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병원의사협의회 주신구 회장. 사진=박으뜸 기자
대한병원의사협의회 주신구 회장. 사진=박으뜸 기자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의약분업 시행 25년을 맞은 시점에서 대한병원의사협의회가 기존 분업 체계를 전면 재평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국회를 통과한 대체조제 사후통보 간소화와 국회에서 논의 중인 성분명 처방 의무화 추진은 환자 안전과 의사 처방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으로, 병의협은 "의약분업 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졸속 개편"이라고 비판했다.

병의협은 분업 제도의 본래 취지가 퇴색한 만큼 국민 편의·의료 안전에 기반한 새로운 모델을 설계해야 한다며 '국민선택분업'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13일 대한병원의사협의회는 기자회견에서 의약분업의 도입 배경과 제도의 변화, 현장에서 나타난 문제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하며 제도 전면 재평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병의협은 그 근거로 대체조제 절차와 성분명 처방 논란이 단순한 직역 갈등이 아니라 의약분업 전반의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 현상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국민여론조사, 성분병처방과 대체조제에 '부정적'

이날 병의협은 국민 인식 변화를 파악하기 위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도 함께 발표했다.

대한병원의사협의회는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올바른 의약품 처방·조제 정책'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이번 조사는 처방 및 조제 제도에 대한 국민 인식을 파악하기 위해 진행됐다.

우선 제네릭 의약품 효능 인식 질문에서 66.5%는 "성분이 같으면 효과가 같다"고 답했지만, 33.5%는 "효과가 다르다"고 응답했다. 제네릭에 대한 신뢰와 불신이 공존하는 결과로, 성분명 처방 논의를 둘러싼 정책 수용성과 직결되는 부분이다.

사전동의 없는 약사 대체조제에 대해서는 반대 의견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의사나 환자 동의 없이 약사가 동일성분 의약품으로 대체조제해야 하는가'라는 문항에 76.3%가 반대했고, 찬성은 16.8%에 그쳤다. 병의협은 이를 약 변경 과정에서 환자에게 설명과 동의가 필요하다는 사회적 요구로 해석했다.

성분명 처방 제도에 대한 인식 조사에서는 '의사가 성분명만 처방하고 구체적인 제품 선택은 약사가 하도록 하는 제도를 도입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반대 47.5%, 찬성 43.9%로 나타났고, 반대가 오차범위 내에서 다소 우세했다.

병의협은 이 결과를 두고 국민이 성분명 처방 강제화에 대해 신중하거나 부정적이라는 점이 드러난 것으로 분석했다.

조제 장소 선택권에 대한 질문에서도 국민 의식 변화가 확인됐다. 현행처럼 병의원 처방·약국 조제의 고정 분업을 유지해야 한다는 응답은 28.6%에 그쳤다. 반면 67.3%는 '환자가 원하면 병의원에서 바로 조제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답해 국민선택분업에 대한 선호가 현저히 높게 나타났다.

병의협은 "국민이 원하는 방향은 전문성 훼손이 아니라 선택권 확대"라고 설명했다.
 

환자 편의성과 안전 높이기 위해 '선택분업' 제안

병의협은 이번 기자회견에서 대체조제 사후통보 간소화와 성분명 처방 의무화 논란이 단순한 직역 갈등이 아니라 의약분업 구조 전반의 한계를 드러내는 신호라고 짚었다.

이에 따라 제도 도입 취지를 유지하면서도 환자 편의성과 안전을 높일 수 있는 새로운 분업 모델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장 핵심적으로 제시된 방안은 국민선택분업이다. 이는 환자가 약국 조제만을 강제적으로 따르는 현행 구조에서 벗어나, 의료기관에서 바로 조제를 받을 수도 있고 기존 방식대로 약국을 이용할 수도 있도록 선택권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병의협은 이 제도가 도입될 경우 거동이 어려운 환자의 이동 부담이 줄고, 진료·조제·복약지도가 단일 과정으로 이어지면서 서비스 일관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한 자동조제기나 2인 검수체계, 조제 참여 인력 교육 등을 통해 의료기관 조제 과정에서도 안전장치를 충분히 마련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병의협은 대체조제 절차에 대해서도 개선 방향을 공개했다.

전산 사후통보만으로 대체조제가 이뤄질 경우 처방 변경 사실이 제때 전달되지 않아 환자 안전에 공백이 생길 수 있다. 따라서 병의협은 의사가 처방 단계에서 허용 가능한 대체 범위를 명시하고 약사는 그 범위 내에서 조제하며, 환자에게 변경 사실을 설명하고 동의를 받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러한 사전동의 대체조제 체계가 마련돼야 약물 변경 과정의 책임 소재가 명확해지고 환자 혼란도 줄어든다는 것이다.

성분명 처방에 대해서도 병의협은 신중한 접근을 주문했다. 제네릭 품질과 생동성 관리, 부작용 모니터링 체계가 충분히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성분명 처방을 강제하면 환자 치료의 연속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므로 병의협은 성분명 처방은 제네릭 신뢰 기반이 확보된 이후에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역설했다.

정보 연계 강화도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병의협은 약물 변경 내역, 조제 기록 등을 의사·약사·환자가 실시간으로 공유할 수 있는 DUR 및 전국 단위 전자의약품 기록시스템 구축을 언급했다. 단순 전산 사후통보 방식은 오히려 정보 공백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

아울러 병의협은 의약분업 제도 전반을 재검토하기 위해 정부, 국회, 의료계, 약계, 소비자단체 등이 참여하는 '의약분업 미래위원회' 구성을 제안했다. 분업 시행 25년의 성과와 한계를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향후 10년·20년을 대비한 로드맵을 마련해야 한다는 취지다.

주신구 회장은 "이번 여론조사는 국민이 원하는 것이 강제가 아니라 선택권과 안전이라는 점을 보여준다"며 "이제는 의약분업을 다시 설계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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