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신경련 급성백혈병 환아 치료법이 한약 처방?… "국민건강 우려"

의협 한특위 "한의사 국시, 응급상황 문제에 검증되지 않은 치료 정답 제시"
최근 5년간 23~37% 의과영역 문항·의료기기 문항 9~22% 출제

조후현 기자 (joecho@medipana.com)2022-11-18 06:05

▲대한의사협회 김상일 정책이사, 이정근 상근부회장, 김교웅 한방대책특별위원장, 황찬하 변호사

[메디파나뉴스 = 조후현 기자] 의료계가 한의사 국가시험에 등장한 문제를 공개하며 국민 건강 악영향을 우려를 제기했다.

현대의학에 따른 응급처치가 필요한 급박한 상황을 문제로 내고 효과가 불분명한 한약 처방을 정답으로 제시하는 등 의료체계 이원성을 훼손하는 문제가 등장하고 있다는 것.

이 같은 문제를 풀고 면허를 획득한 한의대생이 실제 임상 현장에서 같은 처방을 하다 국민 건강을 위협할까 우려된다는 지적이다.

17일 대한의사협회 한방대책특별위원회는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 시험 관리를 강하게 규탄했다.

이날 한특위는 최근 5년간 한의사 국가시험 필기문제를 분석한 결과를 공개했다.

한특위에 따르면 매년 296~333건 시험문항 가운데 69~110건의 의과영역 문항이 출시된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적은 지난 2019년이 69건(23.3%)이었고, 2020년이 110건(37.2%)으로 가장 많았다.

의과의료기기가 포함된 문제도 매년 27~66건까지 출제됐다. 2019년이 가장 적어 27건(9.1%)이었고, 지난해 66건(22.3%)으로 가장 많았다.

의협 김상일 정책이사는 "분석 결과 한의사 무면허의료행위를 조장하는 수준"이라며 "문제 내용과 상관없는 검사결과까지도 언급하면서 무면허의료행위를 조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이사는 지난해 치러진 제79회 한의사 국가시험 1교시 50번 문제를 대표적 예로 들었다.

이 문제는 빈혈로 병원에 온 28세 여성 증상과 혈액검사 수치를 제시하며 치법을 묻는 문제인데, 말미에 골수검사 사진을 첨부했다.

김 이사는 골수검사 소견이 어떻든 한방처방은 달라질 이유가 없을텐데도 사진을 넣은 점에 대해 의과검사를 사용하려는 불순한 의도가 숨어있다고 지적했다.

또 해당 환자를 의학적으로 보면 재생불량빈혈 환자인데, 이는 골수 안에서 모든 세포 모체가 되는 줄기세포를 만들지 못해 혈액세포가 줄어들면서 생기는 질환이다.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 등 모든 혈액세포가 감소할 수 있어 중증으로 진행되지 않도록 적절한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설명이다.

주된 치료는 호르몬제나 면역억제 치료, 동종조혈모세포 이식 등으로 난치병 영역에 속하나 한방 치법이 있다고 주장하는 점도 환자 건강을 해치며 의료윤리적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지난 2018년 73회 국가시험에 나온 12번 문제도 같은 문제점을 담고 있는 것으로 봤다.

이 문제는 급성백혈병 치료를 받고 있는 3세 남아가 전신 경련을 일으키며 구토하고 쓰러졌을 때 한방치법을 묻고 있다. 정답으로는 청심개규, 어린 아이가 열병으로 쓰러졌을 때 쓰는 한약을 제시했다.

김 이사는 문제에 제시된 증상 소견은 뇌염이나 뇌수막염 등 중추신경계 감염을 시사하며, 패혈증 가능성도 있는 응급상황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의식이 없는 환자에게 한약을 억지로 삼키게 하려다가는 폐렴이나 질식사를 일으킬 수 있는 위험한 행위라고 경고했다.

김 이사는 "응급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한방 치법을 고르는 문제를 출제하는 것은 환아의 진단과 치료가 지체돼 귀한 생명을 잃을 수도 있음을 간과하는 것"이라며 "한의대생에게도 잘못된 판단을 하게 만들 수 있기에 심각한 의료윤리 문제까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

이어 "의료는 데이터와 근거를 중심으로 해야 하는데, 모든 한방 치료가 근거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면서도 "근거가 충분히 제시되지 않은 상황에서 검증되지 않은 치료를 정답으로 제시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한특위는 위법성 여지는 있지만 소모적 소송전보다는 올바른 시험 관리 감독을 추구하는 것이 순서라는 입장이다.

의협 황찬하 변호사는 "무면허 의료행위, 무면허 의료행위 교사까지 나아갈 수 있는 여지는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법적 대응은 이른 감이 있다"고 설명했다.

김 이사는 "국민 건강에 심각한 위해를 가져다 줄 수 있는 문제기 때문에 먼저 국민에게 위험을 알리는 부분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서두르게 됐다"고 부연했다.

이 같은 한의학 움직임은 스스로 독자적 정체성을 잃고 현대의학의 보조학문으로 전락하는 모양새라는 비판도 나왔다.

의협 이정근 상근부회장은 "한의사 국가시험 문제를 통해 본 우리나라 한의학 현실을 보면 참담한 심경"이라며 "스스로의 학문만으로 뭘 할 수 없다면 존재 가치가 없다고 생각해 존폐 기로에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그간 한의사 국가시험 문제를 전수조사해 면밀히 분석하고 개선대책을 마련하고, 국시원 및 관계당국 책임자를 엄중 문책할 것을 촉구한다"며 "더 이상 한의과대학을 사이비 전문학원으로 만들지 말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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