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파나뉴스 = 최인환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혜국 약가'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미국 제약산업이 '약가 인하'와 '보호무역 강화'라는 이중 압박에 직면하게 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12일(현지시간), 미국 내 처방약 가격을 다른 나라의 최저 가격 수준으로 인하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최혜국 약가'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지난달 저소득층 대상 약가 할인 정책에 이어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단행된 두 번째 조치다.
이번 행정명령은 '미국 환자에게 가장 선호되는 국가의 약가를 제공한다(Delivering Most-Favored-Nation Prescription Drug Pricing to American Patients)'는 취지 아래, 미국인과 납세자가 부담하는 약가를 다른 국가와 동일한 수준으로 낮추도록 규정하고 있다. 백악관은 이를 통해 미국 제약사들이 해외 시장에서의 할인 판매로 손해 본 수익을 자국 시장에서 메우는 현 구조를 바로잡겠다는 의지를 강조했다.
이와 함께 미국 상무부와 무역대표부(USTR)에는 외국 정부의 가격 통제 정책이 미국 시장 가격 왜곡을 유도하지 않도록 조사·대응토록 지시했다. 앞으로 30일 이내에 행정부는 제약사들에게 '최혜국 가격'을 통보하고, 미국 소비자들이 유통 중개인을 거치지 않고 제조사로부터 직접 약을 구매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할 예정이다.
제약사들이 이 조건을 수용하지 않을 경우, 보건복지부(HHS) 장관에게 ▲최혜국 가격 강제 규제 도입 ▲반경쟁적 유통 구조 해소 등 강경 조치 시행 권한도 부여됐다.
미국 제약업계는 즉각 반발했다. 미국제약협회(PhRMA)는 "이번 조치는 환자에게 불리하며, 제약사들의 수천억 달러 투자를 위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로렌스 고스틴 조지타운대 보건법 교수는 "1차 임기 시도처럼 이번 조치도 법정 공방에 휘말릴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이번 조치는 단순히 미국 시장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미국이 글로벌 제약산업의 75% 매출을 차지하는 거대 시장인 만큼, 다국적 제약사들은 전략적 중심축을 미국으로 더 기울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낮은 약가로 유지돼온 한국을 포함한 OECD 국가들이 가격 인상 압박을 받을 여지도 높아졌다.
특히, 이번 조치에는 제약사-도매상(PBM)-보험사 간 유통망을 우회해 제조사가 직접 소비자에게 판매할 수 있는 'DTC(Direct-to-Consumer)' 모델이 포함돼 있어 미국 사보험 시장의 밸류체인에도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제약사의 마진 구조가 달라지고, 공급망에 참여한 기존 유통사의 입지 축소가 현실화될 수 있다.
바이오시밀러와 위탁개발생산(CDMO) 중심의 국내 기업들도 전략 수정이 불가피하다. 기존에는 '낮은 원가, 높은 수익률'을 바탕으로 미국 진출을 도모해왔지만, 약가 기준이 강제로 낮아질 경우 수익성 확보가 어려워질 수 있다. 동시에 미국 내 제조 활성화를 위한 관세 정책 강화도 병행되고 있어, 현지 생산 및 파트너십 확대 여부가 새로운 변수로 떠오를 전망이다.
한국바이오협회 바이오경제연구센터는 "최혜국 약가 정책이 국제 시장 전반에 가격 조정 압박을 야기할 수 있다"며 "세계 최대 의약품 시장인 미국을 진출하려는 우리 신약개발 기업뿐만 아니라 바이오시밀러, 위탁개발생산 기업 모두 약가 책정 및 현지화 전략에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고 전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