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클렉스타` 치료 후, 말 그대로 '기적'이 일어났죠"

[연중기획 희망뉴스] `벤클렉스타` 병용, 만성 림프구성 백혈병 재발 환자에게 치료 기회 확대
2년 고정치료‥부작용 및 독성 최소화, 치료 비용 절감, 환자 삶의 질 개선

박으뜸 기자 (acepark@medipana.com)2020-06-10 06:06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조 씨(1940년 생)가 MURANO 임상연구에 참여하게 된 것은 운명적이었다.

조 씨는 2014년 7월에 임상에 참여해 2016년 8월까지 딱 `2년간` 약을 투약한 뒤, 4년 째 후속치료 없이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조 씨는 10년 전 `만성 림프구성 백혈병(Chronic lymphocytic leukemia, CLL)`으로 진단을 받았다. 곧바로 알킬화제인 클로람부실(chlorambucil)로 치료를 받았고, 효과는 좋은 편이었다.

하지만 이는 1~2년 남짓이었다. 백혈병은 다시 재발했고, 세브란스병원 김진석 교수는 조 씨에게 CLL의 최신 치료제 임상시험에 참여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이미 김 교수에 대한 신뢰가 두터웠기 때문에, 조 씨는 단번에 '그러하겠다'고 답했다.

"딱 2년 동안만 약을 투약했습니다. 그 이후에는 어떤 후속 치료없이 지금까지도 건강하게 상태를 유지 중입니다. '벤클렉스타(베네토클락스)'라는 치료제 이름도 정확히 기억하고 있어요."

◆ 70대인 나이에 발생한 `만성 림프구성 백혈병`

2010년이었다. 의례적으로 받던 건강검진에서 대장에 '용종'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제거한 것이 다였다.

그런데 몇달 뒤 '복통'이 있어 다시 검진 센터를 찾아갔다. 그때 전신 림프절 쪽에 암이 다 퍼져있는 것을 확인했다.

"건강에는 자신 있었기 때문에 더욱 충격적이었어요. 젊었을 적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난 친구가 있어 '만성 림프구성 백혈병'을 진단받았을 때에는 그저 막막했습니다."

`만성 림프구성 백혈병`은 희귀 혈액암으로 분류된다. 60대 이후 노년층에서 주로 발생하며, 우리나라에서는 10만명 중 0.1명 정도로 보고된다.

조 씨는 곧바로 CLL의 1차 치료 옵션인 `클로람부실(chlorambucil)`을 사용했다. 클로람부실은 부작용이 적어 고령의 환자에 사용되기 적합하다고 여겨진다.

주치의인 세브란스병원 혈액내과 김진석 교수는 "만성 림프구성 백혈병의 병기는 A, B, C 단계로 나눌 수 있는데, 처음 내원 당시 조 씨는 B 단계로 매우 나쁜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림프절 전체에 암이 퍼져 있었고 림프절이 워낙 커서 2010년 8월부터 클로람부실로 치료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다행히 효과는 있었다. 1~2년간 안정된 상태로 지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2013년 7월에 다시 상태가 나빠졌다. '재발'이 된 것이다.

실제로도 CLL은 완치되기 어렵고 지속적인 재발을 반복한다. 재발할 때마다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면 생존율이 급격히 감소하게 된다.

조 씨가 재발을 진단받은 2013년 때까지만 해도 CLL의 2차 이상의 치료옵션은 상당히 제한적이었다.

마침 김 교수는 애브비의 `벤클렉스타`와 `리툭시맙`의 병용요법에 대한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었다.

조 씨는 "당시에는 약의 종류가 많지 않고 적절한 치료제가 없었다. 그런 와중에 김 교수가 벤클렉스타와 리툭시맙 병용요법 임상연구에 내 조건이 적합하다며 참여를 제안했다. 워낙에 김 교수를 믿었기 때문에 고민하지 않고 바로 승낙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조 씨는 2014년 7월부터 2016년 8월까지 해당 임상시험에 참여해 치료를 받았다. 임상시험이 종료된 2016년 8월부터 현재까지 미세잔존질환(Minimal Residual Disease,MRD)-음성에 도달해 약 4년 동안 다른 치료제를 복용하지 않고 유지하고 있다. 조 씨는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며 3개월에 한 번씩 병원에 내원해 혈액검사만 받고 있을 뿐이다.

