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파나뉴스 = 조후현 기자] 정부가 약가제도 개선에 착수했다. 산업 생태계 기반을 제네릭에서 R&D·혁신으로 옮긴다는 목표다.
반면 산업 현장에선 이상적인 의도와는 다른 풍선효과가 나타날 수 있단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허리띠를 졸라매는 과정은 국산 원료의약품 자급률 저하나 설비 투자 위축 등 부작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다.
이에 현장 목소리를 충분히 반영한 정책 고도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5일 제약산업 현장에선 약가제도 개선에 대한 우려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지난 24일 정책을 설계한 더불어민주당에서 이번 약가제도 개선 목적은 재정절감이 아니며, 정부에 균형을 전제로 한 개선안 설계를 당부했다는 설명을 내놓기도 했지만 개선안을 바라보는 업계 시선은 불안한 모습이다.
제네릭 약가 인하, 생존전략 1순위는 API 비용절감…"국산 쓰지 말란 셈"
A 원료의약품 업체 관계자는 이날 메디파나뉴스와 통화에서 최근 약가제도 개선을 바라보며 답답함을 느끼고 있다고 토로했다. 국산 원료의약품을 장려하는가 싶더니, 국산 원료의약품 사용 여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제네릭 약가 인하를 예고했다는 이유다.
A사 관계자는 "원료의약품만 놓고 보자면, 제네릭 약가 인하는 사실 국산 쓰라는 말과 반대되는 얘기다. 약가 인하를 마주한 제약사 입장에서 가장 손 쉬운 건 API 단가 인하고, 거기서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다"며 "그나마도 저렴한 중국이나 인도 원료의약품으로 눈을 돌릴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본다. 지금까지도 그래 왔다"고 말했다.
국산 원료의약품 자급률은 보건안보와도 연결되는 만큼 정부는 약가 우대를 비롯한 지원 정책을 시행·마련 중이나, 약가 인하 앞에선 사실상 무의미해진다는 점도 짚었다.
그는 "약가 우대 같은 정책은 약가 인하 앞에선 의미가 없어진다. 원료의약품 하는 입장에선 답답한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비용절감 풍선효과는 국산 원료의약품에서부터 나타날 것이란 점은 완제의약품 업계에서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B 제약사 관계자는 "결국 이윤은 매출 빼기 비용이지 않나. 매출이 낮아지면 비용을 낮추기 마련이고, 외국 원료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될 것"이라며 "국내 원료 사용 퍼센티지도 상당히 낮고, 정부는 국산 원료 사용 업체를 우대하겠다고 얘기하지만, 상당히 이율배반적인 정책이 되는 셈"이라고 평가했다.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에 따르면, 2023년 원료의약품 자급률은 25.6%다. 2020년 36.5%보다 10.9%p 낮아진 수치다.
R&D에만 초점…설비 투자 후순위로, 품질 고도화 요원
약가제도 개선안 보상 기전이 R&D와 혁신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설비 투자가 후순위로 밀려날 수 있다는 부작용 우려도 나온다. R&D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설비 투자 여력은 위축될 수밖에 없고, 장기적으로 품질 경쟁력과 생산성 등이 저하될 수 있다.
C 제약사 관계자는 "의약품 품질과 생산량에 영향을 미치는 생산시설 투자에는 비용이 필요하다"며 "R&D로만 평가와 보상이 이뤄지고 품질 향상이나 생산성 확대에 대한 노력은 보상받지 못한다면 누가 투자하겠나"라고 지적했다.
업계 평균 이상 R&D 투자 비율을 나타내는 제약사도 우려는 같은 상황이다.
D 제약사 관계자는 "개선안은 R&D 약가 우대가 방향성이지만, 제네릭 약가 인하만큼 실효성 있게 우대가 다가올지 의문"이라며 "제네릭 산정율이 40%까지 낮아지면 매출 20~30%가 증발할 수 있다는 건데, R&D를 제외한 품질이나 국산 원료 같은 투자를 이어갈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현장 목소리로 정책 고도화해야
여당에 따르면 정부 약가제도 개선은 혁신 생태계 조성을 목표로 설계됐지만, 업계에선 일부 드러난 디테일에 우려가 그치지 않는 모양새다.
혁신 생태계 조성이란 목표 달성을 위해선 현장 목소리를 반영한 정책 고도화가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E 제약사 관계자는 "정책 방향 자체는 긍정적"이라면서도 "실현 가능성은 의문이다. 현장에서 우려하는 요소가 약가 인하나 우대에 균형 있게 반영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F 제약사 관계자는 "제약산업은 규제산업이니 정책을 따라갈 수밖에 없는 만큼, 정책엔 디테일이 충분해야 한다"면서 "R&D에만 집중하면 설비 투자는 어떻게 보상할 건지, 풍선효과는 어떻게 대응할 건지, 약가 인하 수준이 적정한지 등 세세한 디테일이 있어야 어디에 어떻게 투자할지 계획이라도 세우는데, 우려가 큰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