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암 환자 생사 가르는 '진균감염'‥적재적소 '항진균제' 사용 중요

[연중기획 희망뉴스] 면역력 약해진 혈액암 환자, '진균감염' 위험도 커
침습성 감염 치료 위한 선제적 약제 확보‥신규 항진균제 필요 

박으뜸 기자 (acepark@medipana.com)2022-02-08 06:06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많은 사람들이 혈액암 환자에게 '진균감염'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알지 못하는 것 같아요."

한국혈액암협회 장원영 부장<사진>도 혈액암 환자였다. 그래서 그 누구보다 '진균감염'의 위험성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혈액암 치료법의 대부분이 '면역력 저하'를 일으키기 때문에, 혈액암 환자들은 언제나 감염의 위험이 뒤따른다.

그런데 대부분의 진균감염은 중증도가 높지 않은 질환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정작 '치료제' 도입이나 급여는 큰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면역이 저하된 환자들에서 칸디다(candida), 아스페르길루스(aspergillus), 크립토코쿠스(cryptococcus)와 같은 기회감염성 진균은 치명적이다. 이들에 의한 감염 및 사망률은 전 세계적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암 치료만으로도 힘든 환자들에게 진균감염은 치료 성과나 생명의 연장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나라도 '진균감염' 예방과 치료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 혈액암 환자가 주의해야 할 '감염'

장 부장은 한국혈액암협회의 '지원사업 본부'에서 일하고 있다. 

지원사업 본부는 환자들을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약제비와 치료비를 지원하는 경제적 지원 프로그램, 질환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는 교육 지원 프로그램, 그리고 환우들의 치료 환경을 개선하는 권익 옹호 활동이 있다.

이 과정에서 장 부장은 많은 혈액암 환자들을 상담하고 있다. 

그는 환자들에게 '진균감염'에 대해 주의를 주기도 한다. 치료 과정이나 그에 따른 성과도 중요하지만, 면역력이 워낙 낮아진 혈액암 환자에게 '진균감염'은 언제나 주의해야 할 부분이기 때문이다. 

"혈액암 뿐만 아니라 모든 암이 그렇듯, 암 치료를 위해 항암 치료를 받게 되죠. 세포독성항암제 등은 암세포를 죽이기도 하지만 백혈구 같이 몸에서 유익한 기능을 하는 세포들까지 같이 죽여요. 이 탓에 면역력이 떨어집니다. 면역력이 낮아지면 진균감염, 감기나 여러 가지 바이러스 등 감염 질환에 대해 굉장히 취약해 집니다."

특히 혈액암은 질환 특성상 완치가 어렵다. 치료를 위해 골수 이식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식 받은 골수로부터 만들어진 면역세포가 자신의 장기를 공격하지 않게 하기 위해 면역억제제를 복용한다. 이미 면역이 약해진 상태에서 면역억제제까지 더해지면, 혈액암 환자들은 균 감염에 굉장히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혈액암 환자는 일상에서도 진균감염 위험이 뒤따릅니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경우, 그 과정에 얼마든지 감염의 우려가 있죠. 그나마 골수 이식을 받게 되면 무균실에 있게 되는데 오히려 그때는 감염 위험이 덜한 편이에요.

입원하지 않고 통원 치료를 받는 경우, 치료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갈 때 감염의 위험이 도사리죠. 치료 후 면역력이 떨어져 있는 상태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일반인들과 같이 생활해도 감염 위험은 높습니다."


◆ 혈액암 환자에게 치명적인 '진균감염'

최근 국내에는 진균감염으로 인해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 수가 증가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질병통계를 활용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인구의 약 7.1%가 매년 진균 질환으로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기회감염 진균증의 연도별 증가 양상이 관찰됐다. 국내 한 대학병원의 통계에 의하면 혈액암 환자에서 진균 감염 원인균의 81%가 아스페르길루스, 칸디다 12%, 털곰팡이(mucormycetes) 2%, 기타 곰팡이 2%, 기타 효모균 1%로 나타났다. 이러한 진균들은 주로 폐렴(73%)으로 발생했다. 

침습성 진균감염의 한 종류인 아스페르길루스증(Invasive Aspergillosis)은 면역이 저하된 환자에서 많이 발생한다. 최근 항암 치료나 HIV 환자의 증가로 인해 국내에서도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아스페르길루스 감염은 면역결핍 환자에서의 사망 원인 중 하나이다.  

침습성 아스페르길루스증은 치료 실패율이 절반에 이르며 항암 치료 중에 감염된 환자에서 최대 60%, 조혈모세포이식 환자에서는 약 90%의 치사율을 보일 정도로 치명적이다. 

