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파나뉴스 = 최성훈 기자] 프랑스는 고가 희귀질환 치료제에 대해 '포용'의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필요하다면 바로 투약한다"라는 게 프랑스 정부의 의료 접근 방식이다.

지난해 8월 비정형 용혈성 요독 증후군(aHUS) 치료제 접근성 문제를 다루고자 만난 프랑스 파리 네케르 병원 줄리엔 쥐베르 교수(aHUS 연구모임 공동의장)는 이를 '똘레랑스(Tolérance, 관용)'라 정의했다.

똘레랑스란 프랑스 사회의 핵심적인 가치관으로, 다양한 견해를 존중하며 타인을 배려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이 관용의 정신은 프랑스 국민들의 의료 시스템에도 스며들어 있다.

따라서 고가 희귀질환약에 대한 공공병원 내 환자 부담액은 0%다. 국민들이 보험료를 분담하는 데 동의하는데다, 고가 약제라도 환자 치료에 필요한 경우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는 사회적 합의가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반면 국내 고가 희귀질환 치료제들의 접근성 향상 문제는 늘 숙제로 남아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낮은 사전심사 승인율로 인해서다. 심평원은 연간 3억원 이상 고가 치료제는 약제 남용을 방지하고자 사전심사를 통해 급여 여부를 결정하지만, 의료현장에선 지나치게 깐깐한 심사로 실사용은 힘들다고 지적한다.

실제 비정형 용혈성 요독 증후군(aHUS) 치료제 '솔리리스'가 그렇다. 지난 10년간 aHUS에서 솔리리스 심사 승인율은 21.6%에 불과했다. 심평원이 정한 혈소판 수, 분열적혈구 유무, 헤모글로빈 수치, 신장 손상 여부 등 총 13가지 조건 중 4가지를 충족하면서도, 9가지 제외 기준에 해당되지 않아야 하는 복잡한 급여 기준을 충족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프랑스는 솔리리스의 임상적 유효성을 인정하고 제한 없이 투약을 허용한다. 이러한 접근은 치료 효과를 극대화했다. aHUS 치료제 솔리리스 도입 후 4년 만에 프랑스에서는 aHUS로 인한 투석 환자 비율이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신장 질환 치료제 역사상 전례 없는 성과로 평가된다.

쥐베르 교수는 급여 정책에 있어 프랑스 역시 변화의 과정을 거쳤다고 설명했다. 과거 프랑스는 경증질환에도 급여를 지원했으나, 현재는 경증질환 급여 비중을 줄이는 반면, 임상적 혜택이 입증된 약제에 집중하고 있다.

마침 국내서도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강중구 심평원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고가약의 건강보험 진입장벽을 낮추겠다"며 "비용효과성이 낮은 약제에 대해서는 별도 기금화를 추진하는 등 합리적 운영방안을 마련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임상적 혜택이 명확하다면, 고가 희귀질환약이라도 의료현장에서 신속히 쓰이는 날이 오길 기대한다. 관용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건강보험 체계는 환자 삶의 질을 높이고, 희귀질환 치료의 새로운 길을 열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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