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전공의와 의료진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직후 공개된 포고령에서 '전공의를 비롯해 파업 중이거나 의료현장을 이탈한 의료인'으로 적시됐고, '위반시 계엄법에 의해 처단한다'고 명시된 데 대한 사과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비상계엄 이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포고령 내용은 정부 방침에 배치되며 동의할 수 없다고 해명한 바 있지만, 이주호 사회부총리(교육부 장관)와 조규홍 복지부 장관이 직접 고개 숙여 사과한 것은 처음이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도 같은 날 국무회의에서 전공의와 의대생을 향해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이라고 사과의 뜻을 표명했다.
책임자 사과는 의료계가 요구하던 대목이다. 정부 사과는 정책 또는 추진과정에 문제가 있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근거가 된다는 점에서, 사태 해결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란 의미로 풀이된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과 이주호 사회부총리, 조규홍 장관까지 국가서열로 봐도 책임과 권한으로 봐도 부족함이 없는 사과고, 일견 전향적이기도 하다.
의대정원 증원과 관련해서도 한발 물러난 입장이 나왔다. 그동안은 2025년 증원은 불가침 영역이며, 2026년 증원은 제로 베이스에서 논의할 수 있다는 정도였다. 이날 정부가 발표한 입장에는 '의료인력 수급 전망, 대다수 학생이 지난해 수업에 참여하지 못한 점, 현장 교육여건까지 감안한다'는 설명이 추가됐다.
책임자 사과에 더해 의대정원과 관련해서도 한발 물러난 입장까지 받아낸 의료계 반응은 어떨까.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싸늘하다. '한두 번 속냐'는 반응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정부 사과는 교묘하지만 피상적이다. 이주호 부총리와 조규홍 장관이 고개를 숙이며 사과한 발표문만 봐도 그렇다. 미안하단 말은 여러 차례 들어갔지만, 의료계가 문제를 지적하며 반발하는, 그 사이 환자들은 피해를 입고 있는 의대정원 증원을 비롯한 의료개혁에는 잘못이 없다. 단지 포고령에 대해 사과하고, 어려움 속에서도 헌신하는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인, 교육현장 교수 등에게 감사하고 있을 뿐이다.
이 부총리는 전공의와 의대생에게도 각각 미안한 마음을 전했지만, 역시나 의료개혁엔 잘못이 없다. 그저 의료개혁 과정에 끼어 '현장을 떠난 여러분'에게 미안할 뿐이다. 그러면서 앞으로 수련환경 개선 등 필요한 부분에 정부 재정투자를 추진하겠다며 복귀를 호소하고 있다.
반면 의료개혁은 뚜벅뚜벅 목표를 향해 걷고 있다. 복지부는 지난 10일 업무보고를 통해 비대면진료 제도화 의지를 드러냈다. 만성질환 관리 정도엔 의료계에서도 이점을 인정하기도 하지만, 정부는 접근성 확대 측면에서 접근하는 모습이다. 지난 9일엔 '비급여 관리 개선 및 실손보험 개혁방안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의료계에서 민감한 사안이지만, 이날 발표된 방향은 의료계가 없는 의료개혁특별위원회에서 논의된 내용이다.
정부 브리핑을 비롯한 행보를 보면 진심은 브리핑 도중 국민을 향해 '정부는 의료개혁을 착실히 추진해 나갈 것'이란 언급과 발표문 마지막에 담긴 '막중한 책임감을 갖고 한걸음 한걸음 진심을 다하겠다'는 문구에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란 평가다.
학창시절 주먹다짐한 친구 사이도 '때려서 미안해, 진심이 아니었어, 사이 좋게 지내자'란 피상적 사과 정도론 관계를 회복하지 못한다. 특히 덩치가 큰 친구가 다른 친구를 일방적으로 때렸을 땐 더욱 그렇다. 진심이 느껴지지 않을 땐 더더욱 그렇다.
정부 사과가 있던 날 저녁, 다급히 낸 논평으로 전공의 복귀와 의료 정상화 기대감을 나타낸 환자단체 입장문만 허망하게 남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