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의료기기 '지출보고서'‥'실효성·수용성·신뢰성·투명성' 과제

지출보고 제도, 공개 항목 및 대상 범위 점진적 확대로 실효성 제고
영업비밀 보호가 필요할 경우 공개 한시적 보류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제안
투명성 향상시키려면 내역을 누구나 확인할 수 있도록 '접근성' 좋아야

박으뜸 기자 (acepark@medipana.com)2023-06-02 11:40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우리나라는 2018년 1월부터 경제적 이익 제공 내역에 관한 '지출보고 제도'를 도입했다. 의약품 및 의료기기 거래 과정의 투명성을 높이고 시장의 자정 능력을 제고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이에 따라 의약품 공급자, 의료기기 제조업자 등은 의료인, 약사 등에게 제공된 허용된 경제적 이익 내역을 작성 및 보관하고, 정부가 요구할 경우 이를 제출해야 한다.

그러나 2020년 국정감사 자료에 의하면, 2018년 지출보고서 의무 작성이 도입된 이후에도 지출보고서를 작성하지 않는 업체가 65%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정부 주체로 지출보고서의 전수 검토 또는 보고서 제출 의무 등에 관리 강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지속돼 왔다.

또한 제약사 영업사원의 위험부담(리베이트 벌칙강화 등)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의약품 영업대행사(Contract Sales Organization, CSO)를 악용할 여지가 있어, CSO를 지출보고서 작성 주체로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따라서 우리나라는 2021년 6월, 법 개정을 통해 의약품 공급자 뿐만 아니라 의약품의 판매촉진 업무를 위탁받은 자의 경제적 이익 제공 금지를 명시하고 지출보고서 작성 의무자에 추가했다. 그리고 지출보고서를 공개하고 위반 시 적용 벌칙을 강화함으로써 의약품 및 의료기기 유통 관리를 강화했다.

정부는 2023년 7월까지 지출보고서 실태조사를 실시한 뒤, 그 결과를 12월에 공표할 예정이다.

지출보고서의 작성과 공개 자체만으로 업체와 보건의료전문가 사이의 재정적 관계의 유익성 또는 이해 상충을 구별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건전한 재정적 관계의 성격과 범위를 정하고, 이를 투명하게 관리함으로써 의약품 및 의료기기 유통 관련 자정 능력을 강화시킬 수 있다.

하지만 지출보고 제도 법 개정과 관련해 국내 관련 업체와 보건의료전문가들의 관심 및 우려가 높은 상황이다.

법령이 정한 범위 내의 재정적 관계가 이뤄졌다 하더라도 이를 지출보고서에 정확하게 기재하지 않으면 불법 리베이트의 오해를 받을 수 있다. 아울러 업체 내에서 자료를 수집하고 점검하는 업무로 인해 영세한 업체는 업무적 부담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므로 관련 이해관계자들과 충분한 의견수렴을 거치고 이를 반영·보완하면서 지출보고 제도를 빠른 시일 내 안착시키는 것이 최우선 과제로 떠올랐다.

이를 위해서는 제도 시행 초기에 명확한 가이드라인과 체계적인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이 이어졌다.

HIRA Research의 '의약품·의료기기 유통 투명성 제고를 위한 제외국 지출보고 제도 운영 현황: 4개국을 중심으로'에 따르면, 연구팀은 지출보고 제도 '실효성 제고'를 위해 지출보고서 '공개 항목 및 대상 범위가 점진적으로 확대'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여기에 연구팀은 지출보고서의 대상 항목과 공개 범위는 모든 재정적 가치를 포함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많은 연구들을 분석한 결과, 제약업체의 경제적 이득 제공이 경제적 이익을 지불하는 회사의 의약품 처방 증가, 처방 비용 증가, 브랜드 의약품 처방 증가와 관련이 있었다. 이러한 경제적 이득 제공은 식료품의 접대, 강의료 등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지적 재산권 등에 대한 경제적 이득 제공도 포함한다. 

특히 업체와 의료인 간 라이선스나 지적 재산권 등에 대한 관계를 명확히 밝히는 것은 의약품·의료기기의 유통과 처방·진료의 관계의 투명성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지출보고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두 번째 방안은 '지출보고 수수자의 범위 확대'이다. 이미 많은 해외 국가들도 지출보고 수수자의 범위를 확대하고 있는 추세였다.

다만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의 지출보고 작성 주체는 의약품·의료기기 등의 제조·판매업자로 한정돼 있으나, 우리나라는 2021년 법령 개정을 통해 CSO까지 지출보고 작성 주체로 확대된 상태다.