털곰팡이증은 이환율(morbidity)과 사망률(mortality)이 높다. 이에 털곰팡이증은 조기 발견과 진단 및 신속한 항진균제 투여가 중요하다. 진균 배양과 동시에 치료가 시작되기도 하며, 진균 배양 결과를 기다리지 않고 치료가 시작되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

침습성 아스페르길루스증과 털곰팡이증을 앓고 있는 환자는 유사한 기저질환, 위험 인자 및 임상적 징후를 보인다. 

"구체적인 균 이름들을 알지는 못해도, 저와 상담하는 혈액암 환자들 중에는 진균감염이나 곰팡이균으로 인해 추가적인 치료를 받는 케이스가 많습니다. 

항암 치료 중이나 항암 치료 직후 또는 골수 이식을 받았을 때 진균감염에 많이 걸렸고, 또 한 번 힘든 치료를 해야 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한 예로 A씨는 항암 치료를 받던 당시, 당사자도 진균감염에 대해 잘 몰랐고 병원에서도 치료 대응이 늦어 폐 일부를 절제해야 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A씨의 백혈병은 완치됐으나 폐 절제로 인해 조금 격한 운동을 하면 숨이 찬다. 점차 나이가 들면서 이런 증상이 더 심해지고 있다고.

또 다른 사례로는 B씨가 있다. 그는 항암 치료가 잘 끝나 3개월에 한 번씩 추적 관찰을 하고 있다. 

하지만 진균감염으로 인해 폐에 문제가 생겨, 약물 치료를 받았음에도 상태가 악화돼 스텐트 시술까지 받았다. 그럼에도 경과가 좋지 않아 굉장히 위중했던 경험이 있다. 

혈액암 환자에게 진균감염이 발생하면, 치료 자체에 지장을 준다. 더 나아가 사망률을 크게 높이기도 한다.

"혈액암은 큰 불이고 진균감염은 작은 불입니다. 혈액암은 직접적으로 생명의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에 1차적으로 암 치료에 의료진과 환자 모두 집중을 해야 하죠. 

그렇다고 진균감염의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어요.

진균감염이 발생하면 원래 계획했던 일정대로 항암치료를 진행하지 못합니다. 감염으로 인해 상태가 너무 안 좋아지거나 면역이 너무 떨어져도 추가 항암 치료가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또한 항암 치료는 잘 됐지만 진균감염 치료를 위해 퇴원을 못하고 더 길게 입원을 해야 할 수도 있죠. 항암 치료를 잘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진균감염 등 2차 감염이 폐렴이나 패혈증으로 진행되면 생명이 위태로울 수도 있고요."


◆ '항진균제'의 올바른 사용과 정책적 지원


장 부장은 '진균감염'에 대해 정책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제가 혈액암 환자였던 10년 전, 그 당시 '진균감염'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어요. 

환자가 불편한 점을 이야기하면 의료진이 그에 대해 대증 치료를 해줬고, 항암 치료를 받으면 어쩔 수 없이 겪어야 되는 과정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다행히 요즘은 항암 치료를 하는 대부분의 병원에서 전문 간호사나 전문 교육 프로그램이 있어요. 그래서 환자가 퇴원할 때 관련 교육을 받을 수 있습니다. 덕분에 환자들이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치료하고 감염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됐죠."


혈액암협회도 환우들을 대상으로 질환별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강의에 참여하는 환자들은 생활 관리나 감염 증상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배운다. 

협회 유튜브 채널에도 감염 관련 콘텐츠가 올라가고 있다. 

장 부장은 항암 치료 중이거나 암 치료 후 면역력이 약해진 환자에게 침습성 진균감염이 치명적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줬다. 그는 침습성 감염 치료를 위해 선제적 약제 확보와, 항진균제를 적재적소(適材適所)에 사용할 수 있는 급여 개선을 요구했다. 

"진균감염과 더불어 일반적인 감염 치료는 보통 의료보험이 적용되는 약들을 일단 1차적으로 쓰입니다. 

진균감염과 관련해 급여가 되는 약들이 있으나, 오래된 것들이 대부분이에요. 

똑같은 질환이라도 더 효과가 좋거나 부작용이 적은 신약이 있습니다. 이런 신약을 초기 치료에 쓸 수 있다면 좀 더 성과가 좋을 것 같습니다. 

급여가 되지 않아 비용적인 부담으로 인해 필요한 신약을 적절히 쓰지 못하는 것이 고민입니다."


흔히 쓰이는 항진균제 '보리코나졸'은 털곰팡이증에는 활성이 없다. 반면 침습성 폐 아스페르길루스증(Invasive Pulmonary Aspergillosisis, IPA) 환자에서는 암포테리신 B 보다 생존율을 더 높였다. 따라서 그동안 의사들은 IPA와 폐 털곰팡이증을 구별해 항진균제를 사용해 왔다. 

