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자칫하면 의사 생명이 끝난다." 필수의료 전공의들이 복귀를 주저하며 가장 먼저 꺼낸 말이다. 응급실, 분만실, 중환자실처럼 고위험 현장에 투입되지만,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모든 책임을 홀로 짊어져야 한다는 구조적 불안 때문이다. 열악한 근무 환경보다 더 큰 벽은 '사법리스크'였다.
소아청소년과를 전공했던 한 전공의는 "후배들이 소청과 수련을 이어 가지 못하는 이유의 대부분은 사법 리스크 때문이었다. 소송이 한 번 걸리면 형사처벌은 물론 막대한 비용 부담까지 뒤따른다. 이런 점들이 더 무겁게 다가온다"고 털어놨다.
신생아중환자실(NICU) 근무 경험이 있는 전공의는 작은 판단조차 법적 부담으로 이어진다고 호소했다.
그는 "NICU에서 근무할 때는 0.1cc 단위까지도 고민한다. 작은 판단 하나로도 환자 상태가 급변할 수밖에 없는데, 이런 상황에서 법적 책임이 과도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사법리스크에 대한 두려움은 결과보다 과정에서 더 크게 작용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의료사고에 연루돼 조사와 재판을 거치면 그 압박이 수련 의지를 꺾고 복귀조차 불가능하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교수진도 이 같은 현실을 우려했다. A대학병원 교수는 "전공의들이 이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마음이 무겁다. 사법리스크는 필수과 의사라면 누구나 겪는 문제"라며 "제도적 지원과 변화가 없다면 이런 생각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응급의학 전문의들도 같은 목소리를 냈다. 전라남도 내 한 응급의료센터에서 근무 중인 A전문의는 "응급의들은 긴 근무시간과 체력 부담뿐 아니라 언제든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일한다. 최선을 다한 처치가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환자실, 응급실, 분만실 등 고위험 진료 현장일수록 젊은 전공의가 투입되며, 이들이 단독으로 형사 책임을 지는 사례가 반복되면서 현장은 더욱 기피되고 있다. 이에 전공의단체는 제도적 장치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정부에 제출한 3대 요구안 중 하나로 의료사고에 대한 법적 부담 완화를 포함했다. 대전협 비대위는 수련 단계부터 법적 보호장치가 필요하다며, 의료사고에 대한 논의 기구를 통해 제도적 정비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처럼 의료계의 요구는 단순히 처벌을 피하자는 것이 아니라, 불가항력적 상황에서 의사가 모든 책임을 짊어지지 않도록 하는 '사법리스크 완화'에 맞춰져 있다.
그러나 의료계의 요구는 사회적 합의를 얻지 못하고 있다. 환자단체는 불가항력 의료사고에 대한 법적 리스크 완화를 '특혜'로 규정한다.
환자단체연합회는 "의료사고 형사 리스크는 과장된 주장일 뿐 아니라, 의사들은 이미 다른 직종에 비해 세 가지 특례를 적용받고 있다"며 반박했다. 현행법상 ▲응급의료법 특례(중대한 과실이 없을 경우 형 감경·면제), ▲의료분쟁조정법 특례(조정 성립 시 경상해 형사처벌 배제), ▲의료법 특례(업무상과실치사상죄는 반복해도 면허 취소 제외)가 해당된다는 것이다.
결국 불가항력 의료사고를 둘러싼 시각차는 좁혀지지 않은 채 그 사이에서 젊은 전공의들이 가장 큰 부담을 지고 있다.
또 다른 전공의는 "사법리스크 완화와 자부심 회복이 이뤄지지 않으면 필수의료는 머지않아 멸종할 것이다. 지금의 정책은 자부심이나 전문성 인정과는 거꾸로 가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사법리스크 완화"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