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정부가 비급여 의료 이용을 줄이기 위해 추진 중인 '5세대 실손보험' 도입을 앞두고, 의료계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올해 하반기 제도 시행이 예고된 가운데, '비급여까지 국가가 통제하려 한다'는 우려가 의료현장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국회입법조사처가 최근 발표한 '5세대 실손보험과 소비자 보호를 위한 제언' 보고서는 실손보험 재정 악화의 원인을 비급여 항목에서 찾고, 과잉진료 억제를 위한 구조 개편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보고서는 제도 설계 방향과 함께 소비자 보호 장치 마련, 기존 가입자 전환 유도 방안 등 현실적인 과제들도 제시하며 실손보험 개편 논의에 힘을 보탰다.
2023년 기준 실손보험 보험료 수익은 14.4조 원에 달했지만, 손해율은 103.4%까지 상승해 보험금 지급액이 수입을 초과했다. 특히 3세대 실손보험의 손해율은 154.7%로, 실손보험 상품 전체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상황이다.
국회입법조사처 장영진 금융공정거래팀 입법조사관은 "2023년 전체 지급 보험금 중 약 31%가 상위 10대 비급여 항목에 집중돼 있으며, 이로 인해 실손보험 재정이 악화되고 있다"며 "우수 의료 인력의 비중증 비급여 진료 쏠림 현상도 심화될 우려가 있다"고 분석했다.
5세대 실손보험은 과잉진료 우려가 큰 비급여 항목을 '관리급여'로 분류해 본인부담률을 최대 95%까지 적용하고, 고위험 비중증 항목에 대한 보장률은 낮추는 대신 중증 비급여 항목은 보장 수준을 유지하는 방향이다.
또한 비급여 항목에 대한 명칭 및 코드 표준화 작업을 추진하고, '비급여통합포털'을 구축해 항목별 가격과 진료비 정보를 국민에게 공개한다는 계획이다.
상품 구조 측면에서도 변화가 예고된다. 5세대 실손보험은 ▲중증 비급여 ▲비중증 비급여를 구분하고, 각 항목의 손해율에 따라 보험료를 조정하는 방식이다. 비중증 항목은 자기부담률 인상 및 보장 한도 축소가 적용되며, 중증 항목은 기존 보장 수준을 유지하면서 상급종합병원 입원 시 연간 자기부담 한도 500만 원을 신설한다.
보고서는 소비자에게 자기부담률 인상과 보장 축소가 실질적인 불이익으로 인식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보험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고려할 때 일정 수준의 보장 축소는 불가피하다는 시각도 함께 제시했다. 아울러 실손보험 청구 데이터를 기반으로 이상청구 의료기관을 모니터링하고, 필요 시 조사와 제재를 병행하는 방안도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한편 보고서는 2021년 출시된 4세대 실손보험의 전환 실패 사례를 언급하며, 소비자 유인을 위한 인센티브가 제도 정착에 필수적이라고 지적했다. 당시 전환율은 2.07%에 불과했으며, 보험료 할인 등의 조치에도 가입자 반응은 미미했다.
정부는 1‧2세대 실손보험 가입자(전체의 약 44%)를 대상으로는 약관 변경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해, '계약 재매입'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재매입은 기존 계약을 종료하고 새로운 조건의 계약으로 전환하는 방식으로, 2025년 하반기 구체적인 안이 발표될 예정이다.
장 조사관은 "전환 유인을 강화하지 않으면 소비자의 선택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며 "초기 가입자 보호와 함께 보험료 할인 등 실질적 인센티브가 병행돼야 제도 정착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정부의 실손보험 개편 방안이 발표된 이후 의료계는 "건보 급여 틀 밖에서 자율적으로 선택하던 비급여 진료까지 통제하려는 시도"라며 비판하고 있다.
정부는 향후 비급여 통제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실태조사 및 정보 공개 확대에 집중할 방침이다. 장 조사관은 "비급여 표준화 정책이 실효를 거두기 위해선 항목별 이용량과 진료비용에 대한 철저한 실태조사가 선행돼야 한다. 소비자가 유리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정보 비대칭을 해소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