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라토비'가 유일한 희망‥'대장암' 환자들의 간절한 기다림

[연중기획 희망뉴스] BRAF V600E 변이 전이성 직결장암, '비라토비' 유일한 치료 옵션
OS 늘린 '비라토비-세툭시맙 병용요법', 계속된 급여 지연에 기다리던 환자들 애간장

박으뜸 기자 (acepark@medipana.com)2022-08-16 06:08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이미란(52세, 여) 씨는 카페 매니저로 살아가는 충직한 직장인이였고, 단란한 가정을 일궈온 성실한 엄마이자 아내였다.

그런데 아직 코로나19가 세상에 없었던 2019년, 이미란 씨는 복통, 복부팽창, 높은 혈압으로 갑자기 응급실을 찾게 됐다. 가볍게 생각하고 방문한 응급실에서 이 씨는 이미 복막까지 전이된 직결장암을 진단받았다.

게다가 단순한 직결장암이 아니었다. 이미란 씨는 이름마저 길고 어려운 'BRAF V600E 변이 전이성 직결장암'이었다. BRAF V600E 유전자 변이는 예후를 악화시킬 뿐 아니라, 전체 전이성 직결장암 환자의 4.7%에서 발생할 만큼 희귀했다.

"제가 워낙 건강해서 가족들도 큰 병에 걸릴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어요. 병원에서 직결장암이라고 하니 울면서 남편에게 전화했던 기억이 나요."

BRAF V600E 변이 전이성 직결장암으로 진단받은 뒤, 이미란 씨는 바로 수술을 받았다. 그리고 약 3년간 항암화학요법과 표적항암제를 병용한 치료를 30차까지 받았다.

하지만 반복된 '재발'은 이미란 씨를 지독한 딜레마에 빠지게 만들었다. 직결장암은 수술 이후에도 20~50%의 환자가 재발을 경험할 뿐만 아니라 대체로 원격전이가 동반되는 광범위한 재발 형태가 많아 치료가 어렵다. 여기에 이 씨가 'BRAF V600E 변이'를 가졌기 때문에, 더욱 기존 치료로는 효과를 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또 다른 BRAF V600E 변이 직결장암 환자 A씨와 B씨도 첫 진단 당시의 상황을 생생히 기억했다.

"평소 오랜 기간 동안 변비와 치질 증상이 있었고, 컨디션에 따라서 증상의 기복이 있는 편이었어요. 2021년 봄 즈음부터 피로감과 아랫배의 불편함을 느껴지며 변비 증상이 심해지고 있었어요. 통증이 점점 심해지는 것을 느껴 2021년 7월 항문외과 진료를 받고 건강검진과 함께 대장내시경검사를 했습니다. 검사 결과 이미 전이가 상당이 진행된 대장암 4기였어요. 세부적인 유전자 검사 결과 BRAF 유전자 변이 암이라는 것을 알았죠." (BRAF V600E 변이 직결장암 환자, A씨, 48세, 여)

"식은땀이 나면서 변비가 아주 심했어요. 그런데 그 상태가 너무 심해져 병원에 갔더니 BRAF V600E 변이 전이성 직결장암이라더군요. 이 변이 직결장암은 완치 가능성도 낮고, 항암 치료는 생명 연장의 수단이니 큰 기대를 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처음 암 진단을 받았던 순간보다 훨씬 더 무서웠습니다." (BRAF V600E 변이 직결장암 환자, B씨, 50대 초반, 여)

◆ 마땅한 '치료제'가 없어 항암 치료에 의존


BRAF V600E 변이와의 악연은 질기고 또 질겼다.

BRAF V600E 변이는 전체 전이성 직결장암 환자에서도 5% 이내에서만 나타날 만큼 희귀하다. 또 암 세포가 기존 치료에 잘 반응하지 않는다.

이미란 씨(사진)가 암을 진단받았을 당시만 해도 BRAF V600E 변이에 대한 치료제가 없어 기본 항암 치료만 가능했다.

이미란 씨는 1차 항암 치료로 FOLFOX 요법과 표적항암제인 베바시주맙의 병용요법으로 치료를 받은 뒤, 2차 항암 치료로는 FOLFIRI 요법과 베바시주맙 병용 치료를 진행했다.

직결장암은 표적치료제와 기존의 세포독성항암제의 병용요법이 표준요법으로 사용되고 있다. 류코보린(Leucovorin), 옥살리플라틴(oxaliplatin), 이리노테칸(irinotecan), 5-FU (5-fluorouracil) 등 세포독성항암제와 표적치료제인 베바시주맙(bevacizumab), 세툭시맙(cetuximab) 등을 조합해 치료한다.

그러나 BRAF V600E 변이가 변수였다. 이미란 씨는 12번의 항암 치료 끝에 종양이 발견되지 않아 3개월마다 검진을 했으나, 6개월 만에 재발을 확인했다.

