또 있었다. 바로 사람들의 '시선'이다. 

거듭 말하지만 폐동맥고혈압은 고혈압과 다른 질환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인지도가 낮은 탓에 오해도 많이 받는다. 

상추 작가는 '나이가 몇인데 젊은 사람이 벌써 고혈압이냐'는 핀잔도 들었다. 그냥 고혈압이 아닌 '폐동맥고혈압'이라고 정정해도, '폐동맥고혈압이나 고혈압이나 그게 그거 아니야?'라고 되묻는 일이 잦았다. 

마치 본인이 건강 관리를 못해서 젊은 나이에 걸린 병이라는 분위기다. 

그렇지만 제대로 알아야 한다. 폐동맥고혈압은 원인이 불분명한 특발성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발병 연령 또한 비교적 젊고, 루푸스나 전신경화증, 류마티스 관절염과 같은 자가면역질환 환자에서 합병증으로 폐동맥고혈압이 발생할 수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일상생활이 안될 정도로 숨이 차지만 증상이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폐동맥고혈압 특성상 '게으르다', '끈기가 없다'는 부정적인 시선이 따라왔다. 

상추 작가는 지하철 역 계단을 오르기엔 숨이 차 엘리베이터를 타야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겉만 보고 '새파랗게 젊은 사람이 엘리베이터를 탄다'는 날선 말을 내뱉었다.

'크게 티가 나지 않는데, 가만히 있어도 아픈 거야?'라고 물어보는 지인도 있었다. 조금만 걷거나 무거운 것을 들면 숨이 차고 어지러워 기절할 수도 있는데, 사람들은 '멀쩡해 보인다'며 농담을 한다. 

장난 혹은 가볍게 던지는 말이라지만, 폐동맥고혈압으로 고통 받는 상추 작가에게는 매일이 화살에 쏘이는 느낌이었다.  

"악의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도 힘들었습니다. 폐동맥고혈압에 대한 인지도가 낮은만큼 주변 때문에 고통이 가중됐죠. 사람들의 시선에 여러 번 상처를 입은 후 이 병을 적극적으로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상추 작가는 배려가 필요한 모든 이들에게 '그림'으로 따뜻한 응원을 전하기로 결심했다. 

"달라진 본인을 받아들일 때 새로운 하루가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 펜 끝으로 전하는 '따뜻한 응원' 

상추 작가는 자신의 하루를 그림으로 표현해 인스타그램에 올려보기로 했다. 배운 적은 없지만 어릴 때부터 그림을 좋아했던 것이 좋은 계기가 됐다. 

자신과 같은 사람들을 응원하기 위해 시작한 그림일기는 오히려 상추 작가에게 위로가 되기도 했다. 2020년 8월부터 올라간 인스타그램 속 게시물에는 '공감이 간다'는 댓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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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들의 공감과 지지에 힘입어 상추 작가는 한국폐동맥고혈압환우회 '파랑새'와 함께 본인의 캐릭터 및 그림 일기 내용을 활용, 폐동맥고혈압 인식 개선 홍보 동영상을 만들었다. 

이 영상은 누구나 쉽게 폐동맥고혈압을 이해해 조기에 진단할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영상은 한국폐동맥고혈압환우회 유튜브(https://www.youtube.com/watch?v=LVWsiA_WjNg)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상추 작가는 자신의 작은 날개짓이 변화를 일으키길 소망했다. 질환에 대한 인지도가 향상돼 '폐동맥고혈압'이 '고혈압'이냐는 질문으로 되돌아오지 않기를 바랐다. 

"제 성이 '추' 씨거든요. 닉네임이 고민돼 친구한테 상추, 부추, 배추 중 골라 달라고 했더니, 친구가 쌈은 역시 상추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 이름도 상추가 됐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딱 맞는 닉네임이 아닐까 싶어요. 상추처럼 투박하고 친숙한 이미지로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싶습니다. 희귀질환자를 넘어 모든 배려가 필요한 이들을 위해 그림을 그릴게요. 우린 함께할 때 더욱 빛이 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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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2021.12.16 22:44:48

    이런 정보가 널리널리 알려져 이 병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바뀌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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