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제 급여적정성 재평가‥제약사 '수용성' 높이는 것이 관건

선정, 평가, 결정 기준 명확화‥급여 축소 충격 완화 위한 '행정적 유연성' 요구
재평가 처분에 대한 법적 다툼, 정책 효과 늦추고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 발생
제약사와 소통 강조‥급여 제외 또는 선별급여는 단계적 이행도 방법

박으뜸 기자 (acepark@medipana.com)2023-06-09 11:42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우리나라는 제1차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2019~2023)에 따라 2020년부터 등재 약제의 임상효능, 재정 영향, 계약 이행사항 등을 포함하는 '급여적정성 재평가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이 재평가 결과는 급여 중단 또는 약가 인하, 선별급여 등으로 이어지기도 하는데, 이 경우 산업계의 수용도가 낮고 정책 효과를 달성하는 데 어려움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에 전문가들은 선정, 평가, 결정 기준을 명확하게 하고, 급여 축소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행정적 유연성'을 요구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약제 급여적정성 재평가 합리화 방안 연구'에 따르면, 한정된 예산으로 의학적 요구도가 높은 의약품을 급여하기 위해서는 의학적 가치가 낮고 급여의 필요성이 희박한 의약품에 대한 재정 투입을 줄임으로써 가용 재정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맥락에서 약제 급여적정성 재평가 제도는 건강보험체계 내에서 의약품 사용의 적정성을 높이고 약제 급여 지출의 효율을 제고할 수 있다.

약제 급여적정성 재평가는 해당 약제의 보험 등재와 급여의 적정성을 확보할 뿐만 아니라, 급여의 가치가 낮은 의약품에 이뤄지던 재정 투입을 줄인다. 이를 통해 의학적 필요성이 높고 급여의 가치가 큰 다른 의약품에 투입 가능한 재정을 확보할 수 있다.

◆ 그동안의 '약제 급여 재평가' 결과
 

2019년 제1차 국민건강보험종합계획에서는 2019년 약제 급여적정성 제도를 마련해 2020년 시범사업을 실시했다. 이 당시 사회적으로 급여적정성 재평가를 요구받고 있었던 '콜린 알포세레이트(choline alfoscerate)' 성분이 시범사업 대상으로 선정됐다. 

2020년 1월 약제사후평가소위원회, 2020년 2월 약제급여평가위원회를 거쳐 2020년 5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최종 결정된 이후 콜린 제제의 재평가가 실시됐다. 

제약사들이 제출한 자료로 재평가를 한 결과, 치매 적응증은 임상적 유용성이 인정돼 급여 유지로 결정됐다. 그 외 적응증은 임상적 유용성이 인정되지 않아 본인부담률을 기존의 30%에서 80%로 상향 조정하는 선별급여로 결정됐다.

제약사들은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고 재검토를 요청했으나 결론은 동일했다. 2020년 8월 보건복지부는 콜린 알포세레이트의 재평가에 따른 급여기준의 변경을 포함하는 고시를 발표했다.

2021년 재평가에서는 건강기능식품으로 사용되는 성분의 약제를 중심으로 하면서 대상 선정 기준을 적용했다. 이에 따라 '빌베리', '실리마린', '아보카도-소야', '비티스미니페라(포도씨 추출물)'가 재평가 대상으로 선정됐다. 

당초 은행엽엑스도 재평가 대상이었으나, 주사제 제품이 허가 취하되자 남아있는 경구제가 A8 국가 중 2개 국가에 등재돼 있었다. 이에 재평가 선정 기준을 충족하지 않게 되면서 최종적으로 재평가 대상에서 제외됐다.

그리고 비티스비니페라(포도엽추출물)도 원래 재평가 대상이었으나 이것이 포도씨추출물과 동일하지 않다는 전문가 의견이 제기되면서 별도로 검토하게 됐고, 청구액 규모가 재평가 대상 기준에 미치지 못해 최종적으로 제외됐다. 

