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의료계에 따르면 최근 한 내과 전문의는 설명주의의무 위반 과실치사 소송에서 1·2심 실형을 선고받고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다.
사건은 2020년 5월 비만치료를 위한 위풍선 시술 환자가 제거를 요청해 응급내시경을 진행했지만 환자가 사망하며 발생했다. 이 전문의는 응급내시경을 준비하며 전화상으로 환자 금식 여부를 확인했지만, 실제 내시경을 시행하자 금식이 되지 않은 상황임을 확인해 즉각 중단했다. 그러나 환자는 회복 과정에서 구토하며 흡인이 발생해 CPR까지 진행됐고, 상급병원으로 전원 후 흡인성폐렴과 위천공 소견으로 사망했다.
결국 유가족은 민형사 소송을 걸며 재판이 진행됐고, 민사에선 60% 환자 과실과 일부 의사 과실이 인정돼 배상금을 지급했다.
그러나 형사 소송에선 금식 여부를 X-ray, CT 등으로 더 확인하지 않고 구두로만 확인해 사고가 발생했을 것이란 논리가 등장했고, 이 같은 과실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도 문제삼으며 집행유예 없는 의료과실치사 금고 1년 실형이 선고됐다. 해당 전문의는 1심에선 무죄를 주장하다 2심에선 인정하고 합의를 시도하며 불리한 위치에 놓인 상태로 판결을 기다리는 상황이다.
대한의사협회는 12일 입장문을 내고 이 같은 판결은 필수의료 죽이기 가속페달이라고 밝혔다. 음식물이 폐로 넘어가 발생한 흡인성 폐렴은 환자 사망 주원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내시경 의사에게 형사처벌을 선고했다는 이유다.
응급상황에서 이뤄지는 내시경 시술의 경우 신속한 문제해결이 우선인 만큼 환자 금식여부와 무관하게 진행하는 것이 치료 가이드라인을 따르는 것이라고도 지적했다. 전신마취 수술 역시 금식이 필요하지만, 응급수술의 경우엔 금식여부를 따지지 않는 것과 같다는 설명이다.
반복되는 논란을 해결하기 위해선 가이드라인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법원에 가지 말아야 할 사건이 법원 판결을 받게 되면서 판사는 '어떻게든' 판결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판사마다 감정마다 설명·주의 의무에 대한 해석과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이유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장은 미국 EMTALA와 같은 응급의료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EMTALA는 응급의료에 관련된 미국 법률이다. 환자에 대한 주의 의무를 사례별로 정했고, 이를 충분히 지켰을 땐 면책 근거로 작용된다는 설명이다.
실제 2015년 미국 응급의학 의사는 심한 복통을 호소하며 응급실을 찾은 환자에게 EMTALA에 따라 선별검사를 시행하고 혈액검사, CT 촬영 등을 진행한 결과 응급질환이 의심되지 않아 통증 조절 후 퇴원 조치했다. 환자는 다른 병원에서 복부 동맥류 파열로 사망해 유가족이 소송을 제기했으나, 책임을 면했다. EMTALA에 따라 선별검사 기록과 결과, 의학적 판단 근거를 문서화한 덕분이다.
2012년 미국 응급의학 의사는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은 환자가 중소병원 응급실로 이송되자 EMTALA 이송 규정을 준수해 즉시 대형 트라우마 센터로 이송했다. 이송 중 환자가 사망하자 유족은 소송을 제기했으나, 의사와 병원은 책임을 지지 않았다. EMTALA 규정에 따라 즉각적 안정화 조치 후 더 나은 치료가 가능한 기관으로 안전하게 전원했다는 점이 인정되면서다.
이 회장에 따르면 미국이 EMTALA를 구체화하기까진 20~25년 정도가 소요됐다. 이미 15년 전부터 이 회장은 한국형 가이드라인 필요성을 보건복지부에 건의하고 있지만, 방향에만 동의한 채 의지와 동력은 없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이 회장은 "복지부에 EMTALA를 15년간 15번 이상은 건의했다. 미국은 구체화까지 20~25년 정도가 걸렸는데, 복지부는 그 정도 장기적 안목을 갖고 일할 의지가 없어 보인다"면서 "이제는 EMTALA와 같은 가이드라인을 만들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