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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성형외과의 근본은 생명과 기능을 복원하는 '재건'에 있다. 사고나 종양 절제, 선천성 기형 등으로 손상된 신체를 복원하는 고난도 수술이 바로 성형외과의 출발점이자 본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건성형의 의학적 가치와 사회적 역할은 오랫동안 가려져 있었다. 의료기술이 세계적 수준으로 발전했지만 제도적 보상은 뒤따르지 못했고, 공공의료의 한 축임에도 정책은 여전히 '미용 중심'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 같은 현실 속에서 대한성형외과학회가 '재건'의 가치를 공론의 장으로 끌어올렸다.
11일 열린 'PRS KOREA 2025' 기자간담회에서 학회 임원진들은 미용과 재건을 모두 포괄하는 성형외과의 전문성과 공공성을 강조하며 "이제는 제도와 사회가 재건의 본질을 인정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동원 학술이사는 "성형외과라고 하면 미용수술에만 국한된 것처럼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재건이야말로 성형외과의 큰 축을 담당하고 있고, 우리나라 재건성형의 수준은 국제적으로도 손꼽힌다"고 밝혔다.
그는 "PRS KOREA 학술대회 역시 재건 영역의 학문적·임상적 성과를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다"며 "성형외과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홍종원 홍보이사는 '천공지 피판(Perforator Flap)'을 예로 들어 재건성형의 발전을 설명했다. 이는 혈관이 말단으로 주행하며 분지된 작은 혈관을 이용해 조직을 복원하는 수술로, 미세혈관을 다루는 수퍼마이크로 서저리(Supermicrosurgery)에 속한다.
홍 홍보이사는 "수술자의 집중력과 지구력이 요구되는 고난도 술기지만, 10년 가까이 수가 없이 시행돼 왔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9월 1일 '건강보험 행위 급여·비급여 목록표 및 급여 상대가치점수'를 개정해 천공지 유리피판술 수가를 신설했다. 기존 유리피판 대비 약 30%의 가산이 적용됐으며, 이는 재건성형의 난이도와 의학적 가치를 제도적으로 처음 인정한 조치다.
홍 이사는 "여전히 충분하다고 보긴 어렵지만, 재건수술이 제도권 안에서 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보이지 않는 수퍼마이크로 서저리의 세계가 이제야 사회적으로 평가받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원재 이사장은 재건수술의 의학적 본질과 공공적 역할을 짚었다. 성형외과의 재건수술은 단순한 미용이 아니라 공공의료, 필수의료의 중심에 있다는 것.
이 이사장은 "천공지 피판은 환자의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기능을 보존할 수 있는 대표적 수술"이라며 "그동안 미용 이미지에 가려 재건이 저평가돼 왔지만, 이번 수가 신설은 재건의 가치를 제도적으로 인정받은 첫걸음"이라고 말했다.
더 나아가 대한성형외과학회는 오는 26일 국회에서 '대한민국 재건성형 발전 공청회'를 통해 합리적 보상체계를 논의할 계획이다.
학회는 재건의 제도적 인정이 단순히 수가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고 역설했다. 재건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서는 인력 양성과 수련체계 개선이 병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박지웅 수련교육이사는 "의정사태 이후 수련환경 선진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전공의들이 재건을 필수의료의 가치로 받아들이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재건성형을 이끌 인재를 양성하려면 국가의 정책적 지원이 필수적이며, 이번 공청회는 단순히 수가 인상이 아니라 수련과 인력 배출까지 포함한 의료체계 논의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보험과 행정 구조의 한계도 거론됐다. 홍종원 홍보이사는 "수가가 낮은 것은 전 진료과의 공통된 문제지만, 성형외과는 행위 분류가 지나치게 단순해 수술의 난이도와 규모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상처를 정리하는 단순 봉합부터 광범위 절제 후 재건까지, 같은 분류로 묶여 있는 현실이 문제라고 꼽았다.
전영준 기획이사는 "성형외과는 지원이 많다고 오해받지만, 실제로 재건성형 분야는 심각한 인력 공백에 놓여 있다"며 "필수의료를 담당해야 할 종합병원 재건성형 인력이 병원을 떠나는 현실은 위험 신호"라고 말했다.
이어 "기술적 역량뿐 아니라 윤리적 책임을 갖춘 전문의 양성이 중요하다"며 "전문의·비전문의 구분이 불명확한 광고 문화도 환자 혼란을 키운다. '미용외과'처럼 존재하지 않는 명칭을 내세우는 행태는 자제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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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으뜸 기자
acepark@medip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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