4개 성분을 재평가한 결과 빌베리, 실리마린은 급여 제외로, 비티스비니페라(포도씨 추출물)는 급여 축소로, 아보카도-소야는 조건부 급여 유지로 결정됐다.

아보카도-소야는 임상적 유용성이 불분명하나 비용효과성이 있어 급여를 유지하되, 1년 이내 교과서, 임상진료지침에서 임상적 유용성이 입증되지 않는 경우 급여를 제외하는 조건을 부여했다. 이후 아보카도-소야는 2022년 교과서에서 임상적 유용성이 인정되면서 최종적으로 급여가 유지됐다. 

2022년에는 대상 선정 기준에 의해 6개 성분이 재평가 대상으로 선정됐다.

재평가 결과 '알마게이트', '티로프라미드염산염'은 급여가 유지됐고, 알긴산나트륨, '에페리손염산염'은 급여가 축소됐다. 

'스트렙토키나제·스트렙토도르나제' 성분은 급여 제외로 결정됐는데, 이 성분은 식약처의 임상재평가가 진행 중이며 2023년 임상재평가 결과가 나올 때까지 결정사항의 이행을 유예하기로 했다.

다만 임상재평가 결과 유효성이 없는 것으로 밝혀질 경우 건강보험에서 지출된 약품비의 일부를 환수하는 것을 조건으로 하고, 이를 수용하지 않는 제약사의 제품은 급여를 제외하는 것으로 했다.

마지막으로 '아데닌염산염' 외 6개 성분의 복합제는 임상적 유용성이 불분명하고 대체 약제보다 비용이 높아 급여 제외로 판단됐으나, 제약사가 대체 약제 수준으로 약가를 낮춤에 따라 비용효과성 기준을 통과하면서 최종적으로 급여 유지됐다.

2023년 재평가 대상 성분은 2022년 대상 성분 공고 시에 함께 공고됐으며, 이들 성분의 최초 등재연도는 1993~1997년이다. 재평가가 예정된 8개 성분 중 옥시라세탐, 아세틸엘카르니틴 2개 성분은 2022년 식약처의 임상재평가에서 유효성이 입증되지 않아 허가 적응증이 삭제되고 허가가 취소될 예정이며, 결과적으로 6개 성분이 재평가 대상이 됐다.

◆ 현 제도 내에서 보다 세부적이고 자세한 기준 필요
 

연구팀은 현 약제 급여적정성 재평가 제도에 대해 크게 합리성, 효과성, 수용성을 나눠 분석했다.

급여적정성 재평가 제도의 내용은 재평가 대상 선정과 평가 방법, 의사결정으로 구성된다.

재평가 대상은 청구현황(약품비 청구액의 0.1% 이상), 외국 급여현황, 최초 등재 연도를 기준으로 해 선정하는데, 각 요소는 재평가의 목적, 제도 운영의 효율을 고려할 때 타당하고 합리적이라고 평가됐다.

그렇지만 어떤 약이 기준 요건의 경계에 있는 경우, 재평가가 필요함에도 대상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있다. 만약 청구액 규모가 0.1%에 약간 미치지 못해 재평가 대상에서 제외된다면, 임상적 유용성이 미흡한 상태에서 계속 사용되고 비용이 지출될 수 있다.

연구팀은 "재평가에서 임상적 유용성을 가장 중요하게 고려한다면 청구액의 규모가 작은 성분이라도 급여 적정성의 관점에서 재평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제도 운영의 행정비용과 효율을 고려할 때 청구액 기준을 설정하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향후 약제 급여 관리에서 재평가의 중요도가 더 커지고 투입 자원이 증가한다면 현재의 대상 선정 기준에서 청구액 기준을 낮추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고 말했다.

평가 기준은 임상적 유용성, 비용효과성, 사회적 요구도로 구성되며, 이 중 가장 중요한 요소는 '임상적 유용성'이다. 임상적 유용성이 충분히 인정되면 급여 유지, 부정적인 것으로 확인되면 비급여로 결정되어 재평가 결과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연구팀은 "의약품을 사용하는 가장 중요한 목적이 임상적 유용성이라는 점에서 이는 합리적인 결정이다"고 말했다.

