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크기 설정
기사의 본문 내용은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MRI 설치 기준을 둘러싼 '200병상 규정'은 의료현장을 왜곡시키고, 실손보험의 입원 적정성 논란은 의료계와 보험계의 갈등을 키워왔다.
의사회는 두 문제의 공통점을 '현장의 논리가 반영되지 않은 제도'로 보고, 의료계 스스로 해법을 만들어가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현재 MRI는 200병상 이상을 보유한 의료기관만 운영할 수 있다. 이 규정은 대형병원에 유리하게 작용하면서 중소병원의 설비 운영을 제한하고 있다. 이러한 제도적 한계는 의료현장의 구조적 불균형으로 이어지고 있다.
고도일 회장은 "MRI를 설치하려면 200병상 이상이 필요하다. 서울과 경기권뿐 아니라 대부분의 병원은 이 기준을 맞추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병원들은 기준을 맞추기 위해 인근 의료기관의 병상을 빌려오는 '공동활용병상제'를 이용하고 있다.
하지만 만약 130병상 병원이 70병상을 빌려 MRI를 운영했는데, 병상을 빌려준 병원이 문을 닫으면 촬영이 불가능해진다.
고 회장은 "십수 년간 운영해온 장비를 하루아침에 멈춰야 하는 게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게다가 공동활용병상제는 본래 병상 자원의 효율적 활용을 위한 제도였지만, 현실에서는 병상 거래의 수단으로 변질됐다. 의료기관 간 병상을 사고파는 관행이 생기며, 한 병상당 거래 금액이 300만원까지 치솟았다.
보건복지부는 병상 기준을 150병상으로 완화하는 방안을 논의했지만 전공의 사직 사태로 논의가 중단됐다. 이처럼 병상 기준 문제는 단순한 행정 요건을 넘어 의료 접근성과 지역 균형 문제로 확장되고 있다.
의사회는 "현장의 실태를 반영하지 못한 규제는 결국 환자 불편으로 돌아온다"고 지적했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실손보험의 입원 적정성 문제도 집중 논의됐다. 보험사와 의료계의 판단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환자가 부당한 피해를 입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고 회장은 "보험회사는 경제성 논리로 입원을 불인정하지만, 환자는 아파서 입원한 것"이라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비용 효율성을 기준으로 삭감하기 때문에 형평성이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대한의사협회가 실손보험 대책위원회를 중심으로 협력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 구조는 회원 민원을 객관적으로 검증해 보험사와 의료계 간 갈등을 줄이려는 취지다.
고 회장은 "의협이 회원 민원을 수집하고, 학회의 객관적 판단을 거쳐 보험사와 공유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의료계는 이 시스템을 통해 각 학회의 전문성이 신뢰의 기준이 되길 기대하고 있다.
고 회장은 "각 학회가 의견을 내면 보험사와 의사 모두 이를 따르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객관적인 기준이 마련되고 환자도 납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입원 적정성 판단의 실무 기준은 이미 학회를 중심으로 정비되고 있다.
지규열 총무위원장은 "실손보험의 핵심은 입원 적정성이다. 보험사는 시술이나 처치 목적만 인정하지만 실제로는 통증이나 신경학적 이상으로 입원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학회는 회원들에게 기준안을 공지하고 교육까지 마쳤다. 진료 근거가 명확하면 정당한 입원은 보호받을 수 있고, 무분별한 시술과 입원은 학회가 제재해야 한다. 환자 피해를 줄이기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의료계 내부에서는 제도 정착을 위해 자율 정화가 필수라는 인식도 나온다.
고 회장은 "보험회사와 얘기하다 보면 일부 도덕적 해이도 보인다. 의료계가 스스로 정화해야 한다"며 "의협이 회원 민원을 학회에 전달하고, 학회가 판단을 내리면 그 결과에 따르는 구조가 정착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구조는 의료계와 보험계가 신뢰를 회복하는 출발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고 회장은 "이 시스템이 정착되면 환자는 정당한 보상을 받고, 병원은 합당한 진료비를 받을 수 있으며, 보험사는 재정 낭비를 막을 수 있다. 결국 모두에게 이익"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방식이 입원 적정성뿐 아니라 실손보험 전반의 기준으로 확장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으뜸 기자
acepark@medipana.com
관련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