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소아청소년병원협회 최용재 회장, 이홍준 부회장. 사진=박으뜸 기자
대한소아청소년병원협회 최용재 회장, 이홍준 부회장. 사진=박으뜸 기자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달빛어린이병원을 '기능 중심'으로 재편해 1형(의원형)과 2형(병원형)으로 구분해야 한다는 요구가 의료현장에서 거세지고 있다.

현재의 운영시간 중심 지정체계는 실제 소아응급·고난이도 진료 역량을 갖춘 병원들을 제도권 밖으로 밀어내고 있다. 야간·휴일 진료의 핵심축을 맡는 소아청소년병원들은 상시 대기비용(standby cost)조차 보전받지 못한 채 책임만 떠안는 구조가 고착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여기에 상급병원 전원 지연은 반복되고, 수도권·비수도권 간 격차까지 심화되고 있다.

대한소아청소년병원협회는 15일 용산 드래곤시티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회원병원 52곳이 참여한 '달빛어린이병원·소아진료 지역협력체계 시범사업'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소청병협은 소아의료체계 정상화와 내실화를 위해 달빛어린이병원의 기능 중심 재편과 소아진료 지역협력체계의 본사업화를 공식 요청했다.

설문 결과는 현장의 구조적 문제를 그대로 드러냈다. 달빛어린이병원으로 지정받지 않은 25곳 중 17곳(68%)은 실제로 야간 진료·검사·수액치료·입원·응급대응 등 달빛어린이병원 기능을 수행하고 있었다.

달빛어린이병원 기준을 '운영시간'에서 '기능'으로 바꿔야 한다는 의견도 분명했다.

고난이도 검사·입원·응급대응이 가능한 병원을 달빛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응답은 '매우 그렇다' 52%(27곳), '그렇다' 29%(15곳)로 집계됐다. 운영시간 중심 평가가 이러한 기관을 불리하게 만든다는 응답도 48%에 달했다.

최용재 회장은 "수도권에서는 이제 양적 확대가 아니라 고난이도 진료 역량을 갖춘 병원을 중심으로 재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고난이도 진료를 담당하려면 의료기사·임상병리사·방사선사·간호사·의사·간호조무사·원무까지 최소 6~7명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며 "모두 숙련 인력인 만큼 운영시간 기준 수가로는 인건비를 감당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야간 진료와 검사·입원이 가능한 소아청소년병원이 운영시간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지원을 받지 못하는 상황도 문제가 됐다. 관련 응답은 '매우 그렇다' 46%(24곳), '그렇다' 31%(16곳)로 총 77%였다.

특히 달빛어린이병원 수가가 상시 대기비용을 보전하고 있는지의 응답은 '전혀 아니다' 56%(29곳), '아니다' 33%(17곳) 등 89%로 절대적이었다.

최 회장에 따르면, 한 소아청소년병원은 고난이도 소아진료를 지속해왔으나 운영시간 중심 평가로 달빛어린이병원 지정에서 탈락하면서 응급과 입원 진료를 줄일 수밖에 없었다. 또 수도권의 한 진료협력거점병원은 검사와 입원이 모두 가능한 구조임에도 상시 대기비용이 보전되지 않아 오히려 손실을 보고 있다.

최 회장은 "일부 2차 병원은 비소청과 기반 응급실 실적만으로 응급 수가와 달빛어린이병원 진료가산을 선택 수령하고 있으며 소청과 전문의가 상시 부재한 진료에서도 보상을 받고 있다"며 "소아전문진료기능이 없는 기관이 보상을 받고 실제 야간 진료를 수행하는 병원은 역차별을 겪는 구조"라고 비판했다.

달빛어린이병원을 1형(의원형)·2형(병원형)으로 구분하는 개편안에 대해서는 '매우 동의한다' 50%(26곳), '동의한다' 31%(16곳) 등 81%가 지지를 표했다.

1형은 경증 외래와 신속 전원을 담당하고, 2형은 검사·입원·응급대응까지 가능한 구조다. 협회는 2형에 상시 대기비용과 전문의 가산을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아의료 진료협력체계 네트워크 시범사업에 대한 평가는 효과와 한계가 동시에 제기됐다. 중등도 이상 환자의 골든타임 확보는 '매우 그렇다' 38%(20곳), '그렇다' 40%(21곳)로 78%가 긍정적이었으나 전원 지연은 상시 발생했다. 최근 1년간 전원 지연을 '매우 자주' 경험한 병원은 19%, '자주 경험' 42%, '가끔 경험' 27%였다.

개선책으로는 상급병원 수용능력 확대(75%), 회송·연계 수가 신설(67%), 전원체계 전산화와 지역 이송 컨트롤타워 구축(54%), 권역별 전원·이송 표준 매뉴얼 마련(48%)이 제안됐다. 소청과 전문의 인력 공백기에 소아청소년병원 인프라를 활용해야 한다는 응답도 88%로 높았다.

달빛어린이병원·시범사업 미참여 이유도 현실적이었다. 가장 큰 이유는 야간·휴일 인력 확보 어려움(42%)이었고, 이어 수가·상시 대기비용 미보전이 25%로 지목됐다. 이는 '의지가 없다'가 아니라 '참여가 불가능한 구조'임을 보여준다.

지역 격차는 또 다른 핵심 이슈였다. 이홍준 부회장은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는 복지부가 인구 기준으로 달빛어린이병원을 책정한 데서 비롯됐다"며 "수도권은 5㎞·10㎞마다 달빛기관이 있지만 강원·경북·산간 지역은 밤에 아픈 아이를 업고 50㎞를 이동해야 하는 곳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인구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면 수도권은 계속 늘어나지만 지방은 달빛을 갖추기 어려운 구조가 된다"며 "대학병원이 많아도 실제 소아응급실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곳이 상당하다"고 말했다.

따라서 최 회장은 지역 기반의 차별적 접근을 요구했다.

그는 "수도권에도 역량이 부족한 달빛기관이 있고 경북·강원은 달빛 자체가 없는 곳도 있다"며 "서울·경기는 기능이 있는 병원을 중심으로 개편하고, 지방은 달빛어린이병원을 확산할 수 있는 인센티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달빛 운영시간은 일반적으로 평일 오후 6시~밤 11시, 주말·공휴일 오전 9시~오후 6시로 정해져 있지만 지역사회 요구는 이보다 크다.

최 회장은 "부모들은 평일·주말 모두 최소 자정까지, 가능하면 24시간 운영되기를 원하지만 인력난으로 현실화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중증도 환자를 수용할 기반만 갖춰지고 병원이 상시 대기비용을 유지할 수 있다면 위중한 상황 대부분은 막을 수 있을 것"이라며 "그런 기능을 평가받고 인정받기를 바란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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