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오후 6시 30분, 대한의사협회 이태연 부회장은 서울 용산구 의협 회관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국토부가 자보심의회 기능을 사실상 무력화하려는 시도를 보이고 있다"며 "위원장은 반드시 의료 전문가 중에서 선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보심의회는 자동차보험 진료수가와 관련한 의료기관과 보험업계 간 분쟁을 심의·조정하는 기구다. 건강보험 영역의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와 유사한 기능을 수행하며, 의료 행위에 대한 객관적 판단과 수가 결정에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다.
이러한 역할의 특성상 위원장은 그동안 의료인이 맡아왔으며, 이는 1999년 자보심의회 설립 당시부터 이어져온 원칙이자 2018년 의료계와 국토부가 합의한 내용이기도 하다.
그런데 지난 2월 20일 열린 제248회 자보심의회에서 국토부는 제13기 심의회 구성을 추진하며 비의료계 공익위원을 위원장으로 선출하려 했다. 이후 위원장 선출은 파행을 거듭했고, 지난주 개최된 제250회 회의에서도 결국 결론을 내지 못한 채 무산됐다.
이 부회장은 "복잡하고 전문적인 의료 행위와 수가에 대한 판단은 의료 전문가가 아니고서는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며 "비의료인이 위원장을 맡게 된다면 자보심의회는 존재 이유를 상실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의협은 자보심의회 위원장 문제에 이어, 국토부가 사무국 운영을 자동차손해배상진흥원에 위탁하려는 방침에도 강한 우려를 표했다.
이 부회장은 "자보심의회는 의료기관과 보험회사 간 분쟁을 중립적으로 조정하는 기구로, 전문성과 독립성이 핵심"이라며 "보험사와 자동차공제조합의 이해가 집중된 단체인 진흥원에 사무국을 맡긴다면 심의회의 공정성이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자동차손해배상진흥원은 손해액 산정 등 이미 결론이 난 사안을 계산하는 업무를 주로 담당하고 있어, 전문적인 의료 행위와 수가 분쟁을 다루는 조정기관의 역할과는 성격이 다르다.
국토부가 진흥원 위탁의 이유로 '심의 지연'을 언급한 데 대해 의협은 책임 전가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그간 심사위원 증원을 지속적으로 요청해왔음에도 국토부와 보험업계가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이 부회장은 "예산을 들여 위원을 충원하고 심사 여력을 확대해달라고 수차례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연의 원인은 인력 부족인데, 이를 외부 위탁의 명분으로 삼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의협은 자보심의회 운영의 본질은 보험업계와 의료계 간 균형 속에서 형성된 신뢰라고 분명히 했다. 그러나 의료계가 배제된 구조에서는 자보심의회에 대한 신뢰도, 의료계의 참여 이유도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의협의 입장이다.
의협은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될 경우, 의료계가 자보심의회에서 전면 탈퇴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자보심의회는 의료기관과 보험회사가 비용을 부담해 재심사를 신청하는 구조로 운영된다. 정부의 지원 없이도 의료계가 자발적으로 참여해 온 만큼, 의료계 의견을 배제할 수 있는 위원장이 선출된다면 더는 참여할 이유가 없다는 설명이다.
김휼 의무이사(겸 보험이사)는 "심의위원회는 어디까지나 중립성을 지켜야 하는 기구이며 의사는 환자 치료와 중립성을 지키려는 입장에서 참여해왔다. 이러한 원칙이 무너진다면 의협은 분심의 탈퇴까지도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만약 의협이 자보심의회를 탈퇴하게 되면 그 여파도 상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부회장은 "의협 등 의료인이 탈퇴하게 되면 의료계 없이 심의위원회를 운영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보험사 권리만 보장되는 구조라면 자보심의회의 존립 이유가 없다. 이렇게 되면 보험계도 타격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한정형외과의사회 김형규 수석부회장도 "비의료인이 위원장을 맡게 된다면 의료인은 과감히 탈퇴할 수밖에 없다"며 "그에 따른 혼란과 책임은 신중하지 못한 결정을 내린 국토부가 감당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