이어 연구팀은 "임상적 유용성이 불충분한 약의 사용은 가급적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그 약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질병 치료에 큰 문제가 없다. 현재 사용량이 많다 하더라도 그것은 마땅한 치료제가 없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이러한 약에 대해서는 약가 인하보다는 현장에서 약의 채택을 억제하는 적절하며, 임상적 유용성이 불충분한 약은 원칙적으로 선별급여라는 정책 수단이 적합하다"고 조언했다.

약제 급여적정성 재평가로 기대할 수 있는 효과는 급여적정성이 확인된 약으로 급여 목록을 유지함으로써 환자 진료의 질을 높이고 부적절한 지출을 줄이는 것이다. 재평가를 통해 급여 제외 또는 약가 인하, 급여율 축소가 결정된 약에 대한 지출이 분명히 감소하는 직접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런데 사용하던 약의 급여가 제외되면 다른 약으로 대체돼 처방되는 풍선효과를 예상할 수 있으며, 이는 재평가를 시행한 외국의 사례에서도 확인됐다.

연구팀은 "대체 처방의 가능성이 있더라도 급여적정성이 미흡한 약은 급여에서 제외하는 것이 타당하며, 대체 처방 자체의 적절성은 별도로 평가하는 체계가 있어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재평가 제도가 수용성 면에서는 여러 부족함이 드러났다.

급여되던 의약품을 재평가하여 급여 축소 또는 약가 인하, 비급여로 전환하는 등의 조치는 제약사의 반발을 일으킬 수 있다. 제약기업은 제도 운영 과정에서 이의를 제기하기도 하지만 재평가 결과에 대해 법적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2020년 재평가돼 일부 적응증에 선별급여 조치된 콜린알포세레이트, 2021년 재평가되어 급여 제외된 실리마린, 빌베리와 관련해 2023년 현재 소송이 진행 중이다.

소송 진행과 함께 재평가 결과에 대한 집행정지가 이뤄져 재평가를 통한 지출 절감이 제대로 실현되지 않고 있다. 2022년 11월 콜린알포세레이트 관련 소송의 1심 재판에서 정부가 승소했으나 곧 제약사들의 항소가 이뤄졌고 동시에 집행정지도 연장됐다.

재평가 처분에 대한 법적 다툼은 재평가의 정책 효과를 늦출 뿐만 아니라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도 발생시킨다.

연구팀은 "기업들이 소송의 이유로 처분 근거에 대한 설명 불충분, 처분 전에 기업과의 대화 부족 등을 언급한 점을 볼 때, 향후 재평가 운영에서 이들 주요 당사자들과의 소통을 늘릴 필요가 있다. 하지만 급여적정성 재평가는 본질적으로 제약사의 수용성이 낮을 수밖에 없는 속성을 지닌다. 제약사와의 소통은 기업의 불만 해소에 관한 것이 아니라 제도의 원칙과 평가 기준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이 주요한 목적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급여적정성 재평가가 식품의약품안전처의 문헌재평가, 임상재평가와 유사한 면이 많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연구팀은 두 제도에는 명백한 차이가 있다고 강조했다.

식약처의 재평가는 변화된 의약품 사용 환경에서 의약품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재평가해 의약품의 허가 사항을 변경하는 것이다. 

반면 급여적정성 재평가는 임상적 유용성을 중심으로 의약품의 급여 사항을 변경하는 것이다. 허가가 취소된 약제는 급여가 될 수 없지만, 급여에서 삭제된 약제는 허가가 유효하기 때문에 처방이 될 수 있다.

또한 식약처의 재평가는 건강보험 재정을 고려하지 않지만, 급여적정성 재평가는 건강보험 재정을 고려한다. 

두 제도는 목적이 다르지만 합치되는 방향으로 운영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다.