그런데 화이자제약의 '크레셈바(이사부코나졸)'는 침습성 아스페르길루스증과 침습성 털곰팡이증 모두에 적응증을 갖고 있는 항진균제이다.

크레셈바는 예측 가능한 약역학(Pharmacokinetics)을 제공해 치료 약물 모니터링(Therapeutic drug monitoring)이 필요하지 않다. 그리고 고령자나 말기 신질환 환자를 포함한 신장애 환자, 경증 또는 중증도 간장애 환자에게 용량 조절이 필요하지 않다.

크레셈바는 2020년 9월 국내 출시된 후, 2021년 6월 국가필수의약품으로 신규 지정돼 질병 관리 등 국가 보건의료상 필수적으로 필요한 약제임을 인정받았다. 

침습성 아스페르길루스증을 대상으로 한 SECURE 임상 3상 연구에는 18세 이상의 성인 환자 527명이 참여했다. 

2007년 3월에서 2013년 3월 동안 보리코나졸 대비 크레셈바의 비열등성과 안전성을 평가한 결과, 크레셈바는 보리코나졸에 상응하는 생존율을 보여줬다. 42일 동안 모든 원인에 의한 사망률은 크레셈바 치료군에서 19%(48/258), 보리코나졸 치료군에서 20%(52/258)로 나타났다. 

안전성 측면에서 이상반응은 크레셈바가 보리코나졸 대비 유의하게 적었고, 부작용으로 인한 치료 중단 또한 적게 나타났다. 약물 관련 이상반응(drug related TEAEs)은 크레셈바 42%(n=257) vs 보리코나졸 60%였다. 치료 중단율(TEAEs leading to discontinuation)은 크레셈바 14% vs 보리코나졸 23%로 보고됐다. 

SECURE 임상시험에서 환자의 병원 자원 이용률에 대한 하위 분석 결과, 크레셈바는 침습성 아스페르길루스증이 있는 취약한 환자에서 보리코나졸 대비 입원 기간이 더 적은 것으로 확인됐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중증도 내지 중증의 신장 장애 환자에서 10일 감소(유의하게 더 적은 입원 일수), 만 65세 보다 고령 환자에서 5일 감소(더 적은 입원 일수 경향), BMI 30kg/m2 이상인 환자에서 8일 감소(더 적은 입원 일수 경향)로 나타났다. 

이를 기반으로 크레셈바는 유럽백혈병감염학회 가이드라인(ECIL-6)에서 백혈병 및 조혈모세포이식 환자의 침습성 아스페르길루스증 1차 치료제로 권고되고 있다. (권고수준 A1)
 
VITAL 임상은 18세 이상 성인 환자 37명을 대상으로 2008년 4월부터 2013년 6월까지 평가한 침습성 털곰팡이증 연구다. 

임상 결과 크레셈바는 침습성 털곰팡이증에서 암포테리신 B와 비슷한 유사한 생존 결과를 보였다. 모든 원인에 의한 사망률은 크레셈바 치료군(n=21)에서 33%, 암포테리신 B 치료군(n=33)에서 39%으로 확인됐다. 

아울러 크레셈바는 취약하고 치료하기 어려운 침습성 털곰팡이증 환자에서 양호한 안전성 프로파일을 나타냈으며, 16%의 환자만 이상반응으로 인해 투여를 중단했다.
 
그러나 크레셈바는 국내에서 비급여 상태이다.

"크레셈바라는 침습성 진균감염 치료제는 미국과 유럽에서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돼 환자들이 좋은 조건으로 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한국에서는 허가만 받고 급여가 되지 않아 환자가 100%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이 신약이 급여 적용된다면 환자들이 직접 약을 사용하고 싶은 의지를 내비치지 않아도 의료진이 당연히 먼저 쓸 것입니다. 

혈액암의 경우 고령의 환자가 많습니다. 환자 입장에서는 항암 치료 비용만으로도 힘든데, 2차 감염 치료나 이로 인한 후유증을 걱정하면서도 경제적으로 부담되는 상황입니다."


현재 개발된 '항진균제'의 종류는 상당히 제한적이다. 어려운 임상시험을 거쳐 새로운 항진균제가 개발됐더라도,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진균감염의 위중함이 인정되지 않아 '급여'를 받기 힘들다. 

"우리나라에서 치료제가 급여가 되려면, 기존의 약들 대비 신약이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약값에 비견할 만한 경제적인 효용이 있는지 등 정량적인 부분만 고려되는 것 같아요.

물론 정부 입장에서는 제한된 예산으로 많은 질환과 신약을 고려해야죠. 그렇지만 정성적인 평가도 분명히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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