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전공의들은 '전문직 의사'라는 이유로 노동자로서의 권익 논의에서 배제돼 왔다. 그러나 주당 100시간을 넘는 노동시간, 모성 보호조차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근무환경, 사법 리스크와 환자 안전 사이에서 매일같이 갈등해야 하는 구조 등 현실은 달랐다.
'의사=고소득 전문직'이라는 사회적 인식과, 병원 속 전공의가 겪는 처지는 괴리감이 클 수밖에 없었다. 노조 출범은 바로 그 괴리를 메우려는 시도였다.
출범식 무대에 선 전공의들은 "노동인권 보장이 곧 환자 안전"임을 분명히 했다. 과로사로 스러진 동료의 죽음, 여전히 이어지는 100시간 근무, 솜방망이에 그치는 법제도를 비판하며 이들은 더 이상 개인의 희생으로 버티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신고센터 설치, 실태조사, 전공의법 개정 추진 등 구체적 계획도 함께 내놨다. 이는 단순한 권리 요구가 아니라 의료의 안전망을 바로 세우려는 제안이었다.
이날 축사를 맡은 개혁신당 이주영 의원의 발언은 현장 분위기와 맞닿으면서도 또 다른 울림을 줬다.
그는 전공의 시절 주당 140시간 당직, 임신 중 당직 근무, 코로나 팬데믹 당시 한파 속 야외 컨테이너 근무 경험을 털어놓으며 "여러분이 어떤 한계를 느끼는지 가장 잘 안다"고 말했다.
동시에 "여러분은 오늘 노동자로 규정됐지만 전문가로서의 탁월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라고 당부했다. 노동자의 권익은 중요하지만, 의사가 사회로부터 존중받는 이유는 결국 '그 순간 환자 앞에 선 최고의 전문가'이기 때문이라는 지적이었다.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는 일과 전문가로서의 탁월함을 유지하는 일은 때로 충돌할 수 있다. 하지만 두 가지 모두가 뒷받침돼야 환자 안전이 지켜진다. 권익이 보장되지 않으면 전문성은 오래 유지될 수 없고, 전문성 없는 권리 요구 역시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이주영 의원이 말한 '아레테(탁월성)'는 바로 이 균형을 잃지 말라는 조언이었다.
전공의노조 출범은 우리 사회가 답해야 할 질문을 던진다. 전공의들을 단순히 젊은 노동자로만 바라볼 것인가, 아니면 미래의 전문가로 성장할 조건을 보장할 것인가. 그 답은 곧 한국 의료의 생존과 직결된다.
전공의노조도 균형을 잘 잡아야 한다.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지키면서도 전문가로서의 탁월함을 놓치지 않는 일, 두 과제를 동시에 짊어진 길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 균형을 지켜낼 때 전공의노조의 설립 취지가 빛날 것이다. 노동조합은 권리를 위한 도구이자, 더 나은 의사가 되기 위한 발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