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응급환자가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치료받지 못하는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는 단순한 혼선이 아닌 구조적 문제다.
의료자원의 한계와 책임 구조의 부재 속에 환자는 떠돌고 의사는 떠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응급환자 수용을 거부하지 못하게 하는 법제화' 추진 움직임이 계속되자 응급의학계는 강한 불편함을 드러냈다. "문제는 분명한데, 해결 방식은 틀렸다"는 반응이다.
'응급실 뺑뺑이'의 원인은 명확하다. ▲중환자실·입원 병상·수술실 포화 ▲전문의 부재 ▲과잉 책임 우려에 따른 기피 ▲과로 누적 등으로 인해 의료기관은 현실적으로 수용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응급의학계는 이에 대해 오랫동안 인프라 확대와 구조적 개선을 요구해왔다.
그러나 최근 추진되는 입법 방향은 응급의료기관이 환자 수용을 거부할 수 없도록 법으로 강제하고, 그 책임을 의료진에게 지우는 방식이다.
이 때문에 현장의 반발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전라남도 내 한 응급의료센터에서 근무 중인 A전문의는 "우리나라 응급의료 정책은 갈수록 포퓰리즘으로 흐르고 있다"며 "정책이 나올 때마다 전문가 의견이 반영되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지역별 이송 지침을 강제 적용하면 지금 남아 있는 의사들이 그걸 감당할 수 있는지부터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선 병원 의료진은 응급환자 수용을 거부하는 일이 '편의를 위한 결정'이 아니라, 진료가 불가능한 조건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2차 병원에서 근무하는 B전문의는 "환자를 수용하지 못하는 건 병상이 없거나 수술·입원이 불가능한 상황이기 때문"이라며 "강제로 수용하면 뺑뺑이는 줄어들 수 있겠지만 그것이 진짜 환자를 살리는 방식은 아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법안이 시행될 경우 응급실을 떠나겠다는 의사들이 속출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도 응급의학과 지원율은 줄곧 하락 중이며, 일부 병원은 당직 인력조차 확보하지 못해 응급실 운영을 포기하고 있다.
응급의료계는 반복해서 '법적 보호장치'의 부재를 지적해왔다. 환자를 무조건 수용하라는 지침은 결과 중심의 책임 구조로 이어지고, 이는 의료인을 법적 위험에 노출시킨다.
C대학병원 응급의는 "환자를 무조건 수용해야 할 때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의사는 범법자가 된다. 응급실 수용은 현장의 미묘한 판단에 따른다. 이를 일률적으로 법으로 강제하는 건 절대 좋은 방향이 아니다"고 비판했다.
의료계는 '의사가 이기적이다'는 단편적 시선 대신, 왜 현장을 떠날 수밖에 없는지를 먼저 봐야 한다고 호소한다.
A전문의 역시 "응급의들은 긴 근무시간, 체력 부담뿐 아니라 언제든 법적 책임을 질 수 있다는 압박 속에서 일한다"며 "최선을 다한 처치에 대해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응급의료 개혁을 말할 때마다 반복되는 목소리는 하나다. "정책은 책상에서가 아니라 현장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
A전문의는 "응급실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하면서 정작 현장과는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정책을 결정하는 현실이 더 답답하다"며 "실효성 없는 강제조치보다, 왜 의사들이 떠나는지부터 진지하게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