이후에도 2차로 18번의 항암 치료를 지속했다. 힘든 항암 치료를 끝냈지만 또 3개월만에 재발을 경험했다.

이처럼 BRAF V600E 변이 전이성 직결장암은 기존의 표준 치료 옵션에도 불구하고 재발이 잦은 편이다. 현행 치료에 따른 BRAF V600E 변이암의 기대 여명은 1년 미만으로 보고된다.

잦은 재발은 이미란 씨에게 심한 좌절감을 느끼게 했으며, 치료에 대한 의지조차 꺾어 버렸다.

"항암 치료 중에는 삶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어요. 호중구 수치가 계속 내려가 수치를 올리는 주사를 맞으면서 항암 치료를 미루고 있었는데 3개월 만에 재발한 거예요. 1차 항암 치료에는 운동도 병행하며 한 번 해 보자 다짐했지만, 2차 재발에서는 내 삶이 얼마 남지 않음을 직감했어요. 죽음을 대비하는 심정이었죠."

◆ 유일한 신약 '비라토비'에 거는 간절함

그러던 와중, 이미란 씨에게는 희망이 생겼다.

BRAF V600E 변이 직결장암의 유일한 치료제인 한국오노약품공업의 '비라토비(엔코라페닙)'를 만났기 때문이다.

이미란 씨는 2차 재발 판정을 받은 올해 3월부터 비라토비 처방을 받았고, 현재까지 재발없이 치료를 이어오고 있다.

비라토비는 지난해 8월, '이전 치료 경험이 있는 BRAF V600E 변이가 확인된 전이성 직결장암의 성인 환자의 치료 시 세툭시맙과의 병용요법'으로 국내 허가를 받았다.

비라토비는 이전 치료 경험이 있는 BRAF V600E 변이가 확인된 전이성 직결장암 환자에게서 생존기간(OS) 연장이라는 임상적 혜택을 증명했다. 재발이 잦고 완치가 어려운 BRAF V600E 변이 직결장암에도 처음으로 제대로 싸워볼 무기가 생긴 것이다.


비라토비-세툭시맙 병용요법은 1차 또는 2차 치료 후에 질병이 진행된 BRAF V600E 변이가 있는 진행성 또는 재발성 직결장암 환자를 대상으로 전체 생존기간 중앙값(mOS) 9.3개월을 달성했다. 세툭시맙 기반 항암화학요법 병용 치료를 받은 환자군(대조군)의 5.9개월보다 평균 생존기간을 약 4개월 연장시켰다.

무진행 생존기간 중앙값(mPFS) 역시 비라토비-세툭시맙 병용군이 4.3개월로 대조군의 1.5개월보다 유의하게 높게 나타났으며, 객관적 반응률(ORR) 지표에서도 대조군의 2%보다 비라토비-세툭시맙 병용군이 약 20%로 현저하게 높게 나타났다.

안전성 측면에서도 비라토비-세툭시맙 병용요법에서 예상치 못한 독성은 없었다. 

기존 항암화학요법으로 치료를 진행했을 때 환자들은 구토, 탈모 등을 호소했다. 반면 임상연구에서 확인한 비라토비-세툭시맙의 이상반응은 충분히 관리 가능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해당 임상 결과를 기반으로 NCCN 가이드라인에서는 BRAF V600E 변이 전이성 직결장암 환자의 2차 이상 치료에서 비라토비-세툭시맙 2제 요법만을 유일하게 권고하고 있다.

"이전의 항암 치료는 극심한 고통과 구토 등의 부작용이 있었죠. 그래서 다시 시작하기 겁이 났어요. 그런데 비라토비-세툭시맙 병용요법을 처방받은 뒤 통증도 멈추고 몸이 점차 편해졌어요. 삶의 질 자체가 달라졌고, 종양도 더 이상 자라나지 않고 있습니다."

이미란 씨를 포함한 많은 환자들이 비라토비의 효과를 경험했다.

"저 같은 경우에는 복부까지 암이 전이가 돼 음식을 먹고, 소화시키기가 너무 어려운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비라토비-세툭시맙 병용요법을 처방받고 난 뒤에는 통증이 멈추고, 체력이 점차 돌아왔습니다. 종양 수치 또한 30분의 1로 줄어든 상태입니다." (BRAF V600E 변이 직결장암 환자, A씨)

"비라토비를 처방받고 나서부터 암 수치가 260에서 17.7까지 내려갔습니다. 이전 항암 치료에서 가장 성적이 좋았을 때가 56이었기 때문에 상당히 만족하고 있습니다." (BRAF V600E 변이 직결장암 환자, B씨)

◆ 아직 비급여인 '비라토비', 기약없는 기다림만

그러나 환자들이 비라토비를 얼마나 오래 사용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현재 비라토비-세툭시맙 병용요법의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한 달 기준 천 만원 이상의 비용이 소요된다. 천 만원도 온전히 약제에만 들어가는 비용만을 계산한 것으로, 입원 및 진료 비용까지 합쳐지면 금액은 더욱 커진다.

