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첩] 바뀔 때가 됐다

이정수 기자 (leejs@medipana.com)2023-05-22 11:40

[메디파나뉴스 = 이정수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간호법 재의요구를 재가한 이후, 간호계는 더 이상 법에 기대지 않는 저항을 시작했다.

그간 간호법 제정을 촉구하면서 '간호만 하게 해달라'고 외쳤던 간호사들은, 이제 간호법과 무관하게 '준법투쟁'으로 불법진료에 맞서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대한간호협회가 지목한 불법진료 지시 업무로는 대리처방, 대리수술, 대리기록, 채혈, 초음파와 심전도 검사, 동맥혈 채취, 항암제 조제, 비위관과 기관절개관 교환, 기관 삽관, 봉합, 수술 수가 입력 등이다.

불법진료 지시 업무들 중엔 임상병리사 등 다른 보건의료 직능 면허업무도 포함돼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인건비를 최소화하고 이윤을 늘리기 위한 병원과 의원, 의사 지시로, 지난 국내 의료 역사 속에서 간호사 중 일부는 'PA(진료지원인력) 간호사'로 불리면서까지 이같은 행위들을 해왔다.

간호법 제정 촉구 집회에서 한 1년차 간호사가 '간호사가 환자를 위한 간호만 할 수 있게 업무 범위를 분명히 해야 한다. 근무 시간을 온전히 환자를 위한 질 높은 간호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힌 것은 의료현장 분위기를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간협이 홈페이지에 마련한 '불법진료 신고센터' 조회가 18일부터 21일까지 3일 만에 8,000건이 넘은 것도, 한때 1일 허용 트래픽을 초과할 정도였던 것도, 그만큼 불법 진료·지시가 곳곳에 만연해 있었음을 방증한다.

대한전공의협의회에서도 입장문을 내고 "동맥혈 채혈을 제외한 정맥 업무는 의사 지시감독 하에 간호사가 하는 것이 합법적인 행위"라며 "이외에 간협이 제시한 '간호사가 수행 시 불법이 되는 업무 리스트'를 수행하지 않겠다는 간협 입장을 지지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불법 요소가 있음에도 그저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있어왔던 '관행'이라면, 시대적 변화에 따라 함께 바뀌고 개선돼야 함은 당연한 이치다.

간호계가 정부 문턱을 넘어 간호법을 제정하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그 관행을 극복하기 위해 굳이 법에 의존할 필요는 없다.

지금처럼, 이제라도 대동단결해서 '간호만 하겠다'며 불법진료 지시를 일제히 거부하고 저항한다면 언젠가 간호계가 갈망하는 간호사 인권 향상이 이뤄지는 날도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매일매일 시대는 바뀌고 있다. 최근 '상속 유류분 제도'가 또다시 논란이 된 것은 시대가 바뀌고 있음을 의미한다. 관행으로 둘러싸여 있던 보건의료 시스템도 이제 바뀔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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