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가 보건복지부의 '검체검사 위·수탁 제도개편'을 강하게 비판했다.

겉으로는 검사 질 관리 강화를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의료현장의 현실을 외면한 채 일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것이다. 단체는 이번 개편이 일차의료기관의 붕괴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소청과의사회는 31일 성명서를 통해 "이번 고시는 위탁검사 관리기준을 정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위탁기관과 수탁기관의 정산·청구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꿔 의료기관의 행정적·법적 부담을 폭증시키는 내용"이라고 밝혔다.

검체검사는 감염병 대응, 만성질환 관리, 암 검진 등 국민 건강을 지탱하는 필수 인프라로, 내과·외과·소아청소년과·산부인과 등 국민이 일상적으로 찾는 1차 의료기관이 중심이다.

이러한 기관들이 검사를 위탁하는 구조는 진료 효율을 높이고 환자가 전국 어디서나 신속하게 검사를 받을 수 있게 만든 한국 의료시스템의 강점으로 꼽힌다.

복지부가 2023년 고려대학교 산학협력단에 의뢰한 연구용역 '검체검사 위·수탁 제도 개선방안 마련 연구'는 검사 수가 현실화, 자율 계약의 합리적 인정, 품질 및 인증체계 강화를 핵심 방향으로 제시했다.

연구는 검사 난이도, 자동화 수준, 채혈 과정, 진료과 특성 등을 고려할 때 일률적 비율 강제는 부적절하며, 위탁검사관리료가 과소 보상된 점을 구체적으로 지적했다.

그럼에도 복지부는 검사료 전액을 수탁기관에 지급하고 위탁기관에는 10%만 지급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소청과의사회는 "연구 결과의 불채택 사유를 밝히지 않은 채 행정 재량을 남용한 것으로, 절차적 투명성과 비례 원칙을 모두 훼손한 조치"라고 비판했다.

또한 복지부가 2024년 9월 구성한 '검체검사 위·수탁 제도개선 협의체'를 지금까지 한 번도 가동하지 않은 점도 꼬집었다. 의료계와의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정책을 강행한 것은 절차적 정당성을 잃은 행정이며, 세금으로 수행된 연구결과를 무시하고 원안을 밀어붙이는 행태는 납득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정부안이 그대로 시행되면 검사량이 많은 의료기관은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자체 검사실(In-house Lab)을 확충하겠지만, 검사량이 적은 의료기관은 불리한 구조 속에서 검사를 외주로 맡길 수밖에 없다.

소청과의사회는 "채혈이나 설명 난이도가 높은 소아청소년과와 같은 필수 진료과는 일괄적으로 위탁검사관리료 10%만 받게 되면 검사를 할수록 손해가 커지는 구조가 된다"며 "결국 필수의료 기능이 급속히 위축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복지부가 추진하는 위·수탁 분리청구(EDI) 역시 또 다른 행정 혼란을 야기한다는 의견이다.

의료계는 위탁기관과 수탁기관의 청구를 나누면 의료기관과 환자 불편이 늘고, 개인정보가 반복 전송되며 유출 위험도 커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급여·비급여를 구분하지 않은 동일 정산 방식의 계약 강제는 계약 자유 원칙을 침해하며, 검사 의뢰와 결과통보를 EDI 방식으로만 제한하고 사본 보존을 의무화한 조항도 과도하다고 언급됐다.

의사회는 "대부분의 의원급 의료기관과 지역 수탁기관은 이미 EMR 연동 체계를 통해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검사결과를 주고받고 있다"며 "이중 문서관리를 강제하면 행정 효율은 떨어지고, 오히려 오류와 지연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의사회는 우리나라 검체검사 체계는 1차 의료기관과 지역 수탁기관이 긴밀히 연결된 분산형 네트워크로, 검사 접근성과 신속성을 동시에 달성한 구조라고 정리했다. 이를 중앙집중형으로 바꾸려는 정부의 시도는 시대를 거스르는 선택이라고 판단했다.

소청과의사회는 "검사 질 관리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그 방식은 행정 규제가 아니라 자율과 품질관리 강화에 있다"며 "일본은 가격을 일률적으로 통제하지 않고 정보보호·교육·자격 기준·재위탁 절차 등 품질 중심의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도 가격 통제가 아닌 절차적·질적 관리체계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사회는 정부가 행정 편의가 아니라 환자와 현장을 중심에 둔 제도개선을 추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의사회는 "의정협의체의 조속한 가동과 연구 결과의 존중이야말로 신뢰 회복의 출발점"이라며 "검체검사 제도개편은 행정명령이 아닌 협의와 합리로 풀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2025 메디파나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