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평원 약제관리실 김국희 실장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제약사가 새로운 적응증에 급여 확대를 시도할 때마다 마주하는 건 '약가를 더 내리라'는 요구다. 치료 영역은 빠르게 넓어지고 있지만, 국내 약가 구조는 여전히 '단일 약가-반복 인하'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다적응증 기반 신약 개발이 글로벌 트렌드로 자리 잡은 상황에서 이 같은 구조는 오히려 혁신 신약의 국내 도입을 늦추고 환자 접근성을 가로막는 병목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적응증별 약가제도(Indication-Based Pricing, IBP)'가 다시 해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제약업계는 IBP가 도입되면 적응증 추가 시 반복되는 약가 인하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다며, 다적응증 신약 개발과 급여 확대를 유도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이라고 보고 있다.

한 글로벌 제약사 관계자는 "이미 최초 적응증에서 충분히 가격을 낮췄는데 추가될 때마다 또 내리라고 하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이 구조가 유지된다면 결국 '코리아 패싱'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IBP는 적응증별로 임상적 가치와 비용효과성을 평가해 가격을 차등 적용하는 방식이다. 제약사는 급여 확대를 주저할 이유가 줄고, 정부는 가치 중심의 재정 집행이 가능해진다. 국내 제약사에도 다적응증 개발 동기를 부여할 수 있다.

그러나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8일 전문기자단 간담회에서 심평원 약제관리실 김국희 실장은 "적응증별로 약가를 차등 책정하는 것에 대한 적절성과 실제 적용 가능성 등을 고려해 검토하되,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다적응증 약제는 '하나의 제품에 두 개 이상의 적응증이 있는 경우'를 뜻하며, 현재는 적응증 수와 관계없이 동일한 상한금액이 적용된다.

김 실장은 "최근 항암제 등에서 허가 이후 적응증 추가 및 등재 이후 급여 확대가 증가하면서, 적응증별 약가제도 도입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김 실장은 "동일 제품의 약가를 적응증별로 달리 할 경우, 환자 간 형평성 문제나 처방 왜곡 등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임상 현장의 혼란을 최소화하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전면 도입이 부담스럽다면 '환급률 차등 적용', '가중평균가 방식' 등 일부 약제 또는 항암제 중심의 시범사업부터 추진해 제도 적합성을 검토하자는 제안도 나오고 있다.

해외에서 IBP를 운영하는 방식은 국가마다 다양하다. 이탈리아, 스위스, 호주, 벨기에는 적응증별로 환급률을 달리 적용하고 있다. 이탈리아, 프랑스, 호주, 일본 등은 적응증별 약가를 종합해 가중평균가를 적용하는 모델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이 방식은 예상 사용량 산정 및 적응증 추가 가능성 등에서 불확실성이 뒤따른다.

김 실장은 이에 대해서도 "단일 가중평균가를 적용하는 경우에도 가중평균가 산출을 위한 데이터 수집 방법, 약가 설정 방식, 사후 관리 등에 대한 신중한 논의가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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