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의료계가 성분명 처방 강제화, 한의사 X-ray 사용 허용, 검체검사 위·수탁 제도 개편 등 정부·국회가 추진 중인 정책을 '3대 의료악법'으로 규정하며 국회 앞에서 총력 대응에 나섰다.
16일 오후 2시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국민건강수호 및 의료악법 저지를 위한 전국의사 대표자 궐기대회'에는 대한의사협회 집행부와 대의원회, 전국광역시도의사회장협의회, 시도의사회, 대한개원의협의회, 각과 의사회 등 500여명의 의사가 집결했다.
범의료계 국민건강보호 대책특별위원회(범대위)는 세 정책이 의약분업 구조, 면허체계, 일차의료 기반을 동시에 건드리는 중대한 제도 변화라고 판단했다.
의료계는 성분명 처방 강제화가 처방과 조제의 경계를 흐려 의약분업의 원리를 뒤흔들고, 한의사 X-ray 허용은 진단 안전성을 약화시키며 면허 간 경계를 무너뜨리고, 검체 위·수탁 제도 개편은 일차의료기관 운영 기반을 해칠 수 있다고 봤다.
의료계가 우려하는 지점은 개별 정책의 이해득실이 아니다. 이들 정책이 모두 '전문성의 약화'와 '안전성의 후퇴'라는 한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의료 현장에서 쌓아온 판단 체계와 책임 구조가 흔들리면, 결국 가장 큰 위험을 감당해야 하는 주체는 환자라는 메시지가 반복적으로 제기됐다.
의료계에 따르면, 최근 정책 결정 과정은 현장 의견 반영 부족·사전 검증 미흡·전문가 부재가 공통적으로 드러난다. 의료계는 정부·국회가 '정책 목표의 당위성'을 내세워 실효성과 안전성 검토를 생략하는 흐름이 반복되고 있다고 보고, 이번 사안을 단순한 갈등이 아니라 의료체계의 설계 과정 전체에 대한 문제로 해석했다.
궐기대회가 단순 반대가 아니라 정책 구조 자체에 대한 문제 제기라는 설명도 이 때문이다.
이날 단상에 오른 직역 대표자들은 세 정책이 의료현장의 안전성과 환자 진료의 질에 미칠 영향을 구체적으로 짚으며, 국회와 정부가 추진 방향을 재고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대한의사협회 김택우 회장은 "참으로 비통한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다"며 "환자의 생명을 지키는 숭고한 진료실을 떠나 이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 설 수밖에 없게 만든 자는 누구인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성분명 처방 강제화가 "지난 20여 년간 지켜온 의약분업의 원칙을 명백히 무너뜨리는 행위"라고 단언했다.
아울러 한의사 X-ray 허용 논의는 "면허 체계를 근본부터 훼손하는 심각한 의료악법"이라며 선을 그었다. 검체 위·수탁 제도 개편과 관련해서도 "일차의료기관과 필수의료의 몰락만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하며 정책 강행 시 14만 의사의 총력 행동을 예고했다.
대한의사협회 대의원회 김교웅 의장은 "14만 의사의 생존과 명운을 걸고 국회가 바라보이는 이 자리에서 결연히 섰다"고 말했다.
그는 성분명 처방 강제화를 "환자 안전을 담보로 약화사고를 유발할 수 있는 무책임한 실험"이라고 규탄했다.
한의사 X-ray 허용안과 관련해서는 "X-ray가 휴대전화처럼 선호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라며 오진 위험과 방사선 노출 문제를 언급했다. 검체수탁 제도 개편 역시 "일차의료 기반을 파괴하는 악행"이라며 강한 어조로 반발했다.
전국광역시도의사회 최정섭 회장은 최근 국회 내 의료 관련 법안의 양상 자체를 문제 삼았다.
그는 성분명 처방 합법화 추진을 "국민을 담보로 실험하는 극히 위험한 발상"이라고 일축했다.
한의사 X-ray 허용 논의와 관련해서는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하려면 의과대학에 편입해 면허를 취득하면 된다"고 말했다.
대한개원의협의회 박근태 회장은 일차의료 기반 약화와 필수의료 붕괴 가능성을 중심으로 우려를 표했다.
그는 "피를 토하는 심정"이라며 정부 정책을 "비과학적이며 매우 위험천만한 만행"이라고 성토했다. 특히 "정부 스스로 발주한 연구에서도 자율적 계약이 최선이라 결론을 냈음에도 이를 외면하고 있다"며 정책 결정 과정의 정당성을 꼬집었다.
성분명 처방 강제화는 의사의 처방권 약화를 넘어 환자 안전을 침해하는 조치로 봤으며, 한의사 X-ray 허용 시도 또한 "국민의 생명을 실험 대상으로 삼는 것"이라고 강경한 목소리를 냈다.
집회 후반부에는 범대위 공식 입장이 담긴 결의문이 발표됐다. 결의문은 범대위 홍보위원회 황규석 위원장, 이주병 성분명처방저지위원장, 박상호 한방X-ray저지위원장, 민복기 대외협력위원장, 최운창 대외협력위원장이 공동으로 낭독했다.
결의문은 국회와 정부가 전문가 의견을 배제하고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고 비판하며 세 가지 요구를 내놨다.
첫째는 성분명 처방 강제 입법 중단으로 "성분명 처방은 수급 불안의 해결책이 아니며 환자 안전을 볼모로 삼는 악법"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둘째는 한의사 X-ray 사용 허용 시도 철회로 "엑스레이 판독과 방사선 안전 관리는 현대의학의 고유 영역이며 비전문가의 사용은 국민 안전을 위협한다"고 강조했다.
셋째는 검체 위·수탁 제도 개악 중단으로 "일방적 제도개편은 필수의료 기반을 무너뜨린다"며 즉각적인 재검토를 촉구했다.
결의문은 "정책이 강행된다면 14만 의사가 총력 투쟁에 나설 것"이라는 문장으로 마무리됐다.
대한의사협회는 이번 전국의사 대표자 궐기대회를 통해 국민건강과 환자 안전을 지키기 위한 합리적 제도 개선을 요구하며 의료계의 단합된 대응 의지를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범의료계 국민건강보호 대책특별위원회는 각 지역·직역의 역량을 모아 향후 체계적이고 효과적인 대응에 나설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