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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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개원가에는 현재 전운이 돌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추진 중인 '검체검사 위·수탁 제도 개편'은 그간 의료현장에서 관행적으로 운영돼 온 검사 위탁 구조를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조치다. 

현행 보건복지부 고시는 이미 위탁기관(의원)에는 '위탁검사 관리료'를, 수탁기관(검사센터)에는 '검사료'를 분리해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의료 현장에서는 이러한 규정이 사문화된 채 위탁기관(내과 의원)이 위탁검사 관리료와 수탁기관 검사료를 모두 일괄 청구해 지급받은 후, 수탁기관과 '상호정산'하는 방식이 만연해왔다. 

정부와 대한진단검사의학회, 대한병리학회, 대한핵의학회 등 관련 학회는 이 '일괄청구·상호정산' 관행이 ▲검사료 할인 및 담합 등 불공정 계약 ▲과도한 가격경쟁 ▲이로 인한 검사 질 저하 및 환자 안전 위협 ▲보상 체계 왜곡 등의 문제를 초래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 '불공정 계약'의 핵심은 검사 의뢰라는 우월적 지위를 가진 위탁기관(의원)이 수탁기관(검사센터)으로부터 과도한 '할인'을 요구하는 관행이다. 이는 사실상 리베이트와 유사한 구조로 작동하며, 수탁기관은 수익성을 보전하기 위해 검사의 질을 낮출 수밖에 없는 환경을 조성한다는 것이 정부의 시각이다.

이에 복지부는 검사료 등과의 보상 중첩 문제가 제기되는 현행 '위탁검사관리료'를 폐지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 관리료는 기존 검체검사 수가의 10%를 위탁기관(의원)에 별도로 지급하던 항목이다. 

이어 복지부는 수십 년간 이어져 온 '일괄청구·상호정산' 관행을 공식적으로 금지하는 것도 대안으로 제시했다. 대신 기존 고시에 부합하도록 위탁기관과 수탁기관이 각각의 보상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분리'해 청구하고 '분리'해 지급받는 방식을 강제화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차의료계는 "이 제도가 현장을 붕괴시킬 것"이라며 강경하게 맞서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상황의 심각성을 받아들여 '범의료계 국민건강보호 대책특별위원회(범대위)'를 구성하고 11일 보건복지부 정부세종청사 앞에서 '검체검사 제도개편 강제화 전면 중단 촉구 대표자 궐기대회'를, 오는 16일 여의도 국회 앞에서는 '국민건강수호 및 의료악법 저지를 위한 전국의사 대표자 궐기대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각 직역과 지역 의사회들은 이번 제도가 행정 편의를 이유로 현장을 배제한 채 추진되고 있으며, 시행될 경우 일차의료기관의 검사 기능이 사실상 축소돼 환자 진료 흐름까지 흔들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절차 무시된 제도 추진에 일차의료계 강력 경고

개원가가 제시한 반대 사유는 크게 네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2024년 9월까지 위원을 추천해놓고도 정부가 '검체검사 위·수탁 제도개선 협의체'를 단 한 차례도 가동하지 않아 절차적 정당성을 스스로 무너뜨렸다는 점이다. 그 대신 수탁기관 중심의 '검체검사 수탁인증관리위원회'에서 분리청구 논의를 진행한 것은 당사자 합의 구조를 우회한 것이란 비판이다.

둘째, 분리청구로 일괄청구·상호정산 관행을 끊어버리면 내과·가정의학과·소아청소년과·산부인과 등 일차의료기관이 수행해온 필수검사 기능이 줄어들어 결국 일차의료 기반이 약화된다는 점이다.

셋째, 복지부가 2023년에 스스로 발주한 '검체검사 위·수탁 제도 개선방안' 연구는 "검체검사 수가를 일률적으로 분리하거나 비율을 조정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한계가 크며, 위탁·수탁 기관 간 자율 계약과 상호 정산을 유지해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다. 반면 이번 개편안은 그 결과와 다르게 설계돼 개원가는 의·정이 근거 기반으로 다시 협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넷째, 분리청구가 시행되면 다양한 부작용이 초래될 것이라는 우려다. 환자의 이중 결제와 불편 가중, 개인정보 노출 위험, 비급여 검사 정산의 혼선, 의료행위 주체의 책임 소재 불명확, 청구시스템 운영 혼선 등은 모두 국민의 필수의료 접근성을 떨어뜨릴 수 있는 요인으로 지목됐다.

