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상급종합병원 응급실에서 외래 진료가 예약됐지만 절반 이상이 진료로 이어지지 않는 '예약 부도(no-show)'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이는 응급실 진료 이후 후속 외래가 병원 주도로 자동 예약되는 시스템적 관행과 맞물려, 환자 입장에선 진료 목적과 필요성을 충분히 인지하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정해진 일정으로 받아들이는 구조적 한계가 작용한 결과다.

의료진이 환자의 상태를 고려해 후속 진료를 계획해도 상당수 환자가 내원하지 않으면서 진료 연속성은 끊기고 의료 자원은 공허하게 낭비되고 있는 것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학술지에 실린 '상급종합병원 응급실에서 진료 후 예약된 외래의 예약 부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연구에 따르면, 서울의 한 상급종합병원 응급실에서 2019년 한 해 동안 진료 후 퇴원한 환자에게 이뤄진 외래 예약 1만751건 가운데 예약 이행률은 43.6%에 불과했고 부도율은 56.4%에 달했다.

특히 예약까지의 대기 기간이 길어질수록 부도율은 눈에 띄게 상승했다. 대기일이 1주 미만일 경우 부도율은 51%였지만, 3~4주 대기 시 84%, 4주 이상일 경우에도 79%로 나타났다. 환자가 예약을 잊거나 진료의 중요도를 낮게 인식하는 경향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응급실 기반 외래 예약은 일반 외래와 달리, 환자가 자발적으로 일정을 잡는 것이 아니라 의료진의 판단에 따라 후속 진료를 계획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이러한 예약이 환자에게 '강제된 일정'처럼 인식되면서 심리적 저항이나 무관심으로 이어지고, 결국 이행률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된다는 점이다.

실제 예약을 담당한 의료진의 직위나 진료과에 따라서도 이행률에는 차이가 뚜렷했다. 전문의가 예약한 경우 부도율은 46.5%였지만 전공의는 60.5%, 전임의는 63.2%로 더 높았다. 협진 진료를 통해 예약된 경우 부도율은 51.2%, 응급의학과에서 직접 예약한 경우는 56.9%였다. 환자들이 진료 권위나 신뢰도에 따라 후속 진료의 중요성을 다르게 받아들였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환자의 질병 심각도나 명확한 진단 여부 역시 예약 이행에 영향을 줬다. 단순 검사만으로 예약이 이뤄졌을 경우, 환자가 진료 필요성을 명확히 인지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단순 검사를 바탕으로 외래 진료를 예약하는 경우 환자에게 명확한 진단 유무, 후속 검사 필요성 등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예약의 목적과 중요성을 강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러한 예약 부도 문제는 병원 차원의 손실을 넘어서 의료전달체계 전반의 왜곡으로 이어지고 있다. 경증 환자 중심으로 외래 일정이 채워진 뒤 결국 진료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정작 진료가 시급한 중증 환자는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는 구조적 문제가 나타난다. 병원 입장에서는 비워둔 일정에도 불구하고 대체 진료를 하지 못해 진료 기회는 낭비되고, 환자는 치료 공백을 겪게 된다.

이에 따라 의료계는 응급실 기반 외래 예약 시스템의 전면적인 손질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증상 호전 가능성이 높은 경증 환자에게까지 일률적으로 외래를 예약하기보다는 재내원 안내나 전화 모니터링 등 유연한 대응이 더 적절하다는 제안이 제기된다.

예약 이행률을 끌어올리기 위한 실질적인 개선책도 논의되고 있다. 예약 일정이 임박했을 때 알림을 강화하고 문자 재확인 시스템을 도입하며, 전담 코디네이터를 운영하는 방식이 그 예다. 경증 환자의 경우 예약을 자동으로 취소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방안도 거론됐다.

아울러 외래 예약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전문의 중심의 예약 체계를 강화하고, 환자가 예약을 명시적으로 수용하는 '동의 기반 예약제' 도입도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현재처럼 의료진이 일방적으로 예약을 잡는 방식은 환자의 무관심과 부도를 유발할 수밖에 없다"며 "진료 연속성 강화를 위해선 시스템 설계 단계부터 환자의 참여를 유도하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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