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구매를 돕고자 만들어졌지만, 지금은 유통 길목에서 '통행세'를 챙기는 존재로 변질됐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그것도 10년 넘게 되풀이 되고 있는 해묵은 문제로서 말이다.
간납업체의 역할은 병원 장보기를 대신해주는 '심부름센터' 성격을 띈다. 병원 구매팀이 수 백, 수 천 가지에 달하는 모든 의료기기 구매 계약을 할 수 없기에 이를 대신한다.
문제는 이들이 단순히 심부름 값만 받는 게 아닌, 장바구니를 들고 오는 길에서 '통행세'를 요구한다는 점이다.
병원 재단이나 학교법인, 심지어 병원장 친인척이 소유한 간납업체들이 다수 존재하기 때문이다. 의료기관이 직접 나서지 않고도 간납업체를 앞세워 과도한 수수료와 불합리한 거래 조건을 강요하는 구조가 고착화된 것이다.
그 피해는 온전히 의료기기 업체에게 전가되고 있다. 최근 열린 의료기기 유통구조 선진화 방안 국회토론회에서 주제발표를 맡은 배성윤 인제대학교 경영학과 교수에 따르면, 공급업체에 대한 간납업체의 평균 대금 지급일은 270일이다.
병원이 진료비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40일 이내에 수령하는 것과 비교하면, 약 230일이 지연되는 셈이다. 돈은 병원에 이미 들어왔는데, 업체들은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는 말만 들으며 버텨야 하는 것이다.
이 피해는 대부분 중소기업이 떠안는다. 국내 의료기기 업체 90% 이상은 연매출 80억원도 안 되는 소규모 회사로 분류된다. 그렇다 보니 이들 기업의 현금 흐름이 막히면 연구개발은 커녕 직원 월급 주기도 빠듯해진다.
업계에 따르면 이로 인한 지연금 규모는 약 1조2000억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단순한 지연이 아닌 산업 전체 혈관이 막히는 수준이다.
문제는 대금 지연뿐만 아니다. 모 대학교의료원 계열 간납업체의 경우 최근 재고 관리 책임을 공급업체에 떠넘기는 내용의 협약서를 강제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또 다른 간납업체는 소프트웨어를 공급하는 의료 인공지능(AI) 기업에 창고 이용료를 청구해 업계 빈축을 산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최근 22대 국회가 다시 나섰다. 김선민 조국혁신당 의원의 대표 발의로, 의료기기 유통구조 개선을 위한 의료기기법 개정안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상정을 기다리고 있다.
개정안에서는 ▲병원과 특수관계인의 간납사 소유 금지 ▲대금 지급 기한 명문화 ▲표준계약서 의무화 등을 담고 있다.
보건복지부와 공정거래위원회도 국회와 함께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할 때다. 입법에 앞서 간납업체와 공급업체간 협의 테이블만 만들 것이 아닌, 관련 실태 조사를 실시해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관련 테스크포스팀(TFT) 신설도 논의해야 한다.
간납업체의 불공정 거래 관행을 끊어야 필수 의료재료에 대한 국내 공급망 역시 안전해진다. 의약품 공급 중단 문제가 국내 원료의약품 산업 경쟁력 약화에서 비롯된 것처럼, 불공정 거래로 인한 국산 의료기기 산업 경쟁력 약화는 의료기기 공급 중단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의료기기 유통구조 개혁을 더 이상 뒤로 미룰 순 없다. 간납사의 순기능은 살리되 불공정한 관행은 반드시 끊어내야 한다. 불합리한 의료기기 유통 구조 장기화는 국민 건강권의 손실을 야기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