비라토비는 지난 1월 암질환심의위원회를 통과했지만 약제급여평가위원회 논의에서 제외되면서 계속 급여가 늦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1월에 암질환심의위원회를 통과했다는 소식을 듣고, 6-8개월 뒤면 급여가 적용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급여 시기에 맞춰 미리 치료에 돌입했는데 이후 급여가 지연돼 돈은 돈 대로 나가고 진척이 없어 정말 답답한 상황입니다.

비라토비가 아니면 고통스러운 항암 치료를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생각만 해도 너무 힘들어요. 이제는 이 치료를 멈추면 더 이상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살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라토비의 급여 논의가 미뤄지면서 이미란 씨는 커뮤니티를 통해 같은 문제를 갖고 있는 환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익명을 요청한 A씨와 B씨도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동지였다.

이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것은 '경제적 부담'이었다.

대부분의 BRAF V600E 변이암 환자들은 오랜 투병 생활로 직장을 그만두거나 치료를 포기했다. 일부 치료비가 환급되지만 환자들의 걱정을 덜어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비싼 약값 때문에 사실 제가 얼마나 오래 이 약을 더 쓸 수 있을지 잘 모르겠어요. 돈이 없어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사실이 남일이 아니었습니다. 빠르게 건강보험이 적용돼 치료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 이어 나갔으면 좋겠어요. 정부는 부디 보다 많은 생명을 지킬 수 있는 방향으로 판단하고, 신속히 움직여 주길 바랍니다." (BRAF V600E 변이 직결장암 환자, A씨)

"BRAF V600E 변이를 가진 환우들과 얘기해 보면 젊은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그런데 그런 분들이 결국 치료를 포기해요. 배우자나 가족에게 경제적 부담을 주기 싫다는 이유였어요.

현재 비라토비는 비급여라 지속적으로 치료를 하기에 경제적인 부담이 상당한 편입니다. 지금처럼 급여가 안 된다면 저는 어쩔 수 없이 치료를 포기할 수밖에 없어요. 가족들의 미래를 담보로 얼마나 치료를 강행할 수 있을지 심리적으로 불안함이 큽니다. 내가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 하나로 인해 가족 모두가 길거리에 나앉을 수 없잖아요.

소수의 희귀암이고 치료제가 최근 나온 약들에 비해 크게 비싸지 않기 때문에 재정적으로 엄청 큰 부담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는 급여 과정에서 환자의 목소리가 배제되고 있어요. 소수 환자들의 고민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반응해 주길 바랍니다. 
 (BRAF V600E 변이 직결장암 환자, B씨)

과거 이미란 씨는 단 한 번도 미래를 상상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비라토비로 처방을 받고 있는 현재, 희망뉴스 인터뷰 자리를 빌어 조심스럽게 '소망'이 무엇인지 물어봤다.

"BRAF V600E 변이 직결장암 치료제인 비라토비가 급여가 된다면 삶을 꿈꿀 수 있을지도 모르죠. 만약 그렇게 된다면 저와 같은 환자들에게 도움을 주는 활동을 해보고 싶습니다. 환우들과 직접 만날 수 있는 봉사활동, 그림과 글로 투병기를 써 긍정적인 영향력을 전달하고 싶어요."

익명으로 인터뷰에 나선 두 환자도 작은 소망을 내비쳤다.

"초등학교 5학년 딸이 성인이 될 때까지 버티고 싶어요. 아이가 꿈꾸는 미래의 모습 속에 엄마로 함께 해 주는 것이 꿈입니다. 또 남편과 더 많이 더 오래 함께 시간을 보내고 의지가 돼 주고 싶어요. 제게 완치라는 기적이 일어난다면 아프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BRAF V600E 변이 직결장암 환자, A씨)

"최근 처음으로 친구들과 외식을 했습니다. 이전에는 면역력이 약해 사람 만나는 게 조심스러웠는데 비라토비 처방 후 제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조금 넓어진 것 같아요. 심적으로도 안정돼 있는 지금처럼 치료가 잘 돼 삶의 질을 유지하면 좋겠습니다." (BRAF V600E 변이 직결장암 환자, B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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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2022.09.14 21:49:57

    무엇때문에 건보급여가 늦어지고 있는 걸까요?
    안타깝습니다. 열심히 착실하게 살아온 이들에게 닥친 아픔이 느껴지네요
    암 환자는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치명적이라고 하는데,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치료를 받고 있다는 현실이... 참....
    부디 하루 빨리 급여가 이루어져서 환우들이 경제적 부담에서 조금이라도 해방되어 치료 받으시길 희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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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2022.08.17 05:20:42

    치료 할수 있는길이 보이는데 경제적 부담으로 치료를 멈춘다면 아픔을 겪고있는 환우들에게  또한번의 고통을 짊어지게  하는것이다.
    하루빨리 국가지원이 절실하게 이루어지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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