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노조 "산재 인정된 간호사 사망…적정인력 확충돼야"

근로복지공단, 과로사 산재 판정…주 69시간 노동 추진에 비판

이정수 기자 (leejs@medipana.com)2023-03-29 16:04

[메디파나뉴스 = 이정수 기자] 보건의료노조가 간호사 과로사 산재 판정을 계기로 인력 확충 등 근본대책을 요구하고 나섰다. 정부가 추진 중인 주 노동시간 69시간에 대해선 비판했다.

보건의료노조는 29일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과로사 산재 판정, 장시간 노동은 근절돼야 한다'는 성명을 냈다.

노조에 따르면, 최근 근로복지공단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지난해 7월 발생한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사망 사건에 대해 산업재해 판정을 내렸다.

노조는 늦게나마 산재판정이 인정된 사실에 대해 매우 다행스럽다고 평가하면서, 이같은 상황에 정부가 주당 노동시간을 늘리려고 시도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보다 효율적으로 노동강도와 시간을 조율하고 싶어하는 사용자 민원 처리와 다르지 않다고 주장했다.

인력부족으로 인해 발생한 죽음을 산재 인정으로 위안 삼는 데 그치지 않고 인력확충 등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성명서]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과로사 산재 판정, 장시간 노동은 근절되어야 한다

지난해 7월 서울아산병원의 간호사가 근무 중 뇌출혈로 쓰러져 안타깝게 유명을 달리한 사건에 대해 최근 근로복지공단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이하 질판위)는 산업재해 판정을 내렸다. 

질판위는 서울아산병원 간호사가 "발병 전 12주간 주당 평균 업무시간이 조사된 시간보다 많아 보이는 점, 교대제 근무를 수행한 것과 책임간호사로서 의료기관 인증평가를 준비하면서 받은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해 업무부담 가중요인에 복합적으로 노출되었다고 판단되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였을 때, 신청 상병과 업무와의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는 것이 참석한 위원의 일치된 의견"이라며, 출퇴시간 기록 등 자료로는 확인되지 않는 재택근무, 교대근무, 인증평가 중압감 등의 개연성을 고려해 이를 산재로 인정한 것이다.

우리 보건의료노조(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위원장 나순자)는 고인의 죽음을 다시금 애도하며, 늦게나마 산재판정이 안정된 사실을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그런데 이렇듯 장시간 노동과 과로사회를 더 엄격하게 그리고 더 적극적으로 감독해도 모자랄 판국에 정부가 되려 나서 주당 노동시간을 69시간까지 확대를 추진하는 등 장시간 노동을 부추기고 있다. 마치 'MZ세대'들의 요구인 것처럼 "몰아서 일하고 몰아서 쉴 수 있도록 노동자의 근로시간 선택권을 보장해주겠다"는 해괴한 논리로 주당 최대 노동시간을 69시간까지 허용하도록 법개정을 추진 중인 것이다.

긴 말 할 것도 없이 현실에서 노동시간은 노동자가 스스로 결정하지 못한다. 사용자가 독점적인 결정권을 가진다. 퇴근 후에도 재택업무를 해야 하는 현실에서 노동자의 선택권이 가능한 일인가? 그나마 노동조합이 있는 경우에 이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들이 단체협상을 통해 어렵게 보장될 뿐이다. 이마저도 제한적인 현실이며 이런 노조의 보호를 받는 노동자도 전체의 14% 안팎에 불과하다. 결국 노동시간을 더욱 유연화해 사용자들의 입맛에 맞게, 보다 효율적으로 노동강도와 노동시간을 조율하고 싶어하는 사용자의 민원 처리에 다름 아니다.

출퇴근 시간 기록 범위 바깥에서 벌어지는 초과노동과 장시간노동, 불규칙한 교대근무, 인증평가와 같은 과로로 인해 결국 유명을 달리해야 했던 서울아산병원 간호사의 모습은 우리시대 모든 간호사들의 모습이자, 장시간 노동으로 과로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노동자의 모습이다.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유행(?) 중인 이른바 '기절 근무표'는 제도화되지 않았을 뿐 이미 현실화된 우리 노동의 현주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시간을 더 유연화하고, 더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심지어 주당 69시간까지 일을 시킬 수 있도록 허용하자고 하니, 그야말로 기가 막힐 노릇이다.

수년 전부터 우리 노조는 평가때만 반짝 치러지는 의료기관인증평가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누누이 지적해 온 바 있다. 의료기관 인증 평가는 평가기간 인위적으로 신규환자를 줄인다거나 하는 방식으로 치러지는데다가, 인증평가를 받기 위한 목적으로 평상시보다 훨씬 높은 업무부담을 간호사 등에 전가하는 탓에 국민들에게는 '속임 인증', 보건의료 노동자에게는 '편법 인증'을 여태 극복하고 있지 못한 현실이다.

우리 노조는 금번 사건을 계기로 이러한 안타까운 죽음이 의료기관 현장에서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재발방지 대책 마련이 매우 절실함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무엇보다도 인력의 부족이 환자의 안전을 위협할 뿐만 아니라, 과로와 업무의 중압감을 만들어내고 급기야 안타까운 죽음에 산재 인정으로 위안 삼는데 그칠 것이 아니라, 인력확충을 통한 노동시간, 노동강도를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함을 강조한다.

사람을 살리는 의료 현장에서 보건의료노동자가 죽어가는 현실이 더 이상 계속되어서는 안된다.주 69시간제처럼 말장난 같은 수준의 노동개악이 아니라, 인력을 확충하고 보건의료인력 당 환자수의 비율(ratios)을 규정하는 등의 적정인력 기준이 마련되어야 한다. 인력확충을 통해 야간노동, 장시간노동을 근절하고 노동강도를 낮춰 과로의 위험에서 보건의료노동자들을 보호해야 한다. 거짓 인증, 속임 인증 말고 환자들에게, 보건의료노동자들이 제대로 된 양질의 의료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의료기관인증평가로 개편되어야 한다.우리 보건의료노조는 국민의 생명과 건강할 권리를 위해 나아가 보건의료노동자들의 노동권을 지키기 위해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2023. 3. 29.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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