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훈정 의협 부회장, 임인택 전 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 박종헌 건보공단 급여관리실장. 사진=조후현 기자
[메디파나뉴스 = 조후현 기자] 올해 수가협상을 앞두고 당사자인 의료계와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만났지만 개선 요청과 노력 중이란 원론적인 입장차만 재확인됐다. 매년 반복되는 수가협상 논란을 타파하기 위해선 의료계가 환산지수만이 아닌 상대가치와 지불제도까지 아우르는 정책 방향을 만들어 제시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대한개원의협의회는 22일 대한의사협회 회관에서 2026년 수가협상 공청회를 개최했다.

이날 의료계는 수가협상이 불합리하다는 점을 지적하며 개선을 요청했다.

김계현 의협 의료정책연구원 연구부장은 발제를 통해 수가계약제가 정부 일방적 결정 방식을 탈피해 보험자와 공급자가 동등한 계약을 통해 합리적으로 수가를 결정한다는 도입 취지와 다르게 운영되고 있다는 점을 짚었다.

김 연구부장은 ▲건보공단 이사장이 계약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재정운영위원회가 막강한 권한을 갖고 수가협상을 좌우한다는 점 ▲당일 재정소위가 최종 환산지수 조정률인 밴드를 결정하고 유형별 순위·격차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통보식 '깜깜이' 구조로 이뤄진다는 점 ▲재정운영위원회 세부 논의 내용이나 결정 근거 자료 등이 공개되지 않아 합리성과 투명성이 부족하다는 점 ▲밴드 결정이 기준과 원칙 없이 1조원이란 심리적 상한선을 두고 정해진다는 점 ▲협상이 결렬되더라도 중재기능이 없어 일방적이라는 점 등을 지적했다.

좌훈정 의협 부회장은 이어진 토론에서 밴드를 재정운영위에서 일방적으로 정해 제시하는 것은 '물건값을 파는 사람이 아니라 사는 사람이 정하는 식'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좌 부회장은 "밴드를 재정운영위에서 정하는 건 물건값을 사는 사람이 정하는 것"이라며 "아파트가 30억이면 거기서 2~3억원을 더하거나 빼는 식으로 결정돼야 하는데, 사는 사람은 3억만 주고 싶기도 하고 1억만 주고 싶기도 하지 않겠나. 이런 구조로 가격이 결정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좌 부회장은 수가협상을 2단계로 나누는 것을 개선 방향으로 제시했다. 전체 수가인상분인 밴드를 놓고 1차 협상을 하고, 정해진 밴드를 기준으로 유형별 수가협상을 하는 방식이다.

아울러 수가협상이 결렬될 경우 이뤄지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표결구조도 개선할 것을 요청했다. 보험료나 수가를 결정할 때는 가입자와 공급자만 표결에 임하게 하는 식이다.

좌 부회장은 "지금처럼 법령을 대놓고 어겨가며 갑질로 밀어붙이는 엉터리 수가협상은 중단돼야 한다"며 "강요된 계약은 계약이 아니라 무효다. 복지부와 건보공단은 비정상적 수가협상을 정상으로 돌려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건보공단은 개선을 위해 노력 중이란 점을 피력했다.

박종헌 건보공단 급여관리실장은 먼저 재정운영위는 건강보험료는 내는 당사자이자 국민을 대표하는 가입자 대표로 구성돼 있어 가능한 의견을 반영하고 존중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설명했다.

밴드의 경우 결정 근거가 부족했던 것은 사실이나, 밴드까지 결정할 수 있는 개선 모형을 도입을 추진하는 등 일방적 구조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투명성의 경우도 과거와 달리 민감한 자료를 제외하고는 가능한 자료는 모두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상률이 낮다는 의료계 불만에 대해선 환산지수 인상보다 실제 진료비가 많이 올라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예를 들어 의원급 환산지수를 1.9% 인상하면 실제 진료비 인상은 목표보다 몇 배 높은 6.9%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날도 의료계와 건보공단이 원론적 입장차만 재확인하자, 지난해까지 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으로 의료 정책과 건보 정책을 총괄하던 임인택 가톨릭대학교 보건의료경영대학원 교수는 의료계가 '폴리시 머슬(정책 근육)'을 키워 정책을 선제적으로 만들고 방향을 제시할 것을 조언했다.

단편적으로 수가협상 문제만 지적하며 개선을 요청할 것이 아니라 환산지수와 상대가치점수, 지불제도 등 전반을 아우르는 방향을 만들어 정부와 대화해야 발전적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란 설명이다.

임 교수는 "오늘 토론 내용은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10년 전에도 있었지만 변화는 거의 없다. 의료계도 수가협상이 다가오면 공청회를 하고 관심을 갖는데, 협상이 결정되고 나면 다시 잊어버린다"면서 "환산지수 문제만 이야기할 게 아니고 의료계에서 전체적으로 생각하는 방향을 만들어 정부와 이야기를 하면 발전된 방향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외국처럼 민간에서 정책을 만들고 제안할 수 있는 힘인 폴리시 머슬이 필요하다"며 "의협이 중심이 돼서 의료계가 생각하는 수가와 상대가치, 의료정책 방향 등을 정책적으로 만들어내는 폴리시 머슬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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