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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회는 이번 방안이 20여 년간의 논의를 뒤집고 의료현장의 현실을 무시한 채 행정권력으로 일방 추진되는 조치라며, 의료계와의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비인후과의사회는 복지부가 의료계와의 약속을 지키고, 현실을 반영한 개선안을 마련하기 위한 논의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28일 의사회는 성명서를 통해 "검체검사 위·수탁 제도 개선은 환자 중심의 진료체계를 행정 중심으로 전락시키는 조치"라며 "정부가 의료계의 의견을 묵살하고 권력으로 제도를 강행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밝혔다.
의사회는 특히 분리청구 제도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했다. 검체검사는 환자 대신 검체가 이동하는 특수한 구조를 갖지만, 검체 채취·보관·결과 확인·설명 등 모든 과정이 환자를 직접 진료하는 의사의 책임 아래 이뤄진다.
그럼에도 정부는 위탁기관과 수탁기관의 청구권을 분리하려 하고 있으며, 이는 위탁기관의 의료적 역할을 단순 행정업무로 축소시킨 '탁상행정의 산물'이라고 지적했다.
의사회에 따르면 이 제도가 시행될 경우 환자가 두 기관에 각각 결제해야 하는 불편이 생기고, 개인정보 노출 위험이 높아지며, 비급여 항목 정산과 환불 절차가 복잡해진다.
또한 검사 결과에 대한 책임 소재가 불명확해져 의료분쟁 가능성이 커지고, 청구 시스템의 이중 관리로 착오와 지연까지 발생해 환자와 의료기관 모두 불필요한 혼란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의사회는 개선안이 필수의료 기반을 약화시키고, 지역의 일차의료를 붕괴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검체검사는 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 등 필수 진료의 출발점으로, 질환 진단과 치료 계획의 핵심적 단계라는 점을 언급했다.
하지만 이번 개선안이 의료계와의 조율 없이 시행되면, 의원급 의료기관은 행정 부담과 비용 손실로 인해 검체검사를 축소하거나 포기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이다. 그렇게 되면 환자들은 검사만을 위해 대형병원으로 몰리게 돼, 지역의 필수의료 체계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의사회는 "결국 의원급 의료기관이 필수진료 대신 다른 영역으로 이동하는 부작용이 생길 것"이라며 "이는 정부가 추진해온 필수의료 강화 정책과도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의사회는 정부가 스스로의 합의와 연구결과를 뒤집고 있다고 꼬집었다.
보건복지부는 2022년 '검체검사 위탁에 관한 기준' 고시 제정 당시 의료계와 협의체를 구성하고 충분한 협의를 거치겠다고 공식 문서로 합의한 바 있다.
나아가 복지부가 직접 발주한 2023년 연구용역 '검체검사 위·수탁 제도 개선방안 마련 연구'에서도 '현행체계 유지 및 공정거래 기준 보완'이 가장 합리적이라는 결론이 제시됐는데, 이러한 정책을 내놓은 것은 정책 일관성을 스스로 부정한 셈이라고 짚었다.
위탁검사관리료(10%) 폐지와 일률적 9:1 배분안에 대해서도 "비합리적 조치"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의사회는 "검체 채취 인력과 시간, 보관·관리비용, 결과 상담 등 전문적 노동의 가치를 고려하면 10%의 관리료조차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며 "이를 단순한 행정수수료로 치부하는 것은 진료과정의 본질을 왜곡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검체의 종류, 난이도, 환자 특성에 따라 위탁기관의 업무 비중은 달라지는데 이를 단일 비율로 고정하는 것은 현장의 다양성을 무시한 결정이라고 정리했다.
대한이비인후과의사회는 "검체검사의 질 관리와 공정한 수가체계 확립에는 공감하지만, 의료의 본질을 훼손하고 환자 안전을 위협하는 개선안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며 "정부는 의료계와의 약속을 저버린 일방 추진을 즉각 중단하고, 의정협의체를 통해 현실적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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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으뜸 기자
acepark@medip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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