◆ '급여 재평가'는 필요한 제도, 사회적 지지 얻어야

재평가에서는 새로운 약을 급여권에 포함할지에 대한 논의가 아니라, 현재 급여 중인 약의 급여 지속에 관한 논의가 이뤄진다. 이 탓에 운영 과정이 원활하지 않을 수 있으며, 따라서 사회적 지지가 특히 중요하다.

재평가의 향후 계획을 사전에 발표하는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됐다. 재평가의 중장기 계획이 확정되면 이를 공개해 제도 시행 의지를 확인하고 정책 방향에 대한 공감대를 넓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재평가 대상 약제 목록은 최소 1년 전에 공개함으로써 제도 운영을 더욱 원활하게 하고 수용성을 높일 수 있다. 동시에 해당 약제와 직접 관련된 제약사나 의료전문가 등은 각자 입장에서 필요한 준비와 계획을 할 수 있다.

연구팀은 재평가 과정에서 제약사와 소통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재평가에서는 임상적 유용성, 사회적 필요성, 비용효과성, 대체가능성 등을 평가하며 제약사는 이를 위해 필요한 자료를 제출할 의무를 갖는다. 제약사로서는 자사 제품의 재평가가 특별한 사안이므로 재평가 자료 제출이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연구팀은 "재평가 제도 운영 조직은 해당 제약사와의 소통 채널을 넓혀 자료 준비, 작성 등에 관한 논의가 원활히 이뤄지게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재평가 결과를 제약사에 통보할 때 그 이유에 대한 설명을 가급적 상세히 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예를 들어 임상적 유용성의 평가 결과를 통보할 때, 어떤 자료의 어떠한 내용이 인용됐고 세부 평가요소의 평가 결과가 어떠했는지 등을 설명한다면 제약사가 결과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며, 이의제기할 가능성도 낮아질 수 있다.

연구팀은 "필요하다면 문서 통보 외에 제약사와 제도 운영 당국이 직접 대면해 대화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재평가 결과 급여 제외 또는 선별급여로 결정되는 경우 단계적 이행을 가능하게 하는 것도 방법이다.

연구팀은 "기존 급여약이 급여 제외 또는 선별급여로 결정되면 해당 약제를 사용하는 환자의 부담이 증가하거나 사용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약제의 임상적 유용성이 불충분해 이뤄진 결정임에도 갑자기 급여가 축소되는 것은 임상 현장에 혼란을 줄 수 있으므로 현장에서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게 할 필요가 있다. 해당 제약사에게도 자사 제품의 건강보험 급여가 제한되는 충격을 완화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는 시간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서는 급여 제외 결정 시 유예기간을 두거나 중간 과정에 선별급여 시기를 두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 처음 1년간 본인부담률 80% 적용 후 급여에서 제외시키는 방법 등이다.

마찬가지로 선별급여 결정 시 본인부담률을 단계적으로 높이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재평가로 선별급여 본인부담률 80%로 결정된 경우 처음 1년간 본인부담률 50% 적용 후 최종 80% 적용하는 방법이다.

이러한 방안은 급여 축소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행정적 유연성으로 생각할 수 있으며, 이해당사자의 제도 수용성이 전제돼야 한다. 만일 제약사가 급여 제외나 선별급여의 결정에 대해 제도 바깥(법적 소송)에서 해결책을 찾고자 한다면, 단계적 이행은 적용하기 어렵다.

재평가 결과를 사회에 널리 홍보하는 것도 과제다. 재평가 결과 급여 제외 또는 선별급여로 결정돼 기존 급여에서 축소되는 약제는 그 사유와 결정 근거, 결과를 발표해 임상현장과 국민들이 인지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연구팀은 "홍보 시에는 '재정 절감' 또는 '효과 없음'과 같은 표현보다는 '건강보험 급여 필요성 낮음 또는 없음'과 같은 표현을 사용해 정책의 목적을 제대로 전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게 함으로써 기존에 해당 약제를 사용하던 환자들이 그 약제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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