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했는데도 설명의무 위반, 왜?…수술 고민할 '시간' 안 줘서

法, 수술 결정 및 과정에서 과실 없지만…수술 40분 전에 설명했다는 이유로 배상 책임 있다고 판단
醫, 의료법에 '시간'에 대한 조항 없어 부당…응급 수술·위험 수술 시 설명 의무로 골든타임 놓칠 것

조운 기자 (good****@medi****.com)2022-02-15 12:00

[메디파나뉴스 = 조운 기자] 생명에 중대한 위해를 발생시킬 우려가 있는 수술의 경우, 의사에게 부과되는 '설명 의무'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에 의료계가 반발하고 있다. 

수술 전 설명도 했고, 수술 결정 및 과정에도 문제가 없지만, 환자에게 수술 여부를 고민할 충분한 '시간'을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원고 패소한 원심을 파기환송했기 때문이다.
지난 14일에는 대한의사협회가 직접 해당 판결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며, 이 같은 법원 판결이 이어질 경우 불안정한 진료환경을 조성해 방어진료가 확대될 수밖에 없다고 반발했다.

애초 의료진에게는 어떠한 주의의무 위반도 없다고 판결한 원심을 파기환송해야 한다고 판단한 대법원의 근거는 무엇일까?

해당 사건은 지난 2018년 6월 원고인 환자 A씨가 피고인 의사 B씨가 운영하는 ○○병원에서 수술을 받으면서 시작됐다.

A씨는 2018년 6월 7일 ○○병원에 입원한 뒤, 6월 11일 10시 30분경 경동맥 및 심장 초음파 검사를 한 다음 같은 날 11시 10분경 수술을 받았다.

A씨는 해당 수술 후 자발적으로 의사표현을 하지 못하고 좌측 상하지 근력이 저하되었는데, 같은 날 18시 50분경 뇌 CT 검사를 통하여 뇌경색이 발견되어 타 병원으로 전원됐다.

현재 A씨는 뇌경색에 따른 좌측 편마비가 있어 모든 생활을 하는 데 타인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인지장애로 인해 의사소통이 되지 않으며, 스스로 대소변 조절과 관리를 할 수 없는 상태에 있다.

원심은 피고 병원의 의료과실을 주장하는 A씨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해당 의료진의 수술 결정이 합리적인 범위를 벗어났다고 보기 어렵고, 이 사건 수술을 하는 과정이나 수술을 마친 다음 원고의 상태에 관한 경과관찰을 게을리하였다고 볼 근거가 없다며 피고에게 과실이 없다고 결론 내렸다.

대법원 역시 원심과 마찬가지로 B씨의 수술 과정 및 시행, 수술을 마친 후의 주의의무에는 문제가 없다고 봤지만, 문제는 설명의무였다.

실제로 현 의료법 제24조의2 제1항, 제2항은 의사, 치과의사 또는 한의사가 사람의 생명 또는 신체에 중대한 위해를 발생하게 할 우려가 있는 수술, 수혈, 전신마취를 하는 경우, ▲환자에게 발생하거나 발생 가능한 증상의 진단명 ▲수술 등의 필요성, 방법과 내용 ▲환자에게 설명을 하는 의사, 치과의사 또는 한의사 및 수술 등에 참여하는 주된 의사, 치과의사 또는 한의사의 성명 ▲수술 등에 따라 전형적으로 발생이 예상되는 후유증 또는 부작용 ▲수술 등 전후 환자가 준수하여야 할 사항 등 5가지 사항을 환자(환자가 의사결정능력이 없는 경우 환자의 법정대리인)에게 설명하고 서면으로 그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다만, 설명 및 동의 절차로 인해 수술 등이 지체되면 환자의 생명이 위험해지거나 심신상의 중대한 장애를 가져오는 경우는 예외로 하고 있다. 

지난 1994년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이 같은 설명의무 조항은 환자에게 수술 등 인체에 위험을 가하는 의료행위를 할 경우 그에 대한 승낙을 얻기 위한 전제로서, 환자가 자신에게 가해지는 수술 등의 의료행위에 응할 것인지 스스로 결정할 기회를 가지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즉, 환자의 ‘자기 결정권’을 보장하기 위해 의료법에서는 의사에게 ‘설명 의무’를 부과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판례에 따라 재판부는 의사의 설명은 환자가 의료행위에 응할 것인지를 합리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므로, 의료행위가 행해질 때까지 적절한 시간적 여유를 두고 이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경우 의사 B씨는 수술 당일인 오전 10시 30분경, 경동맥 및 심장 초음파 검사 이후 A씨의 보호자에게 A씨가 동맥경화가 없는 사람들에 비해 뇌졸중의 위험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사정을 설명한 뒤, 같은 날 11시 10분경 곧바로 A씨에 대한 수술을 위한 마취를 시작했고,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수술이 시작됐다.

재판부는 "A씨로서는 이 사건 수술로 자신에게 나타날 수 있는 후유증 등 이 사건 수술에 관한 위험성을 충분히 숙고하지 못한 채 수술에 나아갔을 가능성이 있다. 이는 원고가 이 사건 수술에 응할 것인지 선택할 기회가 침해된 것으로, 원고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지 않은 피고 병원 의사들에게는 설명의무를 위반한 사정이 있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원심으로서는 피고 병원 의사들의 설명과 이 사건 수술 사이에 적절한 시간적 여유가 있었는지, 원고가 숙고를 거쳐 이 사건 수술을 결정하였는지 심리하여 피고 병원 의사들의 설명의무가 이행되었는지 판단했어야 한다. 그런데도 원심은 이러한 사정을 심리하지 않은 채 피고 병원 의사들의 이 사건 수술에 관한 설명이 있었다는 사정만을 근거로 설명의무를 위반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고 문제를 지적했다.

하지만 이러한 재판 결과에 대해 의료계는 부당함을 주장하고 있다.

의료법 제24조의2는 의사 등의 설명의무를 규정하고 하위법령에서 설명의 방법, 절차 등을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해당 조문에는 설명의 대상·방식·내용에 대해 열거되어 있을 뿐, 설명의 시간적 여유 등은 언급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대한의사협회는 “"에 하나 설명의무의 이행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 설명의 시간적 한계를 설정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환자의 알권리나 자기결정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정도에 이른 시기를 그 시간적 한계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대법원은 아무런 기준의 설시 없이 이번 판결을 내렸는바, 이는 의료현장에 그것도 촌각을 다투는 응급수술이나 위험수술을 시행해야 하는 현장에 심각한 혼란을 야기할 우려가 있다"고 꼬집었다.

특히나 해당 사건의 경우 의료진이 의료법에 의료법에 따른 설명의무를 모두 이행했음에도 불구하고 개별 사안의 정황에 따라 설명의무 위반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료계의 우려가 넓혀지고 있다.

의협은 "이는 불안정한 진료환경을 조성하게 되고 위험성이 있는 수술 등을 기피하도록 하는 방어진료를 부추겨 결국 국민의 건강과 생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 자명하다. 생명이 경각에 놓인 초응급상황에서 법적 다툼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주의 의무와 설명 의무를 다하려다 골든타임을 놓치게 되는 것을, 과연 환자와 보호자가 원할지 의문이다"라고 비판했다.

이처럼 의료진의 '설명 의무'의 범위를 넓고, 무겁게 바라본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의료계에 미칠 파장은 일파만파 커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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