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갈등으로 인한 의료공백이 한창이던 때, 취재차 만난 환자가 던진 질문이다.
정부 의대정원 증원, 필수의료 패키지 등 정책에 대해 9.4 의정합의 위반이나 일방적 강행이라며 분개하는 의사들 입장에선 '국민들은 이렇게 몰라주는 구나'라며 답답해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어진 내용을 들어보니 '몰라줘서'가 아닌 '알아서' 나온 질문이었다. 9.4 의정합의는 도리어 의료계를 질책하는 근거로 제시됐다.
"2020년에 그 난리를 겪고 코로나 끝나면 다시 논의하기로 의사들도 합의 했잖아요. 3년이 넘도록 무슨 자신감으로 의사 수 추계도 안하고 반대만 했대요?"
기자는 질문에 답하지 못했다. 실제 정부는 3개 연구에서 제시된 의사 수 1만 명 부족 추계를 내놓으며 의료계를 압박해왔고, 의협은 '틀렸다, 추계는 고려 요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정도로 대응해왔다. 의협 주장이 사실이더라도 국민 입장에서 어느 쪽을 신뢰할지는 명확하다.
이후 답을 찾기 위해 몇몇 당시 집행부 임원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다. 돌아온 대답을 종합하면 '연구 결과를 떠나 착수만으로 정부엔 의대정원 증원 빌미를 줄 수 있고, 의료계 내부에선 증원에 찬성하냐며 강한 반발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 정도였다.
의협이 이런저런 우려와 불안에 '아니'라고만 하는 사이 3년이 흘렀다. 정부는 코로나 종식 이후 수십 차례 의료현안협의체를 비롯해 명분을 쌓았고, 이내 2000명 증원을 발표했다.
근거나 절차에 하자가 있을지언정, 국민들 입장에서 9.4 의정합의에 충실했던 건 오히려 정부일지도 모른다. 의료계는 정부가 부족한 근거로 반발을 예상하고도 정책을 밀어붙였다고 말하지만, 의료계 대표를 자처하는 의협은 이를 방관했다는 환자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이 지경이 되도록 뭐 했는지 모르겠다'는 지적을 받은 집행부는 이미 절묘한 시점에 적절한 명분과 함께 사라졌고, 새로운 집행부는 투쟁에 시동을 걸었다.
투쟁은 의료계가 요구하는 원점 재논의 가운데 '원점'으로 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 다만 여전히 의협 차원에서의 '재논의'를 위한 준비는 보이지 않는다.
정책에 근거가 필요한 것처럼 반박에도 근거가 필요하다. 새 집행부는 '아니'만 외치다 새로운 '이 지경'을 만들지는 않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