이는 제도 확대를 통해 부적절한 경제적 이득을 제공할 가능성이 있는 실질적인 대상까지 관리함으로써, 리베이트를 근절시키기 위한 우리 정부의 노력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반대로 지출보고서의 직접적인 이해당사자인 작성 주체(업체)와 수수자(보건의료전문가) 측면에서 불합리한 제도 설계는 제도의 수용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

연구팀은 지출보고 작성 업체의 '수용성'을 확보하기 위해, 업계의 의견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고 권고했다. 실제로 2024년 지출보고서 공개를 앞두고, 국내 업체들은 최소한 영업비밀이 보장돼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연구팀은 "만약 업체가 영업비밀 보호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이에 관한 지출보고 공개를 한시적으로 보류할 수 있는 기전을 마련해 둬야 한다. 제도적 장치는 임상시험 정보 등의 영업 비밀이 지출보고 공개를 통해 사전 유출될 수도 있다는 업계의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다. 동시에 지출보고서를 성실히 작성하고 제출한 업체가 오히려 상대적인 손해를 보지 않도록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출보고 수수자의 수용성 확보를 위한 또 다른 방법에는 '당사자 간 조정 절차 수립'이 있다. 업체와 수수자가 지출보고에 대한 정확성을 상호 확인하고, 수수 당사자가 지출보고 내역을 검증하고 소명할 수 있는 충분한 기회가 부여돼야 한다는 의견이다. 이는 수수자가 부정확한 지출보고 내역을 관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수수자 본인의 지출보고 내역을 자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연구팀은 "지출보고 자료 수집과 공개 일정 내에 정해진 일정 기간 동안 상호 검토·조정이 가능하도록 사전에 기간, 방법을 상세하게 안내한다면, 지출보고에 대한 정확성 및 수수자 측면에서 제도의 수용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지출보고 제도의 '신뢰성'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수수자 및 제품 고유 식별번호 부여 및 관리 등 '데이터의 정확성'을 높여야 한다.

무엇보다 경제적 이익을 제공받은 수수자의 고유번호는 동명이인 등의 관리를 위해 부여돼야 하며, 우리나라의 경우 의료인 면허번호나 요양기관 기호 등을 활용할 수 있다.

연구팀은 "데이터 수집 단계부터 개인 식별 고유번호가 부여되면 지출보고 내역 데이터의 정확성 및 신뢰도를 높일 수 있으며, 추후 수수자 본인의 지출내역을 쉽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더불어 지출보고의 '투명성'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지출보고 내역을 누구나 확인할 수 있도록 '접근성'이 좋아야 한다. 다양한 관점에서 지출보고서에 대한 탐색이 가능하다면, 적정 진료에 잠재적으로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는 재정적 관계를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연구팀은 "지출보고 내역의 접근성 및 활용성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웹 데이터베이스 기반으로 지출보고 자료가 공개돼야 한다. 오픈된 웹 데이터베이스 형식으로 자료가 공개되면 누구나 검색하고 조회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엑셀이나 .csv 파일처럼 자료를 재가공할 수 있는 형태로 다운로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지난 2023년 2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위탁해 지출보고서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복지부 홈페이지에 공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심평원은 2021년 기준 12억 6천 만 건의 건강보험 청구데이터를 관리하고, 자료를 가공해 연구용으로 제공하는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연구팀은 "심평원은 국내에서 유통되는 모든 의약품의 국가 의약품표준코드를 부여하고, 생산·수입·공급·소비 실적을 수집해 관리하는 의약품유통정보시스템을 구축 및 운영하고 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지출보고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가공해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지출보고 제도는 업체 측면에서 윤리 경영, 보건의료전문가 측면에서 의약품 및 의료기기와 관련된 적정 진료, 환자 입장에서 정보에 입각한 진료 선택권 보장에 도움을 준다.

그렇지만 지출보고 제도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면 제도 도입의 의의를 인식하지 못한 채 그저 과중한 행정 부담이 될 수 있다. 

지출보고에 대한 '인식 수준 제고'를 위해서는 업체, 의료인 및 국민을 대상으로 지출보고 제도의 취지, 목적과 내용 및 의의에 대한 적극적이고 적절한 홍보와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연구팀은 의료인과 국민들이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도록 국민 맞춤형 홍보를 제시했다.

연구팀은 "지출보고서 공개 초기에는 업체와 의료인 모두 지출보고 작성, 보고, 검토 등과 관련된 업무 부담을 크게 느낄 수 있다. 지출보고 확인 및 이의 신청, 정정 요청과 관련한 상세한 일정 및 운영과 관련된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준비해야 한다. 또한 이에 대한 꾸준한 교육과 홍보를 통해 제도가 안정적으로 안착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기사
어때요?

실시간
빠른뉴스

당신이
읽은분야
주요기사

독자의견

작성자 비밀번호

0/200

메디파나 클릭 기사

독자들이 남긴 뉴스 댓글

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