"2년간의 고정기간 치료가 끝난 후, 지금은 만성 림프구성 백혈병 때문에 먹는 약이 하나도 없습니다. 잠을 잘 자지 못해 수면제를 조금 처방받는 것 외에, 요즘은 혈압약도 먹지 않고 있고 당화혈색소도 6.6 정도로 유지 중이라네요. 나이가 있기 때문에 다리에 힘이 없긴 하지만, 다른 건강상의 문제는 없습니다."

◆ '2년'이란 '고정기간 치료', '확신'을 안겨준 MURANO 임상

김진석 교수가 조 씨에게 `벤클렉스타 병용요법`을 제안한 것은 그가 고령이라는 이유가 컸다.

김 교수는 "고령의 환자에서는 완치보다는 질병을 관리(Control)를 치료 목표로 설정한다. CLL은 치료제 복용으로 상태가 호전되면 약을 중단했다가 재발하면 동일한 치료제를 다시 처방하기도 한다. 플루다라빈과 같은 항암제가 있긴 하지만 고령의 환자에서는 사용하기 어렵고, 나머지 약은 급여가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당시 진행됐던 MURANO 임상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현재 '벤클렉스타-리툭시맙' 병용요법은 하나의 화학요법을 포함한 이전 치료를 받은 적이 있는 재발성/불응성 만성 림프구성 백혈병 치료에서 상당히 의미있는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먼저 벤클렉스타와 리툭시맙 병용은 `2년`이라는 `고정기간 치료`만 받으면 된다. 쉽게 말해 2년간만 약을 투약한 뒤 약을 끊어도 효과가 유지되는 것이다.

MURANO 임상에 참여한 김 교수조차도 2년이란 고정 치료에 '확신'이 필요했다고 회상했다.

김 교수는 "벤클렉스타와 리툭시맙 병용요법으로 치료할 경우, 벤클렉스타는 2년 만 복용하고 이후 무치료 기간(Off-Treatment)을 갖게 된다. 이처럼 2년 만 고정기간 치료를 하게 될 경우, 약을 중단한 시점에 완전 관해에 도달하지 않는 환자나 미세잔존질환(MRD)-음성에 도달하지 않는 환자도 일부 있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더불어 이런 상황에서 다른 유지요법을 하지 않고 약을 중단한다는 것이 환자나 의료진 입장에서 불안했다"고 털어놓았다.

다행히 MURANO 임상 결과는 긍정적이었다. 고정기간 치료에 대한 '근거'가 마련됐고, 변화가 시작했다.

벤클렉스타와 리툭시맙 병용요법은 질병의 진행 또는 사망 위험을 83% 감소시켰고, 전체 생존율은 표준 치료인 벤다무스틴과 리툭시맙 병용투여군에 비해 더 높게 나왔다.

질병의 진행 없이 2년 간의 투약을 마친 130명의 벤클렉스타정-리툭시맙 병용군 환자를 추적 관찰 연구(Post-Treatment Follow-up Study)한 결과, 투약 후 18개월, 24개월에서의 무진행 생존율 추정값은 각각 75.5%와 68.0%였다.

병용요법 치료가 종료되는 시점(9개월)의 미세잔존질환(MRD)을 기준으로 측정한 결과, 벤다무스틴과 리툭시맙 병용 환자군의 13.3%가 말초혈액에서 미세잔존질환 음성에 도달했다. 이와 달리 벤클렉스타정과 리툭시맙 병용요법으로 치료 받은 환자군은 62.4%가 미세잔존질환 음성에 도달했다.

MRD는 임상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질병이 없는 환자에서도, 치료 후 암세포의 수치가 낮지만 검출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MRD는 백혈병 세포 10,000개 중 1개 미만의 CLL 세포가 관찰될 때 MRD-음성으로 정의한다. MRD는 잠재적으로 장기적인 치료 결과와 연관돼 있다.

아울러 벤클렉스타는 4년 추적 관찰 연구 결과, 무진행 생존율(Progression- Free Survival, PFS)이 56%에 달했다. BR요법(벤다무스틴+리툭시맙)이 5% 밖에 되지 않는 것과 비교하면 상당한 차이다.

생존율의 차이도 분명했다. BR 병용요법으로 치료한 환자는 4년 차에 65%가 생존해 있었지만, 벤클렉스타와 리툭시맙 병용요법으로 치료한 환자는 85%가 생존해 있었다.

김 교수는 "모든 암 질환이 그러하지만 만성 림프구성 백혈병 치료에서도 무진행 생존율(PFS)이 매우 중요하다. 병의 재발로 후속 치료를 진행해야 하는 시점을 고민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진행이 느린 질환은 PFS만 차이를 보이고 생존율 차이를 보기 어렵다. 하지만 벤클렉스타와 리툭시맙 병용요법은 4년 째에도 무진행 생존율이 56%, 생존율은 85%에 달했다. 이 때문에 벤클렉스타와 리툭시맙 병용요법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고 덧붙였다.

