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약사회는 전문가 단체로서 혁신위가 개최하는 회의에 참여하기 전 출입기자단과 간담회를 갖고, 두 가지 안건에 대해 모두 우려와 반대의 입장을 자세히 설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감을 표했다.
특히 화상투약기 건의 경우, 자동으로 실증특례가 연장되는 상황이지만, 이를 막아 시범사업이 연장 되지 않도록하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화상투약기는 2년 간의 실증사업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던 만큼 자신감이 엿보였다.
동물병원 인체용 의약품 직접 공급은 지난해 보건복지부 국정감사에서 남인순 의원이 동물병원이 인체용 의약품 사용의 사각지대라며 오남용 방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 바 있다.
이후 동물병원의 인체용 의약품 사용 관리·감독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약사법이 개정된 만큼, 실증특례 이전에 의약품에 대한 관리·감독 시행 부분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려고 했다.
그러나 혁신위 회의 참석 후 긴급으로 진행된 약사회 브리핑에서는 혁신위 회의가 신산업에 대한 토론의 장이 아닌,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규제 샌드박스 이행이라는 결과를 이미 정해놓은 뒤 심의위원회로 가기 전 절차를 지키기 위해 보여주기식으로 진행된 일방적인 회의였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면서 '규제 샌드박스'가 보건의약계에 필요한 부분일지에 대한 의문을 표하기도 했다. 안전성을 산업적 편의성과 맞바꿀 수 없다는 기조다. (다만, 대한한약사회는 화상투약기 도입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이에 화상투약기 설치 불가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양측의 입장에서 볼 때, 각자의 입장은 모두 이해가 된다. 산업적 성장을 노리는 입장은 산업 발전이 빨리 이뤄져야 수익이 나는 만큼 규제가 길을 열어주길 바랄 수밖에 없고, 전문가 입장에서는 안전성에 대한 강조를 지속해야만 한다. 그것은 약에 대한 면허를 가진 그들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아주 처음으로 돌아가서 보면, 애초부터 산업의 발전이라는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규제 샌드박스인 만큼, 어쩌면 전문가 단체로서 이번 싸움은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을 지도 모른다.
여지껏 우리 사회에서 안전과 산업 발전을 모두 가져가는 것은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행동과 다르지 않았다.
다만 이건 아주 개인적인 생각으로, 화상투약기 운영에 대한 몇 가지 의문은 든다. 화상투약기를 운영하려면 화상 복약지도를 하는 약사가 필요할텐데, 언제 어느 때 환자가 약을 사야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24시간 대기조처럼 대기하며 근무하겠다는 약사들이 많이 있을 지 궁금하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약국이 없는 격오지에는 화상투약기가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되기도 하지만, 과연 격오지에 화상투약기 두고 운영하는 약국이 이 운영비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수익이 있을지도 의문이다. 돈이 없는데 운영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을까.
또한 동물병원에서 왜 동물약을 쓰지 않고, 인체용 의약품을 사용하려고 애를 쓰는지 알 수 없다. 같은 성분이기 때문에 동물에게도 사용할 수 있다지만, 그렇다면 제약사들은 왜 동물용 의약품을 따로 만들고 시장을 확대하려고 하는 것이며, 동물병원에서 동물용 의약품을 쓰지 않는다면, 이를 왜 만들어야 하는 것인지도 의아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는 또 다시 제약사들이 동물용 의약품 시장 확대를 저지하는 모양새가 되는 것은 아닌가. 라는 사적인 의문을 나열해봤다.
하나의 문이 열리면 하나의 문이 닫히는 것인지, 안전과 산업은 왜 늘 평행선을 달리는 것인지. 규제 문제는 늘 복잡하고 어렵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