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반대 이유로 장례식장 개설 막힌 병원…법원 "허가해야"

장례식장 '기피시설'로 봐선 안 돼…근거 없는 불안·불편 이유로 불허가는 '부당'

조운 기자 (good****@medi****.com)2022-05-28 06:06

[메디파나뉴스 = 조운 기자] 지역 주민들의 정서적 불안과 불편을 이유로 장례식장 개설 허가신청을 불허한 관할 행정청의 처분이 부당하다는 판결이 나왔다.

관할 행정청은 의료기관 개설허가사항 변경신청이 중대한 공익에 저촉된다고 인정될 경우에 한해 허가를 거부할 수 있으나, 법원은 장례식장을 '혐오시설' 또는 '기피시설'로 보아서는 안되기에 막연한 우려나 가능성만으로 장례식장 개설을 금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대구지방법원이 의사 A씨가 관할 행정청에 제기한 의료기관개설허가사항변경신청 불허가처분 취소 소송에서 의사의 손을 들어줬다.

A씨는 지난 2021년 2월부터 지역에서 지하 1층 지상 10층 건물에 대해 의료기관 개설허가를 받아 요양병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같은 해 8월, 해당 건물의 지상 2층에 장례식장을 설치하기 위해 관할 행정청에 의료기관 개설허가사항 변경신청을 냈으나 불허가 처분을 받았다.

관할 행정청은 해당 건물이 일반주거지역에 위치하고 있어, 장례식장으로 허가 시 A씨의 영업권을 보호해주는 이익보다 인접 지역 주민들의 거주 안녕과 건전한 생활환경을 저해하는 등 공익적 피해가 크다고 불허가 처분의 이유를 밝혔다.

특히 해당 건물 주변은 인구밀집 지역이고 학교, 어린이집, 구립도서관, 아동복지시설 등 이 가까운 곳에 다수 위치하여 장례식장 허가 시 교육환경을 해칠 것이며, 건물 구조상 장례버스의 출입이 불가능해 도로변에 불법주차가 빈번하여 교통 흐름 방해·교통사고 발생 위험이 있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A씨가 당초 2층을 장례식장으로 용도변경 하려다 주민들의 반발로 2층을 운동치료실로 사용하겠다면서 변경했는데, 다시 A씨가 장례식장으로 변경 신청하는 것은 인근 주민과 관할 행정청을 기만하는 행태라며 향후 격렬한 집단민원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 이를 허가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A씨는 이에 불복하여 행정심판위원회에 이 사건 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행정심판을 청구했으나 기각됐고, 결국 법원까지 해당 문제를 끌고 오게 됐다.

원고 측은 이 사건 신청은 일반장례식장 허가신청이 아닌 의료기관이 개설에 관한 허가를 받은 사항 중 중요사항을 변경하는 신청에 해당하기에, 의료법령상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 처분사유를 들어 처분을 취소하는 것은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장례식장 허가 내용이 중대한 공익에 배치된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가 없고, 주민들의 거주 안녕과 건전한 생활환경 저해, 교육환경 저해, 교통 흐름 방해, 교통사고 위험 등 막연한 사정만으로는 이 사건 신청을 거부할 수는 없다고 반발했다.

의료법 제33조 제5항은 의료기관이 개설허가사항 중 보건복지부령이 정하는 중요사항을 변경하려는 때에는 변경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관할 행정청은 개설하려는 의료기관이 의료법 제36조에 따른 시설기준에 맞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개설허가를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관할 행정청은 의료기관 개설허가신청 또는 의료기관 개설허가사항의 변경허가신청이 의료법 제36조에 따른 시설기준에 부합한다면 원칙적으로 이를 허가해야 한다. 

다만, 관할 행정청은 의료기관 개설허가 또는 의료기관 개설허가사항의 변경이 국민이 수준 높은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국민의료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고 증진한다는 '의료법'에서 벗어나 명백히 중대한 공익에 배치된다고 보일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그 허가를 거부할 수 있다.

하지만 재판부는 A씨의 병원 건물에 장례식장을 설치하는 것이 관할 행정청의 주장대로 '중대한 공익'을 저해하는지 그 근거가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A씨가 장례식장을 설치하려는 건물은 지하 3층 지상 10층의 최신식 대형 건물로서 조문객들은 지하주차장에 연결된 장례식장 전용 승강기를 이용하게 돼 있고, 장례식장이 설치되는 2층 창문유리에 코팅처리가 되어 있어 장례식장 내부가 보이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어, 장례식장이 설치된다 하더라도 거주 안녕을 해친다거나 인근 시민들과 학생들에게 정서적인 불안감을 느끼게 할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재판부는 앞서 대법원이 '장례식장은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고 사후명복을 기원하는 등 장례문화와 관련된 필수시설로서 인간의 숙명인 죽음과 관련되어 있다고 하여 혐오시설 또는 기피시설로 보아서는 안된다'고 밝힌 판례를 언급하며, 주민들의 반대를 이유로 장례식장 설치를 막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해당 요양병원에 장례식장이 생김으로써 주민 불편이 발생할 수 있다는 데 대해서는 해당 요양병원에서 사망한 사람의 수가 월 평균 5명 수준에 불과하고, 인근 지역에 7개의 다른 장례식장이 존재하므로, 해당 병원에 장례식장이 설치된다 하더라도 조문객들이 과도하게 몰릴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봤다.

나아가 해당 건물이 왕복 6차선의 대로변에 위치해 있는 데다 인근 교통체증을 예방하기 위해 병원에 상시 주차요원을 둘 예정이므로, 장례식장이 설치됨으로 인해 다소 교통 혼잡이 발생하더라도 인근 주민들의 통행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할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고 꼬집었다.

관할 행정청이 장례버스와 운구차로 인해 교통 흐름 방해와 교통사고 위험이 발생할 것이라고 한 우려에 대해서는 이를 뒷받침할 만한 객관적인 분석 자료가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A씨가 행정청 공무원들에게 장차 이 사건 병원에서 장례식장을 운영하지 않겠다고 말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증거가 없고, 설령 이러한 말을 했다 하더라도 이는 의료법령에 규정된 불허가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이 사건 병원 개설 허가 당시 장례식장 개설을 금지하는 내용의 부관이 있었던 것도 아니므로, 원고가 추후 장례식장을 개설하지 않겠다고 말한 사실이 있다는 사정은 이 사건 처분을 정당화하는 사유가 될 수 없다"며 의료기관 개설허가사항 변경신청 불허가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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