무엇보다 대부분의 위탁검사 의뢰기관은 가정의학과, 내과,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등 필수의료를 담당하는 일차의료기관이다. 따라서 검체검사 보상체계의 변화는 의원의 경영 구조와 수익성에 가장 직접적이고 중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에 대한의사협회 김재연 법제이사는 의료계가 이 제도 개편을 놓고 왜 '재앙적 손실'이라고 반발하는지를 분석했다. 

김 법제이사는 "의원이 검사비를 일괄 청구하고 일부만 정산해 남기는 구조가 사라지면 청구금액이 아니라 수익 구조 자체가 무너진다"고 짚었다. 

그는 "정부는 위탁관리료 10%를 없애도 검사료를 9:1로 나누면 수익은 변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지만, 시뮬레이션 분석에 따르면 의원의 검사 수익은 건당 약 4000원 줄고 수탁기관의 수익은 3000원 늘어나는 구조"라며 "결국 1000억~6000억 원 규모의 자금이 일차의료에서 검사센터로 이동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김 법제이사는 이를 "단순한 수익 감소가 아니라 개원가에서 수탁기관으로 이동하는 거대한 부의 재분배"라고 지적하며 "필수의료의 저수가를 지탱해온 관행을 정부가 한순간에 없애버리면 일차의료기관은 수입 구조 자체가 무너질 수밖에 없다. 손실 규모가 6000억~7000억 원에 달하는 만큼, 이를 필수의료 수가 인상으로 보전하지 않으면 개원가의 지속가능한 경영은 불가능하다"고 내다봤다.

그는 "정부가 이런 구조적 손실을 고려하지 않은 채 제도를 밀어붙인다면, 결국 추가적인 건보재정 투입이 불가피해지고 건보재정 고갈을 앞당기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장에선 '채혈 관리료' 신설·단계적 시행 요구

의료계는 단순히 반대에 그치지 않고 대안도 제시하고 있다. 핵심은 사라지는 '관행적 할인 차액'을 대신해 의원이 실제 수행하는 의료행위에 합당한 보상을 마련하라는 것이다. 

김 법제이사는 "검체 채취, 보관, 관리, 결과 해석과 상담까지 모두 의료행위인데 이를 인정하지 않고 9:1 배분만 적용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며 '채혈 관리료' 신설을 요구했다. 

그는 "'관행적 할인 차액'을 없애는 대신, 채혈·검체 관리·결과 상담 등 실제 의료행위에 대한 합법적 수가를 신설해야 한다"며 "정부가 관련 단체와의 협의 없이 제도를 일방적으로 시행한다면 개원가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 개편안에 원칙적으로 찬성 입장을 보인 대한진단검사의학회조차 "검체 수거와 운송비용에 대한 별도 보상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는 '의원이 실제로 수행하는 의료행위에 대한 정당한 수가 신설' 필요성에는 의료계와 학계 모두 공감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 다른 쟁점은 '국가건강검진의 적용 범위'다. 의원의 검체검사 상당수가 건강검진에서 이뤄지는데, 이번 분리청구 정책에 건강검진 항목이 포함되는지 여부가 명확히 제시되지 않았다.

현재 건강검진은 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일괄 청구하는 별도 체계를 따르고 있어, 만약 이 영역까지 분리청구가 확대되면 청구 시스템 전반이 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김 법제이사는 이에 대해 "분리청구를 일시에 강행하기보다 범위를 명확히 하고 단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며 "특히 국가건강검진처럼 일차의료의 핵심 영역은 유예하거나 별도의 보상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정부가 필수의료 저수가를 보전할 방법 없이 관행만 없애면 6000억~7000억원의 손실이 발생하고 결국 건보재정 부담만 커질 것"이라며 "지금 필요한 것은 제도 백지화가 아니라, 합리적 대안을 마련해 연착륙을 도모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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