또한 벤클렉스타는 만성 림프구성 백혈병 재발의 고위험군인 17p 유전자 결손(17p- deletion)이 있는 환자들에서도 효과가 뛰어났다.

17p 유전자 결손(17p- deletion) 환자는 만성 림프구성 백혈병 환자 중 15%를 차지하고 있고 예후가 나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가운데 BR 병용요법은 이러한 환자군에서 전혀 효과가 없다. 반면 벤클렉스타는 이러한 환자군에서도 효과를 보여 생존율이 상당히 개선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벤클렉스타 병용요법은 반응도 빠른 편이다.

김 교수는 "벤클렉스타는 투약 후 빠른 속도로 림프구 수치가 감소해, 실제로 환자의 증상이 호전되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는다. 보통 치료를 시작하고 1~2개월이 지나면 증상이 상당 부분 개선된다"고 말했다.

조 씨도 임상시험을 시작할 때 백혈구 수치가 57,000에 달했고, 림프구 수치가 상당히 높았다. 하지만 치료 첫 번째 달에 23,000까지 백혈구 수치가 감소했고 두 번째 달에는 7,000까지 낮아졌다. 두 달 사이에 백혈구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리고 무치료 기간(Off-Treatment)인 현재까지 정상 백혈구 수치를 유지하고 있다.

김 교수는 CLL에 있어 '2년 고정기간' 치료가 갖는 의미는 상당하다고 정리했다.

먼저 환자의 '삶의 질' 향상이다.

김 교수는 "2년 간의 고정기간 치료만으로 환자가 본인의 삶을 다 누릴 수 있다는 점은 의미가 크다. 약물 치료로 생존 기간을 연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최근에는 환자의 삶의 질도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더불어 무치료 기간(Off-Treatment)에 다른 항암치료를 하지 않으니 환자의 컨디션이 매우 좋다. 암 환자라고 생각하지 못할 정도다"라고 말했다.

여기에 2년 고정기간 치료를 시행하면 비용 절감도 가능하다. 긴 무치료 기간(Off-Treatment)을 갖기 때문에 만약 재발 시 같은 약을 다시 써도 효과가 있다. 재치료(Retreatment)에 대한 개념을 적용할 수 있는 포인트다.

김 교수는 "대부분의 치료제는 일단 치료를 시작하면 병이 진행될 때까지(Until Progression) 지속적으로 복용해야 한다. 만약 환자가 벤클렉스타와 리툭시맙 병용요법 임상연구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계속해서 치료제를 복용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는 환자 입장에서 매우 부담되는 일이다. 감염의 증가 및 호중구 감소 등과 같은 부작용을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하기 때문이다"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치료도 3차 이상의 후기 치료에서 사용하면 효과가 감소한다. 효과적인 약을 조기에 사용하려면 빠른 급여 적용이 필요해 보인다.

김 교수는 "벤클렉스타와 리툭시맙 병용요법은 2년 고정기간 치료가 가능해, 비용 측면에서 유리하다. 급여가 빨리 이뤄지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 의사와 환자간 탄탄한 신뢰, 좋은 결과를 이끌어준 중요한 요소

인터뷰 내내 조 씨와 김 교수와의 끈끈한 신뢰를 엿볼 수 있었다. 첫 진단부터 지금까지 김 교수의 말을 제대로 따르고 있다는 조 씨.

김 교수는 "환자 입장에서는 임상연구 참여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조 씨는 굉장히 모범적인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임상연구에 참여해 모두 긍정적인 결과를 얻는 것은 아니지만, 기존 치료제보다 부작용이 적고 효과도 훨씬 더 뛰어난 치료제를 사용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이런 기회가 있을 때 적극적으로 의료진과 상의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2018년 8월 이후로 좋은 상태를 꾸준히 유지 중인 조 씨는 지난해 캐나다에 있는 딸을 보러 다녀오기도 했다. CLL을 치료받느라 해외여행은 꿈도 못 꿨던 그였다.

"2010년 CLL을 진단 받기 전에는 캐나다에 사는 딸에게 1-2년 간격으로 방문했었어요. 그런데 진단 후 10년 정도 못 가다가 치료 결과가 좋아 2019년에 오랜만에 비행기를 타게 됐습니다. 저에게는 기적이 일어난거죠. 감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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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2020.06.11 19:02:41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임상시험의 밝은면을 보게 된 것 같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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