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검진의학회 이창석 학술위원장, 국립암센터 양한광 원장,국립암센터 김열 대외협력실장, 검진의학회 김현승 총무부회장. 사진=박으뜸 기자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AI(인공지능)가 건강검진의 효율성과 정확성을 높이는 핵심 기술로 자리 잡고 있지만, 한국은 제도적 공백에 발목이 잡혀 있다. 해외 주요국들이 국가 차원의 지원을 통해 이미 임상 현장에 안착한 것과 달리, 국내는 여전히 시범사업 수준에 머물고 있어 격차가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AI는 단순히 판독의 편의성을 높이는 수준을 넘어, 축적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질환 발생 위험을 예측하고 환자 맞춤형 검진을 가능하게 한다. 이런 점에서 건강검진은 AI 기술이 가장 먼저 확산될 수 있는 분야로 꼽히지만, 한국은 '누가 비용을 부담할 것인가'라는 제도적 난관 앞에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대만 사례는 이런 차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대만 정부는 예산과 보험 제도를 뒷받침하고, 민간은 기술과 서비스를 혁신하면서 균형 있는 발전을 이루고 있다. 그 결과 AI 판독 지원과 개인 맞춤형 검진이 이미 상용화 단계에 도달했다.

8월 31일 SC컨벤션에서 열린 대한검진의학회 기자간담회에서 이창석 학술위원장은 "대만은 정부와 민간이 긴밀히 협력해 인공지능을 건강검진에 적극 도입하고 있지만, 한국은 개별 병원 노력에 의존해 시범사업 수준에 머물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제도적 보상체계가 부재해 현장 도입이 쉽지 않다. 유방암 맘모그래피, 폐 엑스레이, 폐 CT, 뇌 MRI 등 AI 판독 프로그램이 이미 존재하지만, 건강검진에 적용해도 비용을 인정받지 못한다. 결국 의료기관은 기술의 필요성을 알면서도 투자를 주저한다.

이 위원장은 "AI를 활용해도 판독료를 받을 수 없어 저 역시 도입을 취소했다"며 "국가가 일정 부분 지원한다면 도입 병원은 크게 늘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AI 검진이 단순한 신기술 도입이 아니라 한국 보건의료의 경쟁력을 좌우할 전략적 과제라고 평가했다. 국가검진 사업이 위암·대장암·유방암 등에서 세계 최저 수준의 사망률을 기록하며 성과를 보여왔듯, AI 역시 데이터 축적과 제도적 뒷받침이 있어야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립암센터 양한광 원장은 "위암·대장암·유방암 등에서 한국은 발생 대비 사망률이 세계 최저 수준일 정도로 성과를 냈지만, AI 맞춤형 검진을 위해서는 공단 검진뿐 아니라 비보험까지 빠짐없이 데이터가 누적돼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에 한국 기업들이 이미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국내에서는 수가 문제 때문에 기술이 사장되는 역설적 상황도 언급됐다.

국립암센터 김열 대외협력실장은 "AI 프로그램을 우리 한국 기업들이 세계적으로 선도하고 있다. 대만조차 한국 솔루션을 쓰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국내 기관은 수가가 없어 도입을 주저한다"고 말했다.

향후 전망에 대해서는 학문적·임상적 확산 가능성이 제시됐다. 학회 차원에서도 AI를 연구와 교육 프로그램에 본격 편입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대한검진의학회 김현승 총무부회장은 "앞으로 AI가 학회의 주요 프로그램에 포함될 것"이라며 "초음파, 엑스레이, 내시경 등 일부 부족한 판독 분야도 딥러닝 학습이 진행되면 새로운 판독 기준이 마련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간담회 참석자들은 "AI를 통해 데이터가 쌓여야 치료 접근성과 결과 개선에 기여한다"며, 국가 차원의 지원과 제도적 결단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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