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파나뉴스 = 최인환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처방약 가격을 최대 80%까지 인하하겠다고 선언한 가운데,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국 시장 비중이 큰 주요 기업들은 정책 세부안이 나올 때까지 상황을 주시하면서도, 일부는 이미 중장기 전략을 마련하며 선제 대응에 나선 모습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1일(현지시간) 트루스소셜에 미국 내 처방약 및 의약품 가격 인하 계획을 발표하며, 12일 오전 9시(미국 동부시간 기준) 관련 행정명령에 서명할 뜻을 밝혔다. 해당 정책은 '최혜국 규정(Most Favored Nation Policy)'을 통해 미국이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의약품 가격을 적용받는 국가와 동일한 수준으로 약가를 조정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셀트리온은 이번 정책이 고가 오리지널 의약품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 자사 바이오시밀러 제품에는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셀트리온은 12일 주주 공지문을 통해 "바이오시밀러는 이미 미국 내에서 최저가 공급 체계를 기반으로 하고 있어 정책 영향이 제한적이며, 시장 확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유럽 시장에서 쌓은 저가 공급 경험을 바탕으로 미국 내 경쟁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다"면서 중장기적으로 미국 내 공급망 안정화를 위해 제품 비축, 현지 CMO 계약 등 대비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삼성바이오로직스와 SK바이오팜 등 미국 수출 비중이 높은 기업들은 아직 구체적인 대응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았고, SK바이오팜은 "세부 내용이 없는 상황에서 즉각적인 대응은 어렵다"며 "정책이 확정될 경우 대응책을 마련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GC녹십자도 미국에 면역글로불린 제제 '알리글로' 등을 수출하고 있어 영향을 배제하기 어렵다. 이에 GC녹십자 관계자는 "정책 추진 속도와 실현 가능성 등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유한양행은 기술수출을 통해 미국 시장에 진출한 제품으로 간접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얀센에 기술수출한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렉라자'는 미국 시장 매출에 따라 유한양행이 받는 로열티 수익이 결정되기 때문에, 가격 인하 정책이 실현될 경우 일부 손익에 영향이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약가 인하 정책 외에 트럼프 전 대통령은 수입 의약품에 대한 관세 부과 계획도 함께 추진 중이다. 미국은 한국 제약·바이오 산업의 최대 수출국으로, 이에 따라 삼성바이오로직스, 셀트리온, SK바이오팜 등이 이중 부담에 놓일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실제 셀트리온과 SK바이오팜은 이미 미국 내 재고 비축과 현지 CMO 생산 계약을 통해 관세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셀트리온은 "제품 15개월 분을 선이전했고, 향후 관세 지속 여부에 따라 추가 생산 계약도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SK바이오팜 역시 수년 전부터 미국 현지 생산 전략을 추진해 왔으며, FDA 승인도 미리 받아 놓은 상태다.
국내 업계 전반은 이번 트럼프 2기 행정부 정책 방향이 미국에서의 수익성 감소를 불러오고, 이는 다른 국가에서의 수익 보전 압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유럽과 함께 약가 기준이 낮은 한국 시장이 타깃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약 도입 지연, 제품 철수, 급여 협상 중단 등의 부작용이 우려된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메디파나뉴스와 통화에서 "트럼프발 정책의 실현 여부와 상관없이 국내 제약사와 보건당국 모두 글로벌 시장의 정책 변화에 